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트럼프 발 관세전쟁, 우리 대응은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카키스토크라시(Kakistocracy)’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4년간의 부재 끝에 백악관으로 돌아온 것은 모든 곳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면서 “미국인의 절반을 비롯해 세계의 많은 이들의 두려움을 요약한 단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카키스토크라시는 ‘가장 저열한 자들의 지배(The rule of the worst)’ 정도로 번역된다. 그리스어로 ‘나쁜, 못된’이란 의미인 카코스(Kakos)의 최상급 ‘카키스토(Kakisto)’에 지배·통치를 뜻하는 ‘크라시(Cracy)’를 결합한 용어다.(‘카키스토크라시’ 김명훈 지음. 비아북 2021년 참조)
세계 각국 트럼프발 ‘카키스토크라시’ 파장 우려
트럼프에게 이런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더 다각적으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 체제를 이끌어갈 행정부 수장들에 대한 인선과 그가 직접 언론 등을 통해 밝힌 정책 구상을 살펴보면 ‘시장(Market)’과 ‘실용(Pragmatism)’을 중시하는 키워드가 읽힌다. 트럼프의 집권 2기 정책 목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다.
MAGA의 청사진이자 실행계획은 ‘프로젝트 2025’에 세세하게 담겨져 있다. 트럼프는 극심하게 분열됐던 미국의 남북을 통일시킨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벤치마킹해왔고 MAGA도 링컨의 ‘맥(MAG, Make America Great, 미국을 위대하게)’에서 따왔다. 당연히 트럼프 내각은 ‘프로젝트 2025’ 작성과 관련된 인사들, 공화당내 트럼프 충성파 인맥 등으로 채워질 것으로 예측됐지만 결과는 달랐다.
특히 재무부장관 지명자인 스콧 베센트는 과거 민주당 지지자였고 민주당에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조지 소로스의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소로스 펀드에 근무하면서 1992년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둔 사람이다. 소로스로부터 20억달러를 투자받아 자산운용사 키스퀘어를 설립해 성공을 거뒀다. 그는 MAGA 기획자들이 제시한 낙태반대와 동성애 등을 금지해 잃어버린 청교도 기업가 정신을 부활시키겠다는 이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동성애자로 남편인 존 프리먼(뉴욕시 검사)과 대리모를 통해 낳은 2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다. 베센트는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3개의 화살’ 정책을 본떠 만든 ‘3-3-3’ 정책을 트럼프 당선인에 조언했다. 2028년까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까지 삭감, 하루 300만배럴 상당의 원유 증산, 규제 완화로 GDP 3%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는 12월 12일(현지시간) JD 벤스 부통령, 베센트 장관 후보자 등과 뉴욕증권거래소 타종 행사에 참석해 “나는 증권시장을 중시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시장에 필요하다면 정책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시장 중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프로젝트 2025’ 청사진에 따라 첫 작품인 정부효율위원회(DOGE)를 창설해 일론 머스크와 비벡 라와스와미를 공동수장으로 앉히는 인선들을 보면 기업 경영이나 투자회사 등을 통해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를 기용해 각종 기득권을 축소하고 비대해진 정부의 몸집을 줄여 기업과 국민에게 되돌려주겠다는 ‘실용’을 추구하고 있다.
실용의 외교와 통상 방안으로 트럼프 리스크 맞서야
트럼프는 선거 과정에서 반대편에 섰거나 관계가 껄끄럽던 빅테크 수장들과 '거래의 달인'답게 화해했다. 애플의 팀쿡은 트럼프의 마러라고를 방문해 저녁을 함께하며 관계를 개선했고, 제프 베이조스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때 27만6000달러를 기부했지만 트럼프에게는 100만달러를 냈다. 마크 저커버그와 오픈AI 창업자 샘 올트먼 역시 차기 정부 취임식에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상호 이익을 위한 균형점을 찾는 거래(Deal)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1월 20일 트럼프의 취임과 동시에 전세계를 향한 ‘관세전쟁’은 이미 선전포고돼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미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캐나다 정치가 위기를 맞았다. 25% 관세 부과 위협에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국경 안보를 개선하기 위해 6년 동안 13억캐나다달러(약 1조3000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집행하겠다고 밝혔지만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재무장관이 재정 문제를 들어 반대하면서 사임하는 등 내분이 일었다. 캐나다달러는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 사태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계 각국이 트럼프 2기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우리도 하루 빨리 정치적 불확실성을 떨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트럼프정부의 ‘카키스토크라시’ 발 파장에 두려워하기보다 실용과 상호 이익의 관점에서 돌파구를 찾아 외교와 통상 방안을 준비할 때다.
안찬수 오피니언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