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다시 권력을 생각한다

2024-12-31 13:00:01 게재

지금 우리나라는 지도자 한명 잘못 뽑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계엄에 이은 한덕수 권한대행의 파국 선택은 나라를 벼랑 끝으로 내몰아버렸다. 정치적 혼란은 물론, 그렇지 않아도 내리막길이었던 경제는 침체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 2기 출범 등 엄중한 외교안보적 전환기조차 그냥 손 놓고 바라만 봐야 하는 처지다. 여기에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는 우울한 마음들을 더 무겁게 짓누른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수사는 거부하면서 여전히 정상적으로 직무를 수행중인 양 처신해 국민 부아를 돋우고 있다. “총을 쏴서라도 국회 문을 부수라” “국회가 해제하면 제2, 제3의 계엄을 하면 된다”는 식의 차고 넘치는 내란 지휘 정황에 대해서는 ‘모르쇠’하면서 무안공항 참사에 대해 “국민과 함께 하겠다”며 염장을 지른 것이다. 그야말로 “용산이무기의 지랄발광”(김용태 신부)에 온 국민이 화병에 걸릴 지경이다.

전두환만큼 후안무치하고 박근혜보다 더 반역사적인

최근 윤 대통령의 모습은 ‘권력의 본질’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전두환 뺨칠 정도로 후안무치하고 박근혜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반역사적이면서도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헌법과 법률을 초월한 듯한 내란 도발과 그 이후 행적도 마찬가지다.

권력의 인지적 영향 연구에 관한 권위자 대커 켈트너(Dacher Keltner) UC버클리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권력자들은 자제력을 잃는 경향이 있고,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또 상스럽고 속된 말 또는 무례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와이너(David L. Weiner)도 책 ‘권력중독자’에서 권력에 취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과대망상적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지배권이 조금이라도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면 불같이 화를 내며 조그마한 비판도 자신의 지위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보복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썼다.

이런 연구에 비춰보면 윤석열은 ‘권력중독자’의 전형이다. 그는 자신에 비판적인 유승민 이준석 한동훈을 찍어냈고, 야당의 견제를 못 참아 군대를 동원했다. 지난 2년 반 국격을 떨어뜨린 숱한 언행에도 부끄러움은 언제나 국민 몫이었지 그가 신경 쓴 흔적은 없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격노’와 ‘상소리’도 일종의 권력중독 증상이었던 셈이다.

더 볼썽사나운 것은 윤석열 권력의 실체가 봉건적 전근대적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근대화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권력의 집중에서 민주주의로, 종교에서 과학중심으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막스베버는 그 특징을 ‘합리화(Rationalisierung)와 탈주술화(Entzauberung) 과정’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런데 윤석열 권력은 완전히 시대를 거꾸로 돌렸다. 반(反)시장주의와 반(反)민주주의는 물론 탈(脫)주술에서 오히려 재(再)주술로 되돌아갔다. 주요 사건마다 등장하는 도사 법사들, 대선시절의 손바닥 왕(王)자 메모, 대통령실의 느닷없는 용산 이전, 김건희 여사와 영적 대화를 한다는 명태균, 12.3 내란음모의 비선핵심이었던 ‘버거보살’ 노상원 등을 보면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주술이 이미 신념이 된, 그래서 그 망상체계의 지배를 받는 상태가 된 것 같다. 주말마다 신도부대를 이끌고 탄핵반대를 선동하는 목사의 탈을 쓴 선무당들도 마찬가지다.

‘역사와 국민 배반한 권력중독자들’ 묘갈명 남길 것

그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기 7개월 전쯤 필자는 ‘윤석열이라는 위험한 사례’라는 시론을 쓴 적이 있다.(2020년 11월 15일자) “언감생심 대통령을 꿈꾸는지 알 수 없지만 혹시 그럴 요량이라면 이것 한 가지는 꼭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언제 단 한번이라도 검찰 아닌 국민 입장에서 시대를 고민한 적이 있었는지를.” 하지만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국민 입장에 서기는커녕 헨리 키신저 말마따나 ‘권력이라는 최고의 최음제’에 중독돼 끝내 제 무덤을 자기가 파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알량한 여당권력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국민의힘을 보노라면 저게 제정신인가 싶다. 시대를 거스르다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윤석열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어떻게 ‘도로친윤당’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가. 국민의 바람을 외면하며 불확실성을 선택해 혼란만 덧보탠 한덕수 총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 역시 지금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을 뿐이다. 그리 멀지 않은 훗날 그들의 무덤에는 ‘역사와 국민을 배반한 탄핵정국의 권력중독자들’이라는 묘갈명(墓碣銘)이 새겨질 것이다.

남봉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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