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채 보호막 ‘프라이머리 딜러제’ 흔들

2025-01-03 13:00:03 게재

과거 누렸던 인기 시들 … 블룸버그 “딜러 은행들, 급증한 미국채 물량 처리에 고군분투”

미국 부채가 급증함에 따라 전세계 최대 국채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역할을 하는 ‘프라이머리 딜러(primary dealer)’들이 점점 압박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채 시장에서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프라이머리 딜러는 미국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 소수의 엘리트 금융사들이다.

프라이머리 딜러는 한때 모든 월가 금융사들이 가입하고 싶어 하는 명예였다. 프라이머리 딜러는 미국채 경매에서 일정량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과거 수십년 동안 수많은 대형 투자자들이 프라이머리 딜러와만 거래했다. 따라서 프라이머리 딜러는 권위와 실질적 중요성이 모두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9월 시타델 시큐리티즈는 10년 넘게 추진했던 프라이머리 딜러 가입 계획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시타델은 이미 미국채 거래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매일 거래되는 약 1조달러 규모의 미국채 중 절반 이상이 전자방식으로 거래된다. 이는 시타델의 강점이다. 최근 수년 동안 미국채 발행량이 늘어나면서 경매가 보편화됐다. 프라이머리 딜러가 아니더라도 경매에서 국채를 직접 입찰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전만큼 프라이머리 딜러 여부에 신경쓰지 않는다.

동시에 프라이머리 딜러가 되면 금융당국의 추가적인 규제가 뒤따른다. 블룸버그는 “미국채 시장이 중앙집중식, 전자식, 전면적이고 다양한 생태계로 계속 진화하는 상황에서 프라이머리 딜러가 돼 규제까지 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모든 금융사가 원했던 명예

프라이머리 딜러 제도는 1960년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미국채 시장의 원활한 기능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했다. 미국채 금리는 전세계 차입비용 설정의 기준이다. 미국채 시장은 현재 29조달러 규모로 커졌다.

프라이머리 딜러들은 미국채 중개의 역할에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채 정기 경매에서 새로운 국채에 입찰하고 유통시장을 활성화하는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 레버리지와 관련된 규제가 부분적인 이유”라고 지적했다.

우려를 표명하는 건 주요 딜러들만이 아니다. 딜러를 통해 국채를 매매하는 많은 투자회사, 뉴욕 연준 총재를 지낸 빌 더들리 등 전문가들도 걱정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 미국채를 서둘러 매도했던 것처럼 미국채 시장 기능이 마비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당시 미국채 투매는 연준이 긴급 개입하면서 잦아들었다. 여러 가지 압력이 겹치면 뚜렷한 계기가 없어도 유동성에 부담을 줘 미국채 시장 이탈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우려지점이다.

프라이머리 딜러 수는 1988년 46곳으로 정점을 찍은 후 현재 24곳으로 줄어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엔 17개까지 하락한 바 있다. 2016년 프랑스 크레딧에그리꼴은 시타델 시큐리티즈와 마찬가지로, 프라이머리 딜러에 가입하는 비용에 비해 혜택이 크지 않다며 이를 포기했다. 반면 최근 가입사례는 2022년 4월 ASL 캐피털 마케츠, 2019년 5월 애머스트 피어폰트 시큐리티즈다.

프라이머리 딜러와 관련한 환경이 변화면서 헤지펀드 시타델이나 제인스트리트, 허드슨리버트레이딩 등이 미국채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딜러에 부여된 엄격한 규제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데다 고도로 자동화된 전자거래가 확산하면서다. 이들은 물론 대형 자산운용사들도 직접 미국채 입찰 프로그램을 통해 경매에서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프라이머리 딜러처럼 유통시장 거래를 지원할 의무가 없다.

뱅가드의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존 매지이어는 최근 인터뷰에서 “미국채 시장을 걱정하고 있다”며 “우리는 현재 시타델 등 주요 트레이딩 기업과 국채를 거래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단기적 관점을 갖고 있다. 시장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들은 ‘우리는 시장가격을 떠받칠 의무가 없다’며 한발 물러선다”고 말했다.

