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는 이렇게 기획됐다

2025-01-02 13:00:12 게재

윤 대통령, 최소 지난해 3월부터 본격 논의 … 8월 김용현 국방장관 전격 임명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12.3 비상계엄 사태’는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검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경찰·군검찰의 형법상 내란·직권남용죄 수사 단계로 넘어갔다. 이른바 사법절차가 시작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은 윤 대통령이 이런 무모한 일을 언제부터 계획했나로 모아진다.

비상계엄에 대한 우려가 공개적으로 처음 제기된 것은 정치권이다.

지난해 8월 12일 윤 대통령은 임명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외교안보라인을 특별한 이유없이 교체했다. 당시 인사의 핵심은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한 것이다. 현재까지 수사결과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을 사실상 총지휘한 인물이다.

또 경질 가능성이 높았던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김 전 장관 임명으로 살아남았다는 점도 주목해서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문 사령관은 계엄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긴 주도세력이다.

문 사령관은 지난해 7~8월 정보사에서 발생한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과 하극상 논란으로 경질 가능성이 높았던 인물이다.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명단 유출 사건과 관련해 “전반적인 혁신,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하겠다”고 밝히며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이후 국방부는 정보사 혁신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고, 문 사령관 경질안이 장관에 보고됐다. 하지만 신 장관이 대통령실 안보실장으로 가고 후임으로 김 전 장관이 오면서 인사 논의가 중단됐다.

◆지난해 8월 이후 거칠어진 대통령 발언 = 공교롭게 인사 이후 윤 대통령의 발언이 거칠어진다.

윤 대통령은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으로 광복회와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검은 선동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발언했다. 국무회의에선 “반국가 세력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이에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이 8월 17일 “국방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교체와 대통령의 뜬금없는 반국가 세력 발언으로 이어지는 최근 정권 흐름의 핵심은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외교안보라인 전격 교체가 비상계엄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를 위한 것이란 주장은 ‘최소한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사이에는 비상계엄에 대한 공모가 이뤄졌다고 봐야 하는데 그럼 모의가 시작된 시기는 언제냐’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열쇠를 제시한 것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 특수본)다. 그 실마리는 특수본이 지난달 12월 27일 김 전 장관을 내란 주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내놓은 참고자료에 있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적어도 지난해 3월부터 비상계엄을 염두에 두고 김 전 장관 등과 여러 차례 논의했고, 11월부터는 실질적인 준비를 진행했다고 판단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전날까지 계엄 관련 발언과 논의를 한 횟수는 최소 9차례라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말에서 4월 초 무렵에 있었던 종로구 삼청동 안전가옥(안가) 모임에서부터 비상계엄에 대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경호처장이던 김 전 장관, 국방장관이던 신원식 안보실장,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등과 모인 자리에서 “시국이 걱정된다”면서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발언했다.

민주당 부승찬 의원 등 야당 일각에서 제기됐던 3월 계엄설은 이들 모임이 알려지면서 제기됐던 것으로 보인다.

국회 본청 진입하는 계엄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다운 기자

◆‘4.10 총선’ 참패 책임, 부정선거로 돌려 = 윤 대통령은 5~6월 김 전 장관, 여 사령관과 다시 안가에 모인 자리에서 “비상대권이나 비상조치가 아니면 나라를 정상화할 방법이 없는가”라고 발언했다.

안가 모임은 이번 계엄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는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직후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의힘 패배로 끝난 22대 총선 결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시스템 해킹·데이터 조작 때문이라는 극우 유튜버 주장을 그대로 옮기면서 사실상 안가 모임의 성격을 스스로 규정했다.

