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의 대전환 시대를 열자
대통령 탄핵으로 어쩌면 예정보다 일찍 대통령 선거를 맞이할 것 같다. 아울러 1987년에 만들어진 헌법도 빨라진 대선에 맞춰 함께 개정하자는 논의가 본격화될 조짐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국민과 국회, 정부와 법원, 그리고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및 지방자치, 끝으로 경제까지 총 8개의 큰 범주로 나뉘어 기술된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과학과 기술’의 헌법적 가치는 무엇이고 헌법에서 ‘과학과 기술’은 어떻게 기술되고 있을까?
과학기술에 대한 헌법적 가치 다시 세우자
현행 헌법상 ‘과학기술’은 제9장 경제편 안에 아주 짧게 등장한다. 제9장에는 소작제도의 금지, 농어촌 개발 및 중소기업의 육성, 소비행위의 장려, 무역의 육성 등 국가 경제에 관련된 제도와 경제 주체들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리고 제9장 맨 마지막에 제127조로 ‘과학기술’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앞서 언급한 여러 조항이 상당히 구체적인 대상을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해 매우 큰 범주인 ‘과학기술’이 제9장 경제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왠지 주소를 잘못 찾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럼 ‘과학과 기술’이 헌법 속에서 왜 경제에 포함돼 기술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자. 이는 제127조 1항을 보면 명확해진다.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그렇다. 국가가 과학기술의 혁신과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수단일 뿐이고 목적은 국민경제 발전인 것이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경제편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하면, ‘과학기술’의 헌법상 가치는 경제개발의 도구란 것이다.
‘과학과 기술’을 소작제도와 임대차, 농어촌 개발과 중소기업, 소비와 무역과 같은 국가경제 시스템의 한 범주로만 여긴다면 광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과학기술 문명에 우리나라가 설 자리는 없다. 새로운 헌법에서는 ‘인류의 과학 문화 발전과 보편적 복지 증진을 위해 국가는 과학탐구와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진흥시킨다’ 정도로 ‘과학기술’, 그 자체의 가치가 부여됐으면 좋겠다.
부처간의 기능별·예산별 칸막이를 낮춰야 한다
우리나라의 과학탐구와 기술개발은 정부의 여러 부처의 소관업무로 나뉘어 추진된다.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이 각기 연구개발 예산을 마련해 부처에 관련된 R&D를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과학기술의 교육 연구 그리고 산업현장을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인공지능(AI) 분야를 예로 들어 보자. AI 교육은 교육부가, AI 개발은 과학기술부가, AI 활용은 산자부가 각자의 업무를 칼같이 나눠 추진할 수 있겠는가? AI의 교육과 개발 활용은 따로 떼내 추진할 수 없는 새로운 과학이고 새로운 기술이다. 그렇다고 인공지능부란 정부 부처를 새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 부처간 기능별 칸막이를 낮추고 예산의 칸막이를 이동시킬 수 있는 유연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초중고 대학 연구소 기업이 신산업의 육성을 위해 담을 허물고 교육과 활용, 사업화까지 한 틀에서 활동할 수 있게 정부 부처가 먼저 담을 낮추고 협력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과학과 기술, ‘따로 또 같이’ 접근법으로
헌법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선 흔히 과학기술을 한 단어로 붙여 쓴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은 애초에 서로 다른 개념이다. 과학은 탐구의 대상이고 기술은 개발의 대상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인 R&D는 Research & Development, 즉 연구와 개발이란 뜻이다. ‘과학의 연구(Science research)’와 ‘기술의 개발(Technology development)’은 잘 어울리지만 ‘과학의 개발’과 ‘기술의 연구’라 하면 어색하다. 과학 탐구는 지적 호기심만으로도 수행되지만 기술 개발은 반드시 어떤 목적을 동반한다.
과학과 기술이 이렇듯 다른데 우리는 과학과 기술을 동일한 잣대와 동일한 R&D 체계로 평가하고 지원한다. 이제는 과학 탐구와 기술 개발을 떼어 놓고 생각해 볼 때가 됐다. 물론 과학과 기술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과학은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보할 수 없고 기술은 과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결론은 과학과 기술이 ‘따로 또 같이’ 전략으로 발전돼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연구 뿐 아니라 로컬 과학도 필요하다
과학과 기술은 그 자체로 국경 없는 전쟁터라 할 수 있다. 중국은 SCI 논문 출판량 세계 1위, 세계 최대의 전파망원경, 세계 최고의 입자가속기 등 곳곳에서 ‘과학굴기’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항공·우주와 양자기술 AI 같은 분야에서 초격차를 만들어 내면서 독주하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도 국제협력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거대 마젤란망원경(GMT) 천문학 국제공동연구,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국제협력연구 등 여러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
국제공동연구는 외국의 선진 R&D 방식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과 과학적 지식을 공유하고 지적재산권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권장할 만하다. 하지만 글로벌 과학 프로젝트에서 우리나라가 리더십을 가지고 더 큰 지분을 갖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우리 과학자들의 역량과 연구비 규모가 따라야 한다. 한정된 국가 R&D 재원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글로벌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 외에는 방법이 없다.
