막판 소신 지킨 한동훈…재기냐 퇴장이냐
탄핵 놓고 오락가락하다 최종 찬성 힘 실어
윤과 ‘차별화’ 꾀했지만 ‘검사 리더십’ 한계
탄핵 찬성 재평가 받으면 내년 새 도전 가능
1년 전인 지난해 12월 21일. 한동훈 당시 법무장관은 일약 집권여당 비대위원장으로 발탁됐다. ‘윤심’(윤석열 대통령 마음)으로 읽혔다. 당시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총선을 치르려면 정치인 출신 비대위원장이 적격인데, 대통령께서 한 장관을 고집하셨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과 한 전 대표 인연은 꽤 오래됐다. 검찰 시절 한 전 대표는 ‘윤석열 사단’ 핵심이었다. 윤 대통령은 한 전 대표를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중용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를 “제 검사 인생의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라고 표현했다.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는 한 전 대표를 법무장관으로 깜짝 발탁했다. 주변에서 “이르다”며 걱정했지만 윤 대통령은 주저하지 않았다. 한 전 대표는 윤석열정권 ‘황태자’로 부각됐다.
두 사람 관계는 한 전 대표가 비대위원장(정치인)이 되면서 급반전됐다. 한 전 대표는 갑자기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을 앞세워 윤 대통령 부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종섭 호주 대사 부임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거취를 놓고도 연신 윤 대통령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검사 한동훈’은 윤 대통령에게 ‘충실한 부하’였지만, ‘정치인 한동훈’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보스’를 넘어서야 했던 것으로 읽힌다.
한 전 대표의 태도 변화는 두 사람 인연 속에서 이미 예고됐다는 분석도 있다. 보스 기질이 강한 윤 대통령은 한 전 대표를 ‘수사 좀 아는 부하검사’ 정도로만 여겼고,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을 ‘무능하지만, 얼굴마담으로 괜찮다’고 평가했다는 추측이다. 큰일을 함께 할 ‘동지적 관계’가 아니라 자기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기 없는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정치인’으로서 몸값을 끌어올린 한 전 대표는 7.23 전당대회에서 전폭적 지지(63%)를 얻어 당권을 잡았다. 문제는 한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을 넘어 보수진영을 이끌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걸 입증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과 잦은 전투만 치를 뿐 승복시키지 못했다. 보수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인지 결정적 순간에 자꾸 후퇴했다.
계엄 사태에서도 한 전 대표는 좌고우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계엄 초기에는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결기 있게 나섰지만, 이후 탄핵을 놓고는 반대→찬성→반대→찬성으로 오락가락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 전 대표는 측근들과도 소통하지 않고, ‘나 홀로’ 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친한계조차 탄핵 표결에서 결집하지 못한 이유다. 여권 인사는 16일 “한 전 대표는 자기만 옳고, 자기만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검사 리더십에 머문 것 아닌가 싶다. 한 전 대표를 향해 ‘술 안 먹는 윤석열’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새겨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 전 대표는 탄핵 2차 표결을 앞둔 지난 12일 ‘배신자 낙인’ 위협에도 불구하고 탄핵 찬성으로 최종 입장을 정해 그나마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전 대표는 16일 “(탄핵으로 인해) 마음 아프신 우리 지지자분들을 생각하면 참 고통스럽지만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탄핵 가결에 힘 보탠 것을 ‘정치적 자산’ 삼아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금은 탄핵을 반대한 친윤이 당권을 잡고 득세하지만,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 대선판이 열리면 탄핵 가결에 힘을 보탠 한 전 대표의 ‘결단’이 재평가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친한 인사는 16일 “경쟁력을 따지면 (한 전 대표가) 아직 강력하지 않냐. 당도 결국 다시 (한 전 대표를)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