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동조’ 대신 ‘경제 살리기’ 택한 최상목 대행

2025-01-02 13:00:02 게재

용산·여당 극렬 반대 속 헌법재판관 2명 임명 결단

일부 장관 반발 등 후폭풍 몰아치며 국정수행 부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여권의 극심한 반발을 감수하며 헌법재판관 3명 중 2명을 임명하는 소신행보를 선택했다. 나머지 1명을 임명보류한 절충형 행보였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내란 동조 대신 경제 살리기를 택했다는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대통령실 참모들의 집단 사의 표명, 일부 장관들의 반발 등 후폭풍이 이어지며 안 그래도 기반이 약한 ‘권한대행의 대행’의 국정운영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최상목 권한대행, 중대본 회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고기동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 김석우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2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2월 31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헌법재판관 2명 임명 결단 배경에는 최근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수준으로 치솟는 등 경제 불안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더이상의 불확실성을 남겨둬선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도 “24년말 환율이 97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인 1470원까지 상승하였으며 주요 외신과 해외 투자자들은 정치적 불확실성 지속시 대규모 자본 유출과 신용등급 하락을 경고하고 있다”며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를 강조했다. 이어 “하루라도 빨리 정치적 불확실성과 사회 갈등을 종식시켜 경제와 민생 위기 가능성 차단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에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해 헌법재판관 임명으로 당장 급한 경제 위기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날 발표 후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권한대행, 이완규 법제처장 등이 목소리를 높이며 비판하자 최 권한대행은 “사퇴도 생각한다”면서도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헌법재판관 임명이 더이상 미뤄지면 ‘6인 체제’ 하에서 과연 탄핵선고가 가능한가 여부를 놓고 정당성 논란이 지속될 테고, 윤석열 대통령의 버티기 전략에 따라 탄핵심판이 계속 길어질 경우 올 4월에는 다른 2명의 헌법재판관까지 공석이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거론되던 터다. 이 정도 불확실성 리스크를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느냐를 놓고 최 권한대행이 심각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최 권한대행의 이번 결정과정이 ‘경제관료의 전형적 정책 결정방식’과 닮았다는 분석도 있다.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는 수십년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정책결정을 하면서 쌓아온 노하우가 있다.

우선 예측 가능한 경우의 수(시나리오)를 모두 나열한다. 시나리오 중 현격하게 편법·불법 논란이 예상되는 선택지는 일단 제외한다. 나머지 경우의 수 중 효율성과 적정성, 여론효과를 종합고려해 최종 정책을 결정한다.

민감한 사안에 직면해 국민들로부터 욕(?)을 적게 먹는 정책결정 방식인 셈이다. 세간의 관심이 “헌재 재판관 3명을 임명할까, 거부할까”에 쏠려 있을 때, 예상치 못했던 ‘2인 임명, 1인 보류’란 줄타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실제 지난달 31일 국무회의를 앞두고 기재부는 “여러 개의 모두발언을 준비해놓고 있다. 최 권한대행이 각계 의견을 듣고 최종 선택을 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적어도 헌법을 위반해 직무를 수행할 수는 없다는 최 권한대행의 ‘리걸 마인드’(legal mind·법률적 사고방식) 가 반영된 것”이라고도 해석했다. 헌법 111조 3항은 ‘대통령은 헌재 재판관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것 자체가 위헌상황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문제는 후폭풍이다. 최 권한대행의 조한창·정계선 헌법재판관 임명 소식에 여권은 강하게 반발했다. 여권의 격렬한 반발은 안 그래도 입지가 좁은 최 권한대행을 더 옥죌 전망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책임과 평가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독단적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비서실 고위 참모들도 새해 첫날인 1일 집단 사의를 밝히며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실은 이날 “대통령비서실과 정책실, 국가안보실의 실장, 외교안보특보 및 수석비서관 전원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거듭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정진석 비서실장의 사의 표명에 대해 애초 수리 방침이었던 최 권한대행은 최종적으로는 반려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기재부 측은 “민생과 국정안정에 힘을 모아 매진해야 할 때”라는 점을 반려의 이유로 들었다.

김형선·성홍식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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