과학적 큰 질문을 다루는 글로벌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한가지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 과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로컬 과학’이다. 한국의 동식물과 생태계, 우리 국토의 지질, 우리나라의 기후,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 등 우리 과학자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또 우리나라 과학자가 해야만 하는 분야를 말한다. 정부는 이런 로컬 과학을 글로벌 과학 못지않게 진흥시킬 의무가 있다.
정부 출연연과 대학 연구실 한데 묶어 빅클러스트 만들자
따지고 보면 기능별·예산별 칸막이는 정부 부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총 25개의 정부출연연구소가 있다. 이들 국가연구소는 각기 목적하는 R&D가 있다. 전자통신연구원 천문연구원 에너지기술연구원 한의학연구원 지질자원연구원 원자력연구원 등등 각 연구소들은 이름만으로도 그 기능을 알 수 있다. 외국의 경우에는 막스플랑크연구소 파스퇴르연구소 페르미연구소 등과 같이 과학자의 이름이 종종 붙는다. 우리도 장영실연구소, 우장춘연구소라고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정작 외국의 연구소에서 배워야 할 점은 국가연구소와 대학의 연구실들이 같은 연구주제를 놓고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기초과학원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이탈리아 핵물리학연구체계를 보면, 4개의 국가연구소와 20여개의 대학연구실이 뭉쳐 이탈리아 국립 핵물리학 연구원(INFN)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프랑스 역시 핵물리학 분야 국가연구소와 대학이 뭉쳐 IN2P3란 클러스터 조직을 만들고 있다.
우리의 경우 연구소든 대학이든 각기 연구개발사업을 수주해 수행하기에 급급했지, 동종 학문 분야별로 커다란 집단을 형성해 연구를 추진해 본 적이 없다. 연구소와 대학의 담을 허무는 것도 다음 정부가 추진해야할 주요 정책이라 하겠다.
국가 R&D 연구비 집행방식 바꿀 때 됐다
우리나라의 국가 R&D예산이 GDP대비로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과학 분야에서는 노벨상이 나오지 않고 기술 분야에서는 여전히 ‘빠른 추격자’일 뿐이다. R&D 예산은 많이 투여하지만 얻어내는 것은 적은 것이다. 그 비효율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노벨상급 과학자도 한국에 오면 ‘연구비 정산하다 세월 다 간다’라는 조크다.
우리는 연구계획서를 작성할 때 인건비 장비재료비 연구활동비 등 비목별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계획이 치밀하지 못해 돈이 남거나 부족하게 되면 그에 맞게 행정절차를 밟아야한다. 학생이나 연구원 인건비 행정은 더욱 복잡하다. 연구에 참여하는 비율에 따라, 학생들의 졸업과 휴학에 따라, 그에 맞는 행정절차를 따라야 한다. 연구 장비와 재료비 집행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금액에 따라 직접 살 수 있는 게 있고 중앙관리 부서가 구매해야 하는 것이 있고 공개 입찰을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연구책임자가 연구 행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복잡한 연구비 지원방식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유럽의 경우 연구비에 학생인건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 곳이 많다. 왜냐하면 대학원생의 경우 학위논문과 연계돼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직접 받으므로 따로 연구비에 학생인건비를 신청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연구 장비와 재료도 현물로 지원해 구매절차를 연구책임자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도 있다. 그러니 그들의 연구비는 우리의 연구활동비를 말한다. 학회에 가고 워크숍이나 회의 개최 비용 정도만 신청하면 끝이다.
학령인구가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다. 대학원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금, 공학분야는 몰라도 자연과학분야는 유럽식 연구비 제도를 적용해볼 만하다. 즉 대학원생과 지도교수가 매칭이 되면 교육부가 대학원생에게 전액 장학과 생활비를 지원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연구비 신청서류에 학생인건비 비목을 없애도 되고 인건비 풀링제도도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장비와 재료의 현물지원 서비스까지 갖추면 그야말로 연구책임자는 연구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런 연구비 지원방식을 우리네 과학 기술자들이 모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공계 기피현상의 탈피를 위해서라도 다음 정부에서 적극 추진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