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희승 한국해양과학기술원장

“아폴로 계획처럼 한국을 위대하게 할 해양과학이 우리 꿈”

2025-02-07 13:00:17 게재

국가바이오위원회에서 해양바이오 비중 키워야

콜롬비아에 연구거점 추진 … 카리브해 도서국과 협업

지난해 5월,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이하 키오스트) 제12대 원장으로 취임한 이희승 원장은 인류에게 꿈을 꾸게 하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아폴로 계획'을 해양과학에서 실현하는 것을 꿈꾼다. 그는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국가가 지닌 잠재력과 역량으로 글로벌 사회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키오스트가 그 역할을 맡을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이희승 한국해양과학기술원장이 50년 역사를 지나며 일궈온 해양과학의 성과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공

서울대와 서울대 대학원(석·박사)에서 화학과 유기화학을 전공한 이 원장은 2000년 한국해양연구원(현 키오스트)에 입사한 이후 해양생명공학연구센터장, KIOST스쿨장, 부원장 등 주요 보직을 수행했다.

내일신문은 지난해 12월(대면)과 올해 2월(전화)이 원장과 인터뷰했다.

●취임 이후 세계 최고 수준의 '월드 클래스' 연구기관이 되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들에게 해양과학기술원, 키오스트는 생소하다. 키오스트의 연구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나.

2차 대전 후 냉전이 치열하던 1960년대 미국은 아폴로 계획을 세우고 성공시켜 우주경쟁에서 앞서가던 소련을 따돌렸다. 이를 통해 미국은 지구촌 인류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위대한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키오스트와 해양과학자·벤처기업가들도 해양과학을 통해 한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있다. 월드 클래스 연구기관을 지향하는 것은 그들이 꿈을 펼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키오스트는 2010년부터 우주에서 바다를 내려보는 해양관측위성 천리안을 운영하고 있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주변의 해양환경을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이 위성은 단순한 기상 관측을 넘어 해양변화 예측과 기후연구, 해양재난 대응, 해양산업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천리안 위성의 성공은 연관산업에 중요한 자극제가 됐다고 생각한다.

부산에 본사를 둔 나라스페이스는 초소형 위성 시장 개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해양모태펀드 1호 투자를 받아 지속적으로 민간 투자도 유치하고 있다. 해양은 초소형 위성이 관측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영역이 많은 곳이다. 나라스페이스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 로켓으로 위성을 쏘아 올렸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해양한림원 회장인 정해진 서울대 교수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유로파 해양탐사에 우리나라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목성의 위성에 있는 바다를 탐사하는 것 역시 해양과학의 영역이다. 우주와 해양을 결합하는 흐름에서 우리가 뒤처지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폴로 계획처럼 대규모 연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파생 연구가 이뤄지고 그에 따른 성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초기 개척 단계에 있는 해양바이오 분야도 성장 잠재력이 큰 영역이다. 키오스트 연구팀이 서태평양 파푸아뉴기니 해역 심해열수구에서 분리한 해양극한 미생물 ‘써모코커스 온누리누스 NA1’은 일산화탄소를 먹이로 수소를 생산한다. NA1을 배양해 바이오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은 세계 최초로 시도한 원천기술이다. 키오스트와 민간이 공동으로 창업한 연구소기업 바이오테크서비스가 상용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성공한다면 에너지원을 다양화하는 것은 물론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꿈은 크지만 가능할까.

지난 50년간 키오스트의 연구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설립 초기 한반도 주변 연안에 한정돼 있던 연구영역은 이제 남극 북극 인도양 태평양까지 넓어졌고, 세계 여러 해양연구기관들과 대응한 수준의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 우주과학자들이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국민들 관심과 응원을 받았는데 우주만큼 극한 환경을 극복해야 하는 연구 분야가 깊은 바다, 심해 연구다. 심해 연구 역시 최첨단 기술과 도전이 필요한 영역이다. 키오스트가 인도양 심해에서 새로운 해저열수광상을 발견한 것도 과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난해 심원준 홍상희 책임연구원이 미국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에서 발표한 ‘2024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명단에 포함됐는데, ‘환경과 생태’ 분야에서는 한국에서 이들 두 명만 포함돼 키오스트 연구 수준을 입증하기도 했다.

●해양에서 시급한 연구 부문은 무엇인가.

신산업 창출과 실용화를 위한 연구다. 세계 각국은 전통 해양수산업 부가가치를 더 높이는 동시에 해양바이오 등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전략적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기술 선점을 위한 경쟁도 더 치열해지고 있다.

해양수산부도 해양바이오, 해양에너지·자원, 친환경·첨단선박 등 신산업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약 15조원 규모의 해양수산 신산업시장을 2027년까지 30조원 규모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다.