급증하는 국채에 딜러 중개능력 저하

역설적으로 그같은 점 때문에 프라이머리 딜러는 미국채 시장의 궁극적인 보호막으로 인식된다. 미국채 총 발행량 중 최소한 비율만큼은 무조건 입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미국채를 중앙에서 청산하고 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등 시장보호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 스탠퍼드대 금융학 교수인 대럴 더피는 지난해 9월 국채시장 콘퍼런스에서 “만병통치약은 없다”며 “현재 진행중이거나 예상되는 어떤 개혁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어려운 지점은 향후 미국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미국채 발행액은 15조달러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초당파 성향의 미의회예산국(CBO)은 만성적인 미국 재정적자로 2034년 말 미국 공공부채가 50조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

문제는 프라이머리 딜러들이 쏟아지는 미국채 매물을 감당할 수 있느냐다. 경매에서 미국채 인수를 돕고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거래 흐름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프라이머리 딜러들에겐 커다란 압박이 된다. 최근 뉴욕 연은 데이터에 따르면 프라이머리 딜러의 미국채 보유액은 사상최고치인 약 4000억달러에 달했다. 2014년에는 딜러의 평균 보유액이 430억달러였다.

미 재무부 차입자문위원회 연구에 따르면 프라이머리 딜러의 중개능력(미국채 총 발행량 대비 매입량)은 꾸준히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프라이머리 딜러가 전체 미국채 경매의 절반 이상을 흡수한 뒤 고객에게 배분했지만, 요즘 그 비율은 10~20%까지 떨어졌다. 미국 부채 급증 추세가 지속된다면 딜러 중개능력은 더 하락할 전망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JP모간 CEO 제이미 다이먼을 비롯한 많은 월가 리더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규제로 은행 계열 딜러의 국채 보유비용이 상승하고 시장조성 능력이 위축됐다. 격동기에 시장 유동성 부족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다이먼 CEO는 지난해 10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JP모간이 1조달러의 현금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현금은 연준 지불준비금에 넣어둬야 한다. 비상시 미국채 시장이나 레포 시장을 중개할 수 없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은행들은 자산 대비 얼마나 많은 자본을 확보해야 하는지를 재는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이 부담이라고 입을 모은다. 연준은 2020년 3월 미국채 시장 유동성이 증발했을 때 은행들이 더 많은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미국채 보유량을 자산 평가 때 면제하도록 허용했지만 1년이 지나면서 이를 없앴다.

지난해 10월 연준 조사에 따르면 월가 은행은 정상적인 시장 상황에서 미국채 시장조성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SLR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팀은 2020년처럼 신용한도 축소와 대출 증가로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에는 은행들에 또 다른 지원책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기치 않은 시장 경색 우려

일상적인 자금 조달의 중요한 원천인 약 6조달러 규모의 레포시장(미국채 담보의 단기자금 조달)에서는 이미 주기적으로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월가 전반에 걸쳐 2019년 레포금리 발작은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다. 당시 미국채 발행과 관련된 유동성 경색으로 오버나이트(하루짜리 초단기 콜거래) 금리가 급등했다.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지난해 9월 분기 말에는 오버나이트 레포가 5.9%를 기록하며 1%p 급등했다. 며칠 전도 비슷했다. 2024년이 마무리되면서 오버나이트 금리가 연준의 정책금리 목표범위(현재 4.25%~4.50%)를 벗어나 상승했다.

레포 금리가 다시 예기치 않게 급등하고 프라이머리 딜러가 개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경우 연준의 개입을 촉발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과거 프라이머리 딜러가 맡았던 역할을 헤지펀드가 대신하게 되면서 현물 국채와 선물 간의 차이를 이용하는 ‘베이시스 거래’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는 헤지펀드 등이 국채현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국채선물을 매도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현물을 매수한 후 만기에 전체 포지션을 정리하는 전략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금융·선물 책임자인 로라 체푸카바게는 “미국 부채 증가와 딜러 규제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채 시스템의 민첩성이 떨어지고 시장이 무질서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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