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이후’를 생각한다 ④ 당론에 휩싸인 거대양당

‘배신자 낙인’에 ‘공천 부적격’까지 이중삼중 ‘자유 투표’ 차단

2024-12-19 13:00:01 게재

국민의힘, ‘탄핵반대 당론’ 바꾸려면 ‘3분의 2이상 찬성’해야

김상욱 의원 “이탈표 없도록 심리적으로 위협주고 단속” 토로

민주당, 50여개 당론법안 추진 … 당론 거부, 당원자격 심사

헌법 ‘양심 따라 직무’, 국회법 ‘정당 기속 안 된 양심 투표’ 규정

‘당론 정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계엄군은 국회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막고 총을 들고 의사당 안으로 진입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내놓았다. 7일 탄핵소추안 표결에 앞서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열고 ‘탄핵 반대’ 당론을 ‘박수’로 결의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론 채택에 ‘표결 불참’이라는 이중 장치를 마련했다. 안철수 김예지 의원과 함께 김상욱 의원이 반기를 들었다.

질의 듣는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김 의원은 18일 SBS라디오에 나와 당시 상황에 대해 “그 의원총회라고 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의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면 좋겠는데 제가 느끼기로는 이미 방향을 정해놓고 이탈표가 없도록 심리적으로 위협을 주고 또 단속하는 그런 자리로 기능을 했던 것 같다”며 “그렇게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 있다 보면 그 무리가 전부로 느껴진다. 이 무리에서 이탈되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에는 반하지 않냐는 의구심이 있는데 당일 당론으로 표결에 참여를 하지 않고 부결시킨다는 것을 전달하고 의원들이 거기에 따르도록 하는 여러 가지 말들이 오가는 그런 자리였다”고 했다.

‘강력한 당론’을 거부하고 투표에 참여하고 결국엔 ‘탄핵 찬성’표를 던진 김 의원에게는 ‘배신자’ 프레임이 씌워졌다. 그는 “당연히 유·무형의 여러 가지 제재와 압박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당에서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서 공격을 받고 또 지역에 내려와서도 마찬가지로 배신자 프레임으로 공격을 받고 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은 있었다”고 했다.

지난 7일 탄핵소추안이 부결된 이후 국민들의 분노는 연일 국회를 향한 아우성으로 이어졌고 수사와 국회 현안질의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의원 체포조가 별도로 편성됐고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윤 대통령의 직접 지시도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당론을 바꾸지 않았고 이에 반대하는 의원들도 힘을 쓰지 못했다.

국민의힘 당헌에는 ‘의원은 헌법과 양심에 따라 국회에서 투표할 자유를 가진다’는 규정과 함께 ‘당론을 바꾸려면 재적의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는 조항도 들어가 있다. 당론 변경 기준이 헌법개정, 대통령 탄핵, 국회의원 제명과 같은 수준으로 어렵게 만들어 놨다.

‘당론’ 중독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6개월여 지났는데도 벌써 50여개의 당론법안(탄핵안, 국정조사요구안 등 포함)을 채택해 놨다. 당론 채택을 기다리고 있는 법안들도 적지 않다. 거대 과반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은 ‘당론’을 활용해 입법 속도전에 나선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당론’법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모 의원은 “당론 채택한 법안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토론도 없이 그냥 정책위 등 지도부 의견에 따라 당론으로 채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법이라는 것이 한 자 한 자가 중요하고 민감한데 수많은 법안을 뚝딱 당론으로 채택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상임위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입법부의 운영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상임위에서 의원들간 대화와 토론을 통한 법안 조정이나 타협을 ‘당론’이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또다른 민주당 의원은 “당론으로 정해 놓으면 그 법안을 고치기가 쉽지 않고 여당과 논의하면서 양보하기도 어렵다”면서 “상임위에서의 운신 폭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게다가 민주당은 당론에 위배할 경우 공천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강력한 규정’을 갖고 있다. 민주당은 ‘당론 준수’를 당원의 의무로 정해놓고 ‘당론에 명백히 어긋나는 행위의 전력 유무’를 당원 자격심사의 기준으로 명시해 놨다. 또 ‘당론 위반에 따른 징계 경력자 등 당의 결정이나 당론을 현저하게 위반한 자’를 공천 불복 경력자와 함께 공직선거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대상자로 당규에 지정해 놨다.

정당의 강력한 당론주의는 국회의원의 양심에 따른 자유 투표를 차단하는 위헌, 위법 가능성도 있다. 헌법 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국회법 114조의2(자유투표)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적시돼 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론으로 표현되는 패거리 정치가 쟁점”이라며 “당론은 한국 정치문화의 하나인데 강력한 귀속력과 남발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누구를 위한 당론이냐가 중요하기도 하다”고 했다. “유권자나 국민을 향하지 않은 당론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위한 당론은 곤란하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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