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상한 ‘기재부 조직개편’…“기획예산부서, 대통령실로”
“기재부 권한남용·편향·정책 방해” 비판
이재명, 지난 대선서 ‘백악관 방식’ 제안
부처는 ‘총액배분자율편성제도’로 전환
국회 토론회서 “국회 예산심사권 강화”
2025년 예산안에 대한 심사와 조정의 최전선에서 협상해온 국회 예결위 여야 간사들이 국회의 예산안 심의권 강화를 강조했다. 이들은 예산안을 심사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정부가 사전에 예산관련 정보를 국회에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전문가그룹에서는 우리나라 예산 편성권을 사실상 행사하는 기획재정부의 기획예산부서를 대통령실로 이관하고 각 부처에 독립적 예산편성 기능을 부여하는 총액배분자율편성예산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현재의 예산편성방식이 기재부 예산부서의 ‘예산 권능’을 확대해 각 부처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통령실의 정책까지 방해하는 등 ‘권한 남용’이 심각하다며 강도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1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국회예산정책처가 함께 주최한 ‘국회 예산안 심의권 강화를 위한 정책과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온 김유찬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포용재정포럼 회장)은 강병구 인하대 교수와 같이 작성한 ‘재정운용 거버넌스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사실상 예산편성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기획예산부문을 청와대 대통령실이 직접 관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전 원장과 강 교수는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내는 인사들로 이같은 제안이 조기 대선 이후의 정부 운영방향에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후보로 나와 기재부 개편과 함께 ‘백악관 방식’을 언급하며 예산기능을 대통령실 산하로 두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 전 원장은 “예산부서의 조직은 총액배분예산자율편성제도에 상응하도록, 동 제도가 명실상부하게 실행될 수 있도록 개편되어야 한다”며 “미국과 같이 백악관에 예산부서가 포진하는 경우 OMB(백악관 예산관리국) 같은 ‘관리예산국’을 두어서 실무를 담당하게 하거나 기재부에서 예산총괄부서를 떼어내어 기획예산처와 같은 별도의 부처로 독립시키는 경우가 주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먼저 기재부 예산실이 강력한 ‘예산 권능’을 토대로 부처를 통제하고 결국은 대통령실마저 쥐락펴락하는 현재의 예산 편성 구조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앙정부의 타 부처들, 소속 공공기관들, 지방정부, 그리고 국회종사자들 조차도 예산시즌에 예산편성권을 가진 예산실의 종사자들의 사무실 앞에 장사진을 치고 예산을 구걸하는” 것을 ‘예산구걸 행위’로 규정하고 그 부작용을 세세하게 제시했다.
◆“예산실 종사자와의 친소관계에 예산 편성이 달라진다” = 김 전 원장은 “예산실 종사자들과의 개인적 친소관계에 따라 공공기관의 개별 사업들에 대한 예산의 편성이 달라진다”며 “이에 대한 대가로 예산실 및 예산실이 속한 기재부 종사자들의 퇴임 후 공공기관장 독식 현상이 발생한다”고 했다. 기재부 출신이 대거 다른 부처 장차관에 대거 포진하거나 주요 직위에 파견나가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했다. 이어 “국회의원들도 그들의 지역구 예산의 확보를 위해 사업별 예산을 담당하는 과장급 예산실 종사자를 만나는 경우 저자세로 바뀐다”고도 했다.
또 김 전 원장은 “예산실에서 개별 부처의 개별 사업예산에 대한 편성을 주도하면서 개별 부처들의 예산담당관실에서 주도하던 예산기획기능은 퇴화되고 있다”며 “누적된 엄청난 예산실과 기재부 관료 조직의 비대해진 권력은 대통령실의 정책 방향 실현에 상당한 방해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당한 편향성을 가진 기재부 경제관료들은 그들의 고유의 노선을 옹호하는 경제논리를 국가경제에 이로운 것으로 포장한다”고 했다. “보수정부와 민주정부에 대하여 기재부는 비대칭적 태도를 보인다”며 “예를 들어 재정지출 확대를 위한 재원조달 방안으로서 문재인정부 시기에는 제안된 적이 없는 기금(외환평형기금 등)을 활용하는 방안을 윤석열정부에게는 제공했다”고도 했다.
이러한 ‘예산구걸행위’를 차단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 트랙을 제시했다. 대통령실과 기재부 예산부처와의 관계는 예산 기능을 대통령실로 이관하거나 기획예산처를 별도로 두는 방식으로 예산 편성권을 대통령실이 직접 통제할 수 있게 하는 방안과 함께 기재부와 타부처의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총액배분자율편성 예산제도를 도입하는 방식이다. 총액배분자율편성예산제도는 하향식예산편성(Top-Down)제도, 사전재원배분제도다. 정부의 지출총액을 우선 결정한 다음 이를 기준으로 부처별, 분야별 예산배분을 결정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개별 부처들은 정해진 부처별 예산한도내에서 자율적으로 사업예산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최종적인 확정은 기재부와 같은 예산전담부처가 아닌 대통령실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등 부처 장관들이 참여하는 회의에서 이뤄진다.
◆사전예산제 등으로 심사 기간 확보 = 여야는 국회의 예산심의권 강화를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국회 예결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은 “예산안 심의권의 강화는 국회가 정책 입안과 재정 운용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는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제”라고 했다. 구 의원은 구체적으로 “국회는 12월 2일 법정 시한에 맞춰 예산안을 처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산안에 대한 충분한 심의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 그동안 비공식 협의체를 통한 의사결정이 이뤄진 측면이 있었다”며 “예산안 심의의 법정 시한을 준수하면서도 충분한 심사 기한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산안 심사와 관련된 절차를 더 세분화하고 사전 준비 과정을 강화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며 “예산안 제출 전에 주요 사항에 대해 정부와 국회가 미리 논의하고 예산안을 심의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와 자료를 사전에 제공받는 방안도 중요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은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부의 됨에 따라 예산이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하는 예산 심사 절차가 무용지물처럼 여겨지는 실정”이라며 “이는 결국 국민이 필요로 하는 민생 예산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민주당 주도로 통과시켰지만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결국 파기수순을 밟은 ‘자동부의제도 삭제’를 담은 국회법 개정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민주당 소속 박정 예결위원장 역시 “예산안 본회의 자동부의 제도의 도입 이후 예결위의 심사 권한이 약화된 현실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했고 우원식 국회의장 역시 “정부는 헌법상 정부의 ‘증액동의권’을 사유로 예결위에서의 증액심사에 소극적이었다”며 “11월 30일이 지나자 ‘예산안 자동부의제도’로 인해 더 이상 예결위에서 예산안을 심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