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 ‘범인도피’ 친족특례 적용 안돼”

2025-01-02 13:00:12 게재

1·2심, 무죄 “혼외자도 유추적용 가능”

대법, 파기 환송 “유추적용 허용 안돼”

법률상 친자가 아닌 혼외자가 범죄를 저지른 아버지(생부)를 도피시킨 혐의로 기소된 경우, 형법상 범인도피죄의 친족특례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2심은 부자 관계에 유추 적용할 수 있다며 무죄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친족의 정의가 법률상 명백하기 때문에 이를 유추 적용할 수 없다며 유죄로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범인도피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광주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일 밝혔다.

A씨는 폭력 조직의 부두목 B씨의 혼외자이다. B씨는 2019년 5월 지방의 한 노래방에서 50대 사업가를 감금·폭행해 사망하게 한 뒤 시신을 유기하고 9개월간 수사기관을 피해 도피 생활을 했다.

A씨는 생부인 B씨가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 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같은 해 7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B씨를 여러 차례 만나 800만원의 도피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자신의 지인을 통해 은신할 장소와 대포폰 등을 확보하는 등 B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기소됐다.

문제는 A씨가 조씨의 혼외자라는 사실이었다. 이에 혼외자에게도 형법상 범인도피죄의 친족특례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재판의 쟁점이 됐다.

형법 151조 1항은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한다.

다만, 같은 조 2항은 친족 또는 동거 가족이 범인도피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친족특례를 뒀다.

1·2심은 A씨가 법률상 친족에 해당하진 않지만 혼외자의 경우에는 친족특례를 유추 적용할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부자관계는 관계 확정을 위해 별도의 요건이 필요하지만 그 전에도 혼인 외 출생자와 생부 사이에 자연적 혈연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며 “범인에 대해 도피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는 법률상 친자관계나 자연적 혈연관계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민법에서 규정하는 친족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보고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형법 151조 2항은 구체적·개별적 관계나 상황을 가리지 않고 ‘친족 또는 동거가족’에 해당하기만 하면 일률적으로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함으로써 그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한정했다”며 “유추 적용을 허용할 경우 입법자가 명확하게 설정한 적용범위가 확장되어 입법자의 의도에 반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생부가 인지하지 않아 법률상 친자 관계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에는 비록 생부와 혼인외 출생자 사이의 자연적 혈연관계로 말미암아 도피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규정을 유추 적용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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