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법엔 ‘지방자치’가 없다

2024-12-18 13:00:01 게재

관선시절 골격 그대로 유지

단체장·의회 등 지위 실종

12.3 내란사태 이후 계엄법이 예전 관선 지방행정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자치단체의 헌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18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계엄법 제7조 1항은 ‘비상계엄의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관은 계엄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고 규정한다. 제8조 1항엔 ‘계엄지역의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은 지체 없이 계엄사령관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이를 지자체에 적용하면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지자체는 지체 없이 해당 지구 또는 지역계엄사령관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한다. 입법기관인 지방의회는 제외된다. 이번 비상계엄 포고령 1호에 국회와 함께 ‘지방의회의 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단체장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계엄법에 지자체 단체장에 대해선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다만 제8조 2항에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의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을 지휘·감독할 때 그 지역이 1개의 행정구역에 국한될 때에는 그 구역의 최고책임자를 통하여 하고’라고 돼 있을 뿐이다.

현재 지자체엔 전시를 대비한 충무계획과 을지훈련 등이 있다. 이 때는 단체장과 지역계엄사령관이 협업한다. 지역계엄사령관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을 지휘한다.

이는 전쟁이 났을 때다. 이번 12.3 비상계엄은 전쟁이 원인이 아니다. 충청권 한 지자체 관계자는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충무계획을 준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단체장과 지역계엄사령관이 충무계획처럼 협업을 하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단체장과 지역계엄사령관 사이에 이견이 발생할 경우, 특히 단체장이 비상계엄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만약 이번 12.3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대통령과 정당이 다른 단체장이 지역계엄사령관의 지휘를 거부했을 가능성이 크고 양측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12.3 내란사태 직후 김제선 대전 중구청장은 페이스북에 “충무계획만 있을 뿐 계엄 시 자치정부 운영지침을 찾아봤지만 없었다”고 밝혔다. 김 구청장은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오랜 기간 계엄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단체장의 법적 지위도 솔직히 모른다가 답”이라고 말했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전형적인 ‘입법미비’로 봐야 한다”며 “지방자치가 없던 시절의 계엄법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단체장, 지방의회 등을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며 “매뉴얼 등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법 개정을 서두르지 않으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육동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은 “중앙정치의 혼란을 차단하고 대한민국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 지자체”라며 “이번 사태를 보고 헌법이나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자칫 더 큰 혼란이 지자체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고 말했다. 육 원장은 “이번 포고령에 지방의회 활동을 금지한 것이 정당한 것인지, 비상계엄 시 지방자치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인지, 단체장은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어떻게 얼마만큼 받는 것인지 등 쟁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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