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은 거대동물 멸종의 수수께끼

2024-12-27 13:00:01 게재

빙하기 이후 기후변화로 서식지 잃어 … 현생인류 서식지 확장과 ‘매머드’ 멸종지도 일치

매머드(mammoth)는 포유류 장비목에 속하는 동물이다. 현생 코끼리의 조상이다. 코끼리와 비슷한 몸집에 C자로 휜 긴 엄니(상아)와 추위에 적응한 긴 털이 특징이다. 플라이스토세(빙하기)인 약 480만년 전부터 약 4000년 전까지 지구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약 400만년 전에 살았던 가장 오래된 매머드 화석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됐다. 매머드는 아프리카에서 다른 대륙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매머드는 현생 ‘아시아코끼리(Elephas maximus)’와 비슷한 덩치를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큰 매머드 화석은 ‘쑹화강(송화강)’ 인근에서 발견됐다. 이 ‘스텝매머드’는 발끝에서 어깨까지의 높이가 5m나 됐다. 평균치로 볼 때 아시아코끼리는 2.7m, 아프리카코끼리는 3.3m 정도다.

매머드의 거대한 엄니는 4m에 이른다. 엄니는 위턱에서 아래로 나와 위로 둥글게 말려 있었다. 빽빽하게 난 검은 털과 8㎝ 두께의 피하지방이 영하 40도의 추위에서 몸을 지켜주었다. 추위에 민감한 코와 귀도 현생 코끼리보다 짧고 작았다. 러시아혁명 직전 시베리아의 얼음 속에서 온전한 매머드 사체가 발견돼 매머드가 주로 솔잎이나 어린 나뭇가지를 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노아의 방주’

매머드는 1만여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대부분 멸종했다. 그런데 베링해 북쪽 북극해의 브란겔섬에는 기원전 1700~1500년 경까지 ‘털매머드’가 살았다. 이 섬은 육지에서 북극 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빙하기 이후에도 사람이 살지 않았다.

2004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브란겔섬의 자연보호지역에는 다양하고 희귀한 동식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브란겔섬은 빙하기 이전부터 근래에 이르는 자연 진화 연구의 보물섬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가기 힘든 보호구역이기도 하다. 러시아 당국의 허가를 받고 여름엔 쇄빙선, 겨울엔 헬기를 타고 가야 한다.

약 1만2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150m가량 높아졌다. 시베리아 북쪽의 거대한 육지가 바다로 변했다. 브란겔섬은 그 지역에서 제주도 4배 크기의 높은 땅 일부가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다. 육지가 섬이 되면서 이 일대에 살던 털매머드도 같이 고립됐다. 자연적으로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진 셈이다.

지난 6월 27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셀’에 스웨덴 스톡홀름대 고생물 유전학센터 연구진의 매머드 관련 논문이 실렸다. 연구진은 “지구상 매머드 마지막 개체군이 브란겔섬에 고립돼 6000년 동안 생존했고 이들의 유전적 다양성은 매우 느린 속도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고립될 당시 최대 8마리에 불과했던 매머드는 20세대 만에 200~300마리로 늘어났다.

연구진은 브란겔섬의 털매머드 14마리와 섬에 고립되기 전 시베리아 본토에 살았던 매머드 7마리의 유전체를 비교 분석했다. 게놈 분석 결과 14마리의 매머드는 멀게는 9200년 전, 가까이는 4300년 전에 이 섬에서 살았다. 4900년에 걸쳐 생존한 브란겔섬 매머드들은 동부 시베리아 쪽 조상들과 비교해 근친교배의 흔적과 낮은 유전적 다양성을 보였다.

연구진은 “그러나 유전적 다양성 감소가 6000년 동안 매우 느리게 진행됐고, 이는 생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이 연구로 매머드가 근친교배 등 유전적인 이유로 멸종했을 것이라는 기존 학설에 의문이 제기됐다. 연구진은 브란겔섬 매머드 멸종에는 어떤 무작위적인 사건이 작용했을 것이며 그런 사건이 없었다면 이 섬의 매머드들은 지금까지 생존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빙하기를 거닐던 거대동물들

일반적으로 ‘빙하기(Ice Age)’라고 부르는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는 약 258만년 전부터 1만2000년 전까지의 지질시대다. 홍적세(洪積世) 갱신세(更新世)라고도 한다. 신생대 제4기에 속하며 플리오세에서 이어진 시기다. 빙하기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180ppm이었다. 이 수치는 산업혁명 전 280ppm, 지금은 415ppm으로 높아졌다.

