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약속한 대형 국책사업 ‘먹구름’
탄핵정국에 ‘올스톱’ 위기
지자체들 대책 마련 고심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해온 대통령 공약사업을 비롯한 대형 국책사업들도 치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각종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국정을 안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탄핵 정국에 가로막혀 추진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이 반대하거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사업들은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8일 전국 지자체들에 따르면 지역마다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추진했던 주요 국책사업들이 올 스톱될 위기에 처했다.
◆1기 신도시 재건축 등 대규모 국책사업 삐걱 = 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면서 각종 사업의 세부계획 수립이 늦어지는 등 벌써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윤 대통령 공약이자 경기도 핵심 현안인 1기 신도시(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이 대표적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분당 일산 평촌 등 13개 구역 3만5897세대의 재건축 선도지구를 발표하면서 연내 원주민 이주대책 발표 등 후속절차를 이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과 탄핵소추안 가결 등으로 국정 공백이 발생하면서 이주계획과 광역교통대책 연내 발표는 물건너간 상황이다. 추가분담금 문제와 같은 주요 쟁점에 대한 명확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사업,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D·E·F 구축사업 등도 탄핵 정국과 맞물려 속도가 더뎌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인천도 그동안 야심차게 추진해온 대규모 국책사업들이 모두 삐걱거리고 있다. 우선 2022년 대선 당시 지역공약이었던 ‘수도권매립지 대체매립지 확보’와 ‘총리실 산하 전담기구 설치’ 문제가 해를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인국철과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또한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는 당초 18일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선도 사업’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잠정 보류했다. 이밖에 GTX-D Y노선과 E노선 신설, 권역별 첨단산업 집중육성 등 대통령 대선공약 대부분이 같은 처지에 놓였다. 인천시 관계자는 “정치적 상황까지 고려하면 인천의 주요 국책사업들이 정상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충청권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대전의 경우 대선공약인 대전교도소 이전이 표류하는 가운데 대전 제2외곽순환고속도로와 호국보훈파크 조성사업도 추진이 불투명해졌다. 세종은 세종지방법원과 지방검찰청 예산 증액이 불발됐고 충남은 아산경찰병원 건립사업 국비 확보에 실패했다. 충북도 대통령 공약사업(57개) 가운데 청남대 나라사랑 교육문화원 건립만 마무리됐고 오송 K-바이오스퀘어 조성 등 절반이상이 정부와 협의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까지 탄핵되면서 사업 추진이 불확실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역숙원 해결 위해 정치권과 협력 = 호남권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윤 대통령은 전북지역에 새만금 메가시티 조성, 금융중심지 지정 등 7개 공약을 했고 광주·전남에도 인공지능(AI) 대표도시 광주, 광주~영암 초고속도로, 고흥 우주항공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14개 사업을 공약했다. 하지만 이들 공약 상당수가 본궤도에 오르지도 못한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으로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전남지역 숙원인 국립의대 신설도 목포대와 순천대가 통합의대를 추진키로 하는 등 속도를 내다가 정부의 의료개혁에 발목을 잡혔다. 여기에 탄핵 사태까지 겹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사업도 복병을 맞았다. 공영개발에 필요한 지방채 발행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으나 지난 8일 행안부 장관 사의로 부처협의에 차질을 빚고 있다. 기재부가 위원회 의결을 통해 지원할 수 있는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저리(연 3.5%)로 자금을 빌릴 계획이었으나 12.3 내란사태 이후 기재부도 소극적으로 돌아섰다는 후문이다.
부산지역 대통령 공약인 ‘산업은행 이전’ 역시 정부가 법 개정을, 산업은행이 조직개편 등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탄핵 정국으로 난관을 맞게 됐고 강원도 역시 춘천-속초 고속철 등 굵직한 교통망 건설사업부터 폐광지 대체산업, 오색 케이블카 등 대통령 공약을 믿고 추진해온 사업들이 표류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지자체들은 정부는 물론 지역 국회의원들과 대책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지역 숙원사업 대부분이 22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공약으로 제시된 만큼 정치권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강기정 광주시장은 “국가적으로 조기 추경과 확장 재정이 필요하다”면서 “각 지역 대선공약이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정치권 등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신일·최세호·윤여운·곽재우·방국진
곽태영·기자 tykwa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