총선 패배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윤 대통령이 선택한 책임 소재는 바로 부정선거였다. 즉, 안가 모임에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필요성을 보다 구체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8월 초 김 전 장관, 여 사령관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인과 민주노총 관련 인물들을 언급하며 “현재 사법체계 하에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비상조치권을 사용해 조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10월 1일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마친 뒤 윤 대통령은 여 사령관,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과의 모임에서 다시 계엄 관련 언급을 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직접 준비한 음식으로 식사하면서 정치인과 언론·방송계 및 노동계에 있는 좌익세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비상대권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후 11월 9일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여 사령관, 곽 사령관, 이 사령관이 참석한 모임에서도 윤 대통령은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검찰선 포고령 초안 김용현 작품 결론 = 검찰은 김 전 장관이 포고령 초안 작성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계엄 준비에 착수했다고 본 시점을 윤 대통령을 관저에서 따로 만난 11월 24일로 특정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김 전 장관에게 “이게 나라냐, 바로 잡아야 한다.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날 이후 김 전 장관이 박근혜정부 시절 국군기무사령부 주도로 작성된 계엄령 문건과 과거에 발령된 비상계엄 하의 포고령 등을 참고해 계엄 선포문과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초안을 작성했다는 것이 검찰 조사 결과다.

이후 김 전 장관은 여 사령관과 11월 30일 오후 6시쯤 장관 공관에서 만나 “조만간 계엄을 할 수도 있다. 계엄령을 발령해 국회를 확보하고, 선관위의 전산자료를 확보해 부정선거의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5시간 뒤인 오후 11시쯤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 여 사령관과 모인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헌법상 비상대권을 써야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이 구체적 병력동원 규모를 언급하며 포고령 수정을 지시한 것은 12월 1일이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그날 김 전 장관에게 “지금 만약 비상계엄을 하게 되면 병력 동원을 어떻게 할 수 있냐” “계엄을 하게 되면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김 전 장관은 “소수만 출동한다면 특전사·수방사 3000~5000명 정도가 가능하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전 장관은 이날 미리 준비한 계엄 선포문과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초안을 보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본 윤 대통령이 포고령 중 ‘야간 통행금지’ 부분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것도 확인됐다.

다음날인 2일 김 전 장관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계엄 선포문과 대국민 담화와 포고령을 완성했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이를 다시 검토한 뒤 승인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당일 김 전 장관과 그간 검토한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경찰 등 일선에 직접 지시했다. 앞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3일 오후 7시쯤 삼청동 안가에서 윤 대통령을 만나 계엄 선포 이후 계획이 담긴 A4 한장짜리 문건을 전달받으며 국회 장악 등을 지시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계엄 3인방’ 동시 진급·보직 눈길 = 하지만 검찰이 제시한 지난해 3월보다 더 이전에 계엄에 대한 모의가 시작됐다는 정황도 다수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계엄 3인방’으로 불리는 여인형·곽종근·이진우 사령관이 2023년 11월 동시에 중장으로 진급해 각각 방첩사령부, 특수전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보직을 받았다는 점이다.

수사기관과 정치권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과 측근들은 이미 2023년 공모해 계엄을 준비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여 전 사령관이 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말(2023년)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 의혹을 언급하면서 비상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진술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국회는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을 두고 연일 대치 중이었다. 2023년 11월 23일 여당의 반대로 본회의 개최가 무산됐고, 이어 30일 본회의, 12월 1·8일 본회의 등에서 수차례 김건희 특검법 상정을 두고 격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결국 민주당은 12월 28일에서야 본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윤 대통령은 약 1주일만인 지난해 1월 5일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외에도 2023년 하반기에 윤 대통령은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손준성·이정섭 검사 탄핵소추, 야당의 감사원 국정조사 추진 등 정치적 압박을 받는 상황이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정권심판에 대한 여론이 거세진 가운데 이른바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 연대) 체제가 무너지는 등 여권 내부 분열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노상원, 2023년 가을 계엄 암시 발언 = 또한 2023년 말 이전부터 이미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비상계엄 사전 기획자로 알려진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2023년 가을부터 군인들의 사주를 들고 한 무속인에게 이들과 함께 해도 되는지, 배신하지 않을 사람인지 물었다는 증언이다.

노씨는 2022년부터 김 전 장관의 앞날을 자주 물었다고 한다. 특히 2023년에는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일이 잘 되면 자신이 여름쯤, 대통령실에서 일하게 될 수 있을 것”이란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한편 정치권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한 인사는 “지난해 8월말쯤 현 정부측 인사로부터 계엄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MZ세대가 다수인 일선 지휘관과 병사들이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지 않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고 나무랐다”고 말해 사전 기획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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