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더 약화될 2025년 지구촌 리더십, 더 심각해질 위기
‘희망찬 새해’라는 당연한 바람이 무색하게 2025년을 맞이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무겁다. 국내의 근심거리들이 우리 마음을 짓누르고 있기도 하지만 나라 밖 사정도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다. 지구촌의 위기는 잦아들 줄 모르고 표류하는 국제정치를 이끌어갈 지구적 차원의 리더십은 점차 사그라드는 느낌이다. 국가들 간 경쟁과 대립은 더욱 치열해지고 지구 전반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며 국민들의 주권과 인권을 추구하던 많은 국가들은 예상치 않은 민주주의 퇴행 현상을 보이고 있다.
2024년은 국내외적으로 희망보다 고난이 두드러진 한해였다. 세계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4℃ 상승하며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되었다. 기존 최고기록이었던 2023년의 1.45°C를 넘어선 수치로 13개월 연속 월별 기온 기록을 경신한 결과였다. 폭염 홍수 가뭄 산불 등 극단적 기후현상은 새로운 정점에 도달했다. 재난은 수천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수백만명의 삶을 파괴하며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의심케 하고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환경문제 뿐 아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개발로 인류는 환호했지만 미래는 불확실하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AI 과학자 제프리 힌튼 박사는 향후 30년 내에 인류가 슈퍼컴퓨터에 의해 멸종할 가능성이 10~20%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경고를 내놓았다. 기술의 발전만큼 인간의 도덕성이 뒤따라 발전하지 않는 상황에서 AI를 규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국제적 합의는 여전히 요원하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 치열한 전략경쟁의 시기와 겹친 AI혁명은 적절한 국제적 규제의 가능성을 뒤로 한 채 경쟁의 논리로 불안감을 가중하고 있다.
핵전쟁의 그림자도 여전히 길고 짙게 드리워져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지속되면서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재차 언급하고 사용문턱을 낮추는 핵전략 독트린을 발표했다. 중국은 빠른 속도로 핵전력을 증강하고 있고, 북한은 수시로 핵사용을 위협하며 러시아의 전쟁을 도우며 핵미사일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초국가적 위협 앞에서 국가들은 ‘주권의 덫’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멸의 위기가 짙어져도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몰두해 있는 것이다. 시장논리로 하나로 통합되어 있던 세계경제는 급속히 분열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국 경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했다. 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을 붕괴시키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 간 전략경쟁은 경제의 진영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2024년 세계경제는 약 2%의 저성장을 기록했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높은 인플레이션에 허덕였다.
트럼프 2.0 시대 지구적 리더십 공백 우려
이러한 속에서 2025년 지구적 리더십은 더욱 약화될 전망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이끌어 온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1월 20일 취임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지구적 리더십 공백의 위험을 경고한다. 트럼프는 국제질서 유지에 필요한 국제적 공공재를 제공할 의사를 거부한다. 미국 이익을 위해 기존의 다자주의를 무시하고 양자적 거래를 통한 국익의 극대화를 추구할 전망이다. 미국과 전략경쟁을 벌이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며 미국이 가진 수단들을 동원하고자 한다. 트럼프는 특히 중국에 대해 최대 60%의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있다. 자유주의 경제질서는 약화되고 미중 경제관계는 급속히 악화되며 다른 국가경제에 큰 파급효과를 미칠 전망이다.
세계적 차원의 지정학적 분란이 쉽게 가라앉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속한 해결을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전 혹은 정전을 둘러싼 계산법은 복잡하다.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러시아가 요구하는 서방으로부터의 위협 방지, 점령된 영토 해결 문제, 전후 배상 등 복잡한 문제로 인해 합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종전을 서두른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수와 같은 모습을 우크라이나에서 다시 연출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레바논 휴전이 중동평화를 향한 희망을 보여줄 가능성은 있지만 시리아 아사드 정권 몰락 이후의 정세변화, 헤즈볼라 시리아 하마스 등 대리세력을 잃어버린 이란의 향후 전략, 이스라엘의 지속된 공세 등이 중동의 데탕트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친이스라엘 정책과 이란 견제를 추구할 것이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들의 지원 등과 맞물려 중동국가들 간의 관계 개선은 여전히 미지수다.