빙하기의 평균기온은 지금보다 6℃ 정도 낮았고 가장 차갑게 냉각된 북극의 기온은 지금보다 14℃ 정도 낮았다. 이런 온도 차는 별로 큰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빙하기의 특징은 위도 40도 부근까지 빙하가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는 ‘빙하기와 간빙기’의 반복 사이클이다.

빙하의 최전성기에는 지구 표면의 30% 정도가 빙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의 경우 백두산과 개마고원 일대가 만년설 지대였다. 빙하기에는 추위에 잘 적응한 매머드와 곧은상아코끼리(straight-tusked elephant) 같은 코끼리류가 많이 살았다. 빙하기가 끝나는 시기는 고고학의 눈으로 보면 구석기 시대의 끝이다.

19세기의 지질학자들은 “시베리아에서 코끼리의 뼈가 밀집된 형태로 발견된다. 얼음이나 진흙에 묻혀있던 뼈가 여름이면 산더미처럼 드러나 중요한 통상품목이 되어 있다”고 기록했다. 그것은 코끼리가 아니라 매머드 뼈였다. 중국인들은 2000년 이상 전부터 이 뼈(상아)를 사들여 공예품으로 만들어 팔았다.

현지인들은 얼음 속에 있다가 여름에 나타나는 이 거대한 짐승의 뼈를 두려워했다. 중국인들은 현지인들의 말을 듣고 매머드를 “북방의 지하에 사는 거대한 쥐”라고 생각했다. 17세기 중국의 책에는 “거대한 이(상아)로 흙을 파고 전진하며 공기에 닿거나 햇볕을 받으면 바로 죽어버린다”고 쓰여 있다.

네안데르탈인과 하이델베르그인, 호모 사피엔스의 서식지 분포. 인류 서식지 확장과 거대포유류 멸종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몸무게 7톤의 ‘자이언트나무늘보’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는 동안 매머드를 비롯한 많은 거대동물이 멸종했다. 같은 시기 작은 동물과 새들은 거의 멸종하지 않았는데 성체의 몸무게가 50㎏ 이상인 거대동물들은 대부분 멸종하거나 크기가 작아지는 ‘왜소화’를 택했다. 현생 아메리카들소는 선조인 ‘바이슨’ 집안에서 가장 작은 크기로 변해서 살아남은 경우다.

빙하기 때 유라시아를 휘젓고 다니던 ‘동굴사자’는 지금의 사자보다 1/4 정도 더 컸다. 북아메리카엔 흑곰 크기의 거대한 ‘비버’가 살았다. 남아메리카엔 몸길이 2m의 ‘아르마딜로’가, 호주 대륙엔 몸길이 3m의 ‘캥거루’가 살았다. 그 가운데 압도적으로 큰 동물은 아메리카대륙의 ‘자이언트나무늘보’였다. 몸무게가 7톤에 달했고 일어선 키는 6m가 넘었다.

영화 ‘아이스 에이지’에서 디에고(Diego)로 나오는 ‘검치호랑이’도 체중이 450㎏까지 나가는 대형종이었다. 야생에서 최대 300㎏에 달하는 호랑이보다 훨씬 컸다. 지구 역사상 가장 큰 고양이과 동물이었던 검치호랑이는 인류가 아메리카대륙으로 진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멸종했다. 사람들이 이들의 먹이였던 대형 초식동물들을 멸종시키거나 감소시켰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서식지를 넓혀가는 동안 매머드 동굴사자 동굴곰 동굴하이에나 메갈로케로스 털코뿔소 등 같은 대형 포유류를 대부분 멸종시켰다고 주장했다. 실제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 대부분은 인간이 그들이 살던 땅으로 진출한 이후 멸종되었다.

인류세, 6번째 대멸종의 시대

현생인류는 빙하기의 혹독한 겨울을 매머드 사냥으로 이겨냈다. 매머드는 4톤에 이르는 고기와 두꺼운 털가죽, 움집의 뼈대가 되는 긴 뼈를 제공했다. 거대한 상아는 나무로 불을 붙이면 오래 타는 좋은 땔감이었다. 동유럽과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당시 주거지 유적들은 대부분 매머드 뼈로 지어졌다. 움집 하나에 보통 매머드 20마리의 뼈가 들어갔다. 큰 움집은 60여마리의 뼈로 지어진 것도 있다. 대규모 집단사냥이 매머드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됐다.

1만년 전 조상들은 인간의 서식지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180종에 이르는 대형 포유류를 멸종시켰다. 지금은 6번째 대멸종의 시대라고 한다. 인류는 온실가스 배출과 생물 서식지 훼손으로 제6의 대멸종을 불러온 장본인이 될 것인가. 인류세(홀로세)의 대멸종을 막은 슬기로운 생물이 될 것인가.

남준기 기후재난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