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칼럼
뉴스로 보는 대통령의 음모
연말연시 활기가 도는 곳이 있다면 뉴스시장이다. 경제는 바닥이고 세상은 잿빛인데, 뉴스시장엔 신상품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출하되는 즉시 대량소비된다. 사람들은 어딜 가도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뉴스 보며 연말을 보내고 뉴스와 함께 새해를 맞는다. 동료와 함께 밥 먹다 말고 “뭐 무슨 점집에서 계엄노트가?” 하며 뉴스에 놀라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을 앞에 두고도 “방금 나온 뉴스인데, 권한대행이 탄핵되어…” 하며 뉴스 얘기를 한다.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린 12.3 계엄사태 이후 생겨난 사회풍속도다.
불법계엄 이후 시장에 나오는 뉴스는 한결같이 ‘사상 초유’의 등급이다. 이번 계엄이 전두환정권의 5·17이후 44년 만에 발생한 친위 쿠데타인데다 어쭙잖은 계획과 무모한 실행으로 6시간 만에 실패로 돌아간 만큼 파헤쳐야 할 스토리, 새로 전개되는 뉴스는 차고 넘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그들만의 생존논리라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실패한 쿠데타는 역사의 단죄를 받는 것 외에 다른 출구가 없다. 모의에서 실행 그리고 사후 발뺌과 뻔뻔한 거짓말까지 쿠데타 막전막후를 전하는 뉴스 한줄 한줄에 국민들 감시의 눈이 집중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음모론 신봉자 대통령의 황당한 음모
여전히 관심 가는 대목은 쿠데타를 결행하기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인식의 흐름이다. 그가 담화를 통해 밝힌 계엄선포의 사유 즉 “자유민주주의 수호” “야당에 경고를 주려고” 따위의 말들은 본심이 아닐 것이다. 계엄이면 군대가 사법·행정권을 가지고 국민의 기본권인 자유와 민주를 제약하게 된다.
그런데 제약되는 자유·민주를 수호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한다고 하면 도무지 말이 안되는 난센스다. 쿠데타는 원래 목숨 걸고 하는 것 아닌가. 그걸 고작 ‘야당 경고용’으로 선포했다가 “아니면 말고”식으로 해제했다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현실에선 무시무시한 포고령을 내리고 위반 시 ‘처단’ 운운하더니 돌아서선 “그건 아니고 그냥 경고…” 라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다.
윤 대통령이 어쩌다가 자기 무덤 팔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지 진상은 베일속이다. 사태 초기 세간에선 대통령의 성정(性情)으로 미루어 “술 취한 김에 한번 내질러본 것 아니겠나”라는 말도 나왔지만 사전 모의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적어도 ‘주취(酒醉)계엄’ ‘즉흥계엄’은 아닌 게 확실해졌다. 진실은 수사와 재판에서 드러날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깊이 동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정부 또는 야당이 선관위 서버를 해킹하는 등의 방법으로 선거 결과를 조작한다는 주장이다. 과거 방송인 김어준씨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대선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음모론을 들고 나왔고, 이후 보수정당이 크게 패한 두번의 총선에서도 전산 데이터 조작이 있었다고 극우파들은 주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인증받겠다며 여러차례 법원에 소송을 내기도 했는데 당연하게도 그때마다 근거없는 주장으로 결론 났다. 그래도 이들은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다. 음모론 신봉자에게 객관적인 반대증거나 논리적 반론이란 허울에 불과할 뿐 설득요소가 되지 않는다. 믿고 싶은 것은 아무리 빈약한 증거라도 전폭 수용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것은 아무리 딱 떨어지는 증거라도 그럴 리 없다며 외면하는 게 그들의 특징이다.
음모론에 빠지면 달 착륙에서 9.11 테러, 코로나19 백신,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것을 음모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한발 더 나가 정부가 날씨를 통제하고 지구가 평평한데 우리 모두 속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이 어디까지 빠졌는지 모르지만 이태원 참사를 음모론의 시각으로 보더라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증언으로 미뤄보면 아무래도 중증 같다. 극소수 유튜브 채널 외에는 세상 누구도 하지 않는 선거 음모론을 철석같이 믿은 것을 보면 알고리즘이 가리키는 유튜브 동굴에 그의 사고가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게 아닐까.
망상 실행하다 체포영장 받은 대통령
윤 대통령이 계엄군을 국회보다 먼저 선관위에, 그것도 최정예 병력을 출동시킨 사실을 놓고 언론은 대개 이렇게 분석한다. “선관위 어딘가에 숨어있을 부정선거의 증거를 확보하기만 하면 그걸로 국회를 싹 다 정리할 수 있다고 대통령은 믿은 것 같다.”
그가 중증 음모론자라는 점에 주목하면 아닐 수도 있다. 음모론자들에게 음모는 증거의 존재여부와 무관하게 어차피 진리다. 대통령은 선관위를 강제조사한 뒤 무조건 계엄사를 통해 “선거부정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발표하는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현실과 동떨어진 망상의 세계에 살면서 자신이 꾸민 음모를 실행하다 급기야 체포영장까지 받아들게 된 대통령, 그런 그가 마지막까지 자리보전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는 뉴스에 가슴 답답한 새해 아침이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