올해의 환경악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전환 노력도 공급망 분리와 자원 민족주의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다. AI는 강대국 간 기술·군비경쟁의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적절한 규제 부재로 인해 AI의 편익을 극대화하지 못할 우려가 제기된다.
각국 국내정치도 예측불가능성 확대
지구적 리더십이 약화되고 국가들 간 경쟁이 심해지는 가운데 각 국가들의 국내정치는 예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변하다. 작년의 흐름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각국의 국내 정치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확실해졌다는 점이다.
2024년은 전세계 70개국 이상에서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사람들이 투표를 한 이른바 ‘슈퍼 선거의 해’였다. 60% 이상의 국가에서 집권 정당이 교체되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정권이 교체되었고, 영국에서 노동당이 보수당을 제치고 14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야당에게 정권을 넘겨준 적이 없는 보츠와나에서 약 58년 만에 야당연합인 민주변화우산(UDC)이 승리한 것도 시사적이다.
이러한 대규모 정권교체는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비롯된 국민들의 불만이 축적된 결과였다. 각 국가들이 겪는 경제적 고난은 지구화된 경제 흐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더욱 커지고, 기후변화와 같은 초국가적 위협이 개별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개별 국가들의 정치 변동은 다시 국제정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대규모 정권교체는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비롯된 국민들의 불만이 축적된 결과였다. 각 국가들이 겪는 경제적 고난은 지구화된 경제 흐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개별 국가들의 정치 변동은 다시 국제정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 차원의 대응력의 약화, 반지구화 운동의 대두, 포퓰리즘 및 인기영합주의 정치세력의 득세, 정치적 양극화, 민주주의의 퇴행, 극우 민족주의의 대두,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의 귀환, 정치에 대한 불신, 그리고 정치 과정의 파편화 등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특히 민주주의 정치 과정 자체의 붕괴는 가장 우려스러운 현상으로 지적된다. 국민들이 기존 정당의 문제해결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가운데 정당은 파편화되고 정치가 인기영합주의에 빠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의 파편화는 국민들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며 정치의 사법화라는 현상을 강화한다.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적 결정을 사법부에 맡기는 경향을 의미하며, 이는 이미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관찰되고 있다. 사법부의 권한 강화는 민주주의 공고화에 기여할 수 있지만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가 선출된 입법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종 권위로 등장하는 것이 항상 바람직하지는 않다. 더 나아가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법관들의 임명 과정이 정치화될 경우 사법의 정치화라는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한다. 이러한 과정은 최종 권위의 소재에 혼란을 가중시켜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지구화 시대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실천적 지혜다. 2025년은 이러한 질문이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 한해가 될 것이며, 모든 국가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지속가능한 생존을 유지하며 자치(自治)의 능력을 가질 수 있는가의 질문이 대두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 회복이 절대 중요한 이유
2024년 한국의 민주주의가 상상할 수 없는 위기에 빠졌다면 세계는 상상하기도 싫은 인류 공멸의 영역에 점점 더 깊숙이 발을 들이고 있다. 이제 한국은 위기의 국제정치와 외교 환경에 대비하는 대안부터, 한국이 발휘할 수 있는 크기의 리더십을 발휘해 국제 정치의 난관을 타개하는 대안까지 다양한 선택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구적 리더십이 약화되고 힘에 기초한 다극체제가 고개를 드는 국제환경에서 살아남는 외교부터, 자유주의 국제질서 혹은 규칙 기반 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한국 나름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외교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은 국가의 미래뿐 아니라 국제질서의 회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당장은 보이지 않는 선진국 한국의 미래를 위해 올해를 변곡점으로 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