키오스트는 바이오수소 연구처럼 해양바이오 분야에서도 실용화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성과를 거둔다면 해양 신산업 발전은 물론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올해 키오스트는 카리브해에 연구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4월 콜롬비아에 연구원을 파견할 예정이다. 카리브해 도서국들은 과잉 생산된 해조류가 해양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과학기술로 처리하기를 원하고 우리는 대서양에 연구 거점을 마련할 수 있어 상호 협력의 이점이 크다.

●해양 미세조류에서 추출한 소재 등이 실제로 활용되고 있는가.

그렇다. 스피루리나에서 추출한 기억력 개선 소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개별인정형 원료로 인증받아 제품에 활용되고 있다. 스피루리나 소재를 이용해 소태아혈청을 대체할 수 있는 동물세포 배양액도 새롭게 개발했다. 소태아혈청은 진핵세포의 생체 외 배양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혈청 보충제이지만 동물성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체 기술이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스피루리나 기반 배양액은 기존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혁신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해양 생물독·단백질·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 등을 활용한 의약 및 기능성 소재 개발을 위해 기능성 해양 화합물 탐색과 응용기술 개발은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정부가 국가바이오위원회를 구성하면서 해양수산부를 제외한 것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재고해야 한다. 나는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해양천연물 연구를 주로 수행해 왔고 현재 해양바이오학회장을 맡고 있다. 그런 만큼 이번 결정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해양생명자원 연구는 해양생물의 특성 이해를 바탕으로 생물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이오산업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 해양수산부도 포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여러 부처가 협력해야 한다. 해양바이오 분야는 단순히 해양수산업의 한 분야가 아니라 미래 바이오산업과 국가 전략의 핵심이 될 수 있다.

미국도 정치적 갈등이 심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의 상·하원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새로운 해양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주도한 의원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발탁돼 글로벌 전략을 이끌고 있다. 해양이 국가 생존과 직결된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해양에서 낙후되면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해양에 대한 투자를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해양과학기술에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컴퓨팅 등을 도입해 해양연구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시도하는데,어떤 효과를 기대하나

최근엔 챗지피티 딥시크 등으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우리의 일상과 연구 현장에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해양과학기술에도 AI를 비롯한 최첨단 기술을 접목해 심해탐사장비 해양모빌리티 해양디지털분야를 발전시키고 글로벌 시장을 선점해 나가야 한다. 특히, 심해 극지 열수지역 등 인간의 접근이 어려운 해양공간은 기후변화 대응,생물·광물·에너지 자원 확보 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미지의 영역을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해 가상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연구 개발을 확장하면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

현재 키오스트는 울산 앞바다에서 해저공간 개발을 추진하며 이를 다양한 첨단 기술과 결합하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해저공간 개발의 지속적인 연구와 실용화를 위해 적절한 예산 투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기후변화 대응이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가장 중요한 연구 분야 중 하나다. 우선, 바다의 상태와 변화를 진단하고 예측한 정보를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해양기후예측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더 커지고 자주 발생하는 태풍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해양기후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서태평양에서 슈퍼태풍이 연중 강하게 발생하는 구조와 수온이 높은 해역을 지나면서 태풍 강도가 강해지는 현상을 밝혀 세계적 학술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키오스트는 지구상 에너지와 탄소 순환을 모사하는 지구시스템모형(KIOST-ESM)을 개발해 1850년부터 현재까지의 바다 상태 변화를 재현하고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에 따른 미래 해양 변화를 예측하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도 포함되었다.

탄소중립을 위한 탄소포집(CCS) 및 활용(CCUS) 연구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특히 자가영양미생물을 이용한 탄소 전환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를 수소를 액체로 저장·운송하는 기술 연구로 확장할 계획이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급변하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해양 개발을 위한 핵심 기술을 확보하며 △국내 유관기관 및 국제 사회와 협력을 강화해 글로벌 해양 리더십을 키워가자고 했다.

●해양 관련 기관의 집적 효과를 기대하며 키오스트가 경기도 안산에서 부산으로 옮긴 지 8년이 지났다. 기대했던 해양 클러스터 효과는 아직 뚜렷하지 않은데,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부산 영도에는 키오스트를 비롯해 한국해양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국립해양조사원 등 14개 해양수산 관련 기관이 모여 해양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부산시 영도구청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등 3개 지원기관까지 참여해 해양클러스터기관장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지금은 회장기관을 키오스트에서 맡고 있다.

우선 시민들에게 해양클러스터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지난해 처음으로 해양클러스터 페스티벌을 열었다. 이와 더불어 정책방향을 함께 토론하고 협력분야를 확대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키오스트를 포함한 7개 연구기관과 부산시 등 3개 지원기관이 체결한 ‘해양산업 선도분야 발굴 및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을 충실히 실행하며 신뢰를 쌓고 해양 클러스터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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