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을 2024년 일본 증시…실물경제는 침체 지속
닛케이지수 35년 만에 4만 돌파, 각종 지표 최고치
실질GDP 예상치 밑돌 전망 … 물가 오름세 지속
올해 일본 주식시장은 역사적인 한 해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증시는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고, 개별 기업의 시가총액은 급증했다. 가계 금융자산의 대부분을 예금과 보험 등 안전자산에 투자했던 데서 자본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도 보이고 있다. 다만 금융시장은 활력을 찾는 데 반해 실물경제는 좀처럼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가총액 10조엔 돌파 기업 두배 늘어 = 아사히신문은 31일 “30일 폐장한 도쿄증시는 연말 종가 기준 35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며 “지난해 말 대비 주가지수는 19% 올라 전년도에 이어 2년 연속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도쿄증시에서 닛케이지수는 3만9894.54로 막을 내렸다. 연말 종가로는 1989년 12월29일(3만9098.68) 이후 3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닛케이지수는 올해 7월(11일)에는 4만2426.77까지 상승해 역대 최고점을 찍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은 “올해는 버블경제기 최고치를 경신하고 주가지수가 4만을 돌파했지만 역대 최대 수준의 폭락을 경험하는 등 격동의 1년을 보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닛케이지수는 7월 최고치를 찍었지만, 8월 5일 전장 대비 12.4%(4451포인트) 폭락해 3만1458.42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 지수는 이후 회복세를 보이면서 27일(4만281.16) 4만을 회복했다 30일(3만9894.54) 4만에 조금 미치지 못한 수준에서 올해 장을 마감했다.
증시가 호황을 보이면서 각종 기록도 풍성하다. 먼저 도쿄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1000조엔(약 9300조원)을 넘어섰다. 도쿄증시 1부에 해당하는 프라임시장 시가총액은 30일 기준 974조1900억엔에 이른다. 이밖에 스탠다드시장(28조5130억엔)과 그로스시장(7조6702억엔)까지 더하면 1000조엔을 넘는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전세계 주식시장에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번째 규모다.
이는 우리나라 코스피 시가총액이 지난 25일(약 1998조원) 2000조원 밑으로 떨어지는 등 2000조원 안팎에 머물러 있는 것과 대비된다. 한국과 일본의 명목GDP 격차가 2.5배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5배에 가까워 한국 주식시장이 크게 저평가돼 있음을 알수 있다.
도쿄 증시 개별 종목의 시가총액도 크게 늘었다. 지난 27일 기준 시가총액 10조엔(약 93조원)을 넘는 기업은 모두 18개사로 지난해 말(10개사)보다 8개 증가했다. 도쿄 증시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은 세계 1위 완성차 업체인 도요타자동차로 50조3000억엔(약 468조원)에 이른다. 이어서 미쓰비시UFJ금융그룹(22조1000억엔)과 소니그룹(21조엔), 리쿠르트홀딩스(18조9000억엔), 히타치제작소(18조5000억엔) 등이 상위 5개 기업에 들었다.
올해 1월 처음 10조엔 클럽에 가입한 히타치제작소는 지난 1년간 시가총액이 97% 증가하면서 내년에는 20조엔을 넘어설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내다봤다. 이 신문은 30일 “전세계적으로 10조엔 클럽에 들어간 기업이 모두 313개 기업으로 미국이 167개사에 달해 가장 많다”며 “일본은 중국(24개사)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우리나라 코스피시장에서 시가총액 100조원을 넘는 기업이 삼성전자(약 320조원)와 SK하이닉스(약 130조원) 두개 기업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올해 도쿄증시 프라임시장에서 연간 주가 상승률이 100%를 넘은 기업은 29곳에 달했다. 특히 광섬유와 전선 등을 생산하는 후지쿠라는 작년 연말 종가와 비교해 주가가 504%나 올랐다.
◆올해 성장률 0.4% 그칠 듯 = 일본 정부 내각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올해 실질GDP 성장률 전망치에 따르면, 2024년 성장률은 0.4%로 당초 예상했던 0.7%에서 0.3%p 낮다. 수출이 둔화되면서 대외부문의 성장률 기여도가 -0.6%p에 달해 기존 예상치보다 크게 저하될 것으로 추정됐다. 물가도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연간 2.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앞서 총무성은 20일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7%로 10월(2.3%)보다 오름폭을 키웠다고 발표했다.
내각부는 다만 내년 이후 거시경제 성장률은 올해보다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질GDP 성장률은 1.2%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개인소비(1.3%)가 올해(0.8%)보다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 가운데 설비투자(3.0%)도 선방할 것으로 내다봤다. 소비자물가는 올해보다 둔화돼 2.0%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 정부는 특히 1인당 명목 국민소득(GNI)이 한국을 2년 연속 밑돈 것에 주목했다. 내각부가 23일 발표한 ‘2023년 국민경제계산 연차추계’에 따르면, 일본의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전년보다 0.8% 감소한 3만3849달러로 한국(3만5563달러)보다 2년 연속 뒤진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의 1인당 소득은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22위로 한국(21위)보다 한계단 아래에 위치했다. 지난해 일본의 명목GDP 총액은 4조2137억달러로 미국과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에 머물렀다. 일본의 명목GDP 규모는 2022년까지 세계 3위 수준이었지만 지난해는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독일에 밀렸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일본의 명목GDP가 이르면 2025년 인도에도 밀려 세계 5위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의 실질GDP 성장률이 침체되고, 명목GDP 규모도 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낮은 노동생산성을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일본생산성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6.8달러로 OECD 회원국 가운데 29위에 그쳤다. 일본경제센터는 “본질적인 문제는 일본의 노동생산성이 한국과 대만에 크게 뒤지는 것”이라며 “디지털 전환(DX)과 근로자 재교육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