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행장 교체후 내년 경영전략 고심
저성장·저금리, 성장전략 제한
예대금리차 줄어 이자이익 감소
가계대출 규제로 중기대출 강화
정치적 혼란, 정권 향방도 주시
국내 주요 시중은행이 은행장 등 경영진을 대거 교체하고 내년도 경영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내년도 거시경제 전망이 부정적인 가운데 최근 2~3년간 누렸던 고금리에 따른 이익도 줄어들 수 있는 ‘저성장’ ‘저금리’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4대 시중은행은 연말 대규모 인사를 통해 새로운 인물을 대거 배치했다. 신한은행(은행장 정상혁)을 제외한 KB국민은행(은행장 후보자 이환주)과 하나은행(은행장 후보자 이호성), 우리은행(은행장 후보자 정진완)이 은행장을 교체했다.
이들 은행은 또 부행장을 비롯한 경영진도 1970년대생을 대거 발탁하는 등 조직의 쇄신에 방점을 뒀다는 평가다. 특히 우리은행은 대규모 횡령사건에 이어 전직 은행장 관련 부정대출 의혹이 불거지는 등 안팎의 신뢰가 추락하면서 교체폭을 키웠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일반적으로 임기 2년인 부행장 가운데 다수를 1년 만에 갈아치우는 등 고강도 쇄신에 나섰다.
은행권은 연말 인사가 모두 마무리되지 않은 관계로 아직 내년도 경영전략을 공식 확정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그룹의 중장기 전략방향을 기초로 매년 경영계획을 세우는 데, 최근 일부 수정하는 단계”라고 했고, 우리은행 관계자도 “아직 내년도 경영계획은 수립하기 전”이라고 했다.
다만 모든 은행권이 공통적으로 안고있는 과제는 향후 경기가 빠르게 침체할 가능성과 금리하락에 따른 수익성 저하이다. 금융연구원은 이달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내은행은 실물경기 둔화 움직임과 기준금리 인하기조의 시작, 가계대출 억제 및 기업대출 경쟁심화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는 대내외 경영환경에 직면했다”며 “향후 실수요자 및 우량차주를 대상으로 자금공급을 지속하고, 신성장 동력과 핵심수출 산업 등에 대한 자금공급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2025년 거시경제 전망은 우울하다. 한국은행은 2025년(1.9%)과 2026년(1.8%) 두해 연속 1%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우리나라가 IMF외환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급변사태로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경우는 있지만, 바로 회복하는 탄력성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고금리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예대금리 격차가 줄어드는 것도 은행권 수익성 저하를 불러올 전망이다. 한은에 따르면, 예금은행 수신과 대출금리 차이는 지난해 1분기 2.60%p에서 올해 3분기 2.24%p로 0.36%p 줄었다. 올해 10월은 2.22%p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수신금리는 2.53%에서 2.59%로 올랐지만, 대출금리는 5.13%에서 4.83%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10월 대출금리는 4.79%까지 하락했고,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가속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금리 환경이 저금리 기조로 돌아서면서 전체적으로 올해 2분기와 3분기를 계기로 순이자마진(NIM)이 축소되기 시작했다”며 “가계대출은 정부가 당분간 규제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고, 결국 기업대출 특히 중소기업 대출에서 성장전략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국내 중소기업대출 1위를 달리는 IBK기업은행 관계자도 “다른 시중은행의 중기대출 공략이 강화되고 있어 이를 방어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은행권은 공통적으로 △퇴직연금 점유율 확대 △해외사업 강화 △고령화 시대에 맞는 틈새시장 공략 등 다방면에서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급등하면서 생기는 불확실성을 넘어서는 것도 당장 발등의 불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외화유동성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충분한 완충지대를 확보하고, 조달수단 다변화로 선제적 관리를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개별 은행마다 특색있는 사업도 고심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강점인 신탁사업 부문을 강화하면서 시니어세대를 위한 틈새시장 공략에 힘을 넣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하나금융그룹 차원에서 지난 10월 ‘하나더넥스트’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그룹내 관계사 간 협업으로 시니어세대의 은퇴설계와 상속, 증여 등 금융과 비금융분야 전반의 서비스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강점인 해외 사업을 보다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밸류업 등 우니라나 금융의 회복탄력성을 알려나갈 것”이라며 “정치와 경제 등 안팎의 상황이 혼란스럽지만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새심하게 살피면서 내년도 경영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은행권은 최근 계엄과 탄핵 등 불확실한 정치상황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윤 대통령 집권 내내 은행이 공공의 적으로 치부돼 마음고생이 심했다”면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야당의 금융관련 정책이 은행권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