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오르자 주요공산품 가격 인상, 생필품 전반으로 번지나
업계 “가격인상 불가피한 상황” … 환율 급등에 원자재 가격도 인상
정부는 ‘안정세’라는데 체감물가는 고공행진 … 추가 인상 가능성 커
연초부터 물가가 들먹거리고 있다. 식품 등 주요 생필품과 공산품 가격이 경쟁하듯 오르고 있어서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와중에 내란사태 후 환율이 급등하면서 비용부담이 더 커졌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정부의 현재 물가인식은 ‘안정 흐름’으로 요약된다. 전체 소비자물가가 3개월 연속 1% 인상률에 머물 정도로 안정됐다고 자신하고 있다. 문제는 체감물가와 향후 물가 전망이다. 전체 물가는 안정세라고 하지만, 서민들의 체감물가와는 거리가 있어서다. 실제 물가상승률이 1%대로 내려온 작년 하반기에도 배추·사과 등 주요 농산물 가격이 급등,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높았다.
향후 물가전망도 밝지 않다. 최근 급등한 환율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시차를 두고 국내물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내달 미국의 트럼프행정부가 다시 출범하는 것도 국내 물가에는 악재다.
◆업계 “비용부담 커져 인상 불가피” = 새해 벽두부터 주요 공산품 가격이 들썩거리고 있다. 3일 물가당국에 따르면 일부 식품과 화장품을 중심으로 가격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식품업계 가운데는 오리온과 동아오츠카가 소비자가격을 처음 올렸다. 환율이 오르면서 밀가루와 설탕, 코코아 등 주요 수입 원자잿값이 상승했다는 이유에서다.
동아오츠카 관계자는 “지난해 가격인상을 검토했으나 지속적인 물가 상승에도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한시적으로 가격 인상을 보류한 바 있다” 서 “최근까지 원부자재 가격에 물류비용 증가 등 외부 요인이 지속되어 새해부터 부득이하게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 급등에 국제 카카오와 팜유 커피 원두가격까지 급등해 수입 식료품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유통업계에서는 조금이라도 저렴한 제품을 공급하려는 가격경쟁이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조치가 식품업계 전반의 가격인상을 예고하는 전초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가격 인상 조짐은 식품업계 뿐만이 아니다. 수입 원부자재를 쓰는 대부분 공산품 유통업체들이 가격 인상 시점을 타진하고 있다.
이미 화장품 업계는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일제히 가격을 올렸다. 아모레퍼시픽과 엘지생활건강, 에이블씨엔씨 등 유명 화장품 업체 자회사 브랜드들이 모두 500원에서 최대 2000원까지 인상했다.
수입의약품 가격도 일제히 오른다. 화이자와 사노피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올초 미국에서 250개 이상의 브랜드 약품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상 추진 품목에는 화이자의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와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의 암 세포 치료제, 프랑스 사노피의 백신 등도 포함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약값 인상률은 10% 미만으로, 평균 인상률은 4.5%로 집계됐다.
◆정부는 물가 안정세라는데 =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전체 소비자물가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다. 정부의 물가안정목표(2.0%)는 넘어섰지만 최근 2년간 고물가와 비교해선 낮은 수준이란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지난 2022년 5.1%를 찍은 뒤 2023년 3.6%, 작년 2.3%로 안정세로 접어든 모양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물가는 1.9% 올랐다. 상승 폭이 전월(1.5%)보다 확대됐다.
최근 높아진 환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고환율로 인해 석유류 물가는 1.0% 오르면서 4개월 만에 반등했다. 중동 불안 등 지정학적 불안정성을 감안하면 이달 물가상승률은 2.0%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 1월 석유류 물가가 마이너스로 낮았는데, 이달에는 기저효과를 감안해 플러스로 전환할 여지가 있다“며 ”고환율 등 물가 상방 압력이 존재하고 있어 물가 상승률은 2% 내외로 전망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고환율, 수입물가에 반영 중 = 심상찮은 대목은 고환율 여파로 수입물가는 2개월 연속 오름세란 점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를 보면 지난해 11월 수입물가지수(원화기준 잠정치)는 139.03(2020=100)으로 전월(137.55)보다 1.1% 상승했다. 수입물가는 10월(2.1%)과 11월(1.1%) 두 달 연속 상승했다. 특히 농림수산품 물가는 2.6% 오르면서 2.0%대를 넘겼다.
통상 수입물가는 1~3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영향을 준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게 되면 식품업계는 가격 인상으로 손해를 메꾸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생필품·먹거리 가격 인상→소비심리 하락→내수부진→성장률 정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먹거리 물가가 오르자, 소비자심리지수는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전월보다 12.3P 떨어졌다. 코로나19 당시인 2020년 3월(-18.3P) 이후 최대 하락 폭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주요 생필품 물가를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소비자가격 인상이 경제전반의 악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정책수단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성홍식 고병수 정석용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