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실패의 자산화’ 시대가 왔다
1990년대에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은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자”라고 주장해 우리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통찰력이 가득한 주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흐름에 적응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20대에는 평범했고, 30대에는 실패자였으며, 40대에는 최고경영자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건희 회장이 ‘실패학의 선봉자’로 불리는 배경에 이해가 간다. 실패를 감수해서라도 새로운 사회의 특성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회에 적합한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미국 IBM의 설립자 토마스 제이 왓슨은 “성공하는 비결은 실패율을 두배로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실패 자체가 성공의 원동력이 된다는 의미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실패학의 선봉자
요즈음 삼성전자가 주춤거리고 있다는 논평이나 기사가 많다. 2024년 7월 9만원에 육박했던 주가가 현재 5만원대로 떨어졌다. 낙폭이 너무 커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요인분석을 하고 있다. 그들은 혁신보다는 재판과 지배구조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 관료주의의 심화, 고객을 생각하지 않는 안이함,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의 미비, 최고재무책임자(CFO)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경영진, 새로운 수익모델의 창출에 대한 미비 등을 든다. 특히 HBM 부서의 폐지는 결과적으로 크나큰 패착으로 판명되고 있다. HBM과 관련해서 많은 인재들이 삼성을 떠났다.
미국은 실패담을 공유하며 실패를 자산화한다. 실리콘밸리에는 매년 10월 창업자들이 실패담을 공유하는 자리인 페일콘(Failcon, 실패 콘퍼런스)이 열린다. 페일콘의 모토는 ‘실패를 껴안고 성공을 만들자’다. 실패를 사회적 자산으로 인식하는 미국의 기업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혁신의 대명사인 구글도 무수한 프로젝트 중 성공 확률은 50% 정도다. 구글은 2006년부터 종료(단종)된 서비스의 비석을 한곳에 모아 전시하는 독특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구글 공동묘지(The Google Cemetery)’다. 유명을 달리한 구글의 제품과 서비스의 전체 목록을 연도별로 정리해 서비스 종료 시점과 이유 등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구글 공동묘지에 올라온 실패한 프로젝트는 166개다. 구글 제품과 서비스의 평균 수명은 4년 1개월이다.
빠르게 변하고, 근본이 변화하며, 광범위하게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지식정보사회 및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실패에 대한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 미국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문화(risk averse culture)'로 꼽혔다.
삼성의 노력이 제일 중요하지만 정부도 다양한 각도에서 지원하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업체 대 업체의 경쟁'에서 '공급사슬 대 공급사슬의 경쟁'으로, 나아가서는 '생태계 대 생태계의 경쟁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생태계 조성은 삼성 혼자만의 힘으로 부족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삼성을 위해서, 협력사들을 위해서, 500만명 전후의 주주들을 위해서, 그리고 경제 전후방 효과의 중요성을 고려해서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한다.
삼성 경영진 그간의 실패 자산삼아 혁신에 나서야
삼성전자는 현대차 SK LG 등과 함께 여전히 한국경제의 자존심이요, 경제성장의 견인차이기도 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실패를 창조적 경영활동의 일부로 받아들여 그간의 실패를 자산으로 삼아 혁신에 나서야 한다.
이건희 회장의 실패에 대한 어록으로 가보자 “실패는 할수록 좋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실패하지 않는 사람보다 무언가 해보려다 실패한 사람이 훨씬 유능하다. 이들이 기업과 나라의 자산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