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남식의 중동 톺아보기
외교의 문 열린 시리아, 수교 위해 한국도 잰걸음
한국 외교의 숙원중 하나인 시리아 수교가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시리아는 유엔 회원국 중 북한을 제외하고 마지막 남은 미수교국이다. 지난 2월 7일 외교부 김은정 아프리카중동국장이 시리아를 방문, 알 샤이바니 외교장관과 면담하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2003년 이후 22년 만에 한국 외교부의 공식 대표단이 방문한 셈이다.
지금이야 아라비아반도의 산유 부국 걸프 왕정이나 이란과 튀르키예가 중동 지역 패권 강국으로 행세하지만 역사 속에서 시리아의 무게감은 남달랐다. 아랍 문화의 본원과도 같은 곳이다. 메소포타미아와 페니키아로부터 이어지는 문명사적 존재감은 현대 중동의 문화속에 여전히 숨쉬고 있다. 다마스쿠스는 이슬람 제국의 기틀을 닦은 우마위야 왕조의 수도였고 아랍어, 이슬람 예술, 건축과 문학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현대 아랍어와 문학을 이야기할 때 시리아의 말과 글이 가장 기품 있고 정통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다.
과도한 일반화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만나 인연을 맺었던 시리아 사람들은 대부분 선했고 외국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손님 대접하기를 즐겨했고 품위와 자존감을 갖추고 있었다. 다른 어느 아랍국가 사람들보다 성정이 따뜻했다. 그래서 시리아의 비극이 더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54년 철권통치 무너뜨리고 과도정부 수립
14년 전 시작된 내전과 함께 국가 곳곳은 처절하게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고통 속에 살아왔다. 50만명 넘는 국민이 내전기간 사망했으며 450만명이 국경을 넘어 피난, 난민의 삶을 시작했다. 국경을 넘지 못했지만 정부군과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못이긴 국민들은 나라 이곳저곳을 떠돌며 유리 방랑했다. 이른바 국내피난민(IDP)들이며, 7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극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작년 말 아사드 가문의 54년 철권통치가 갑자기 무너졌다. 북부 이들리브 지역을 중심으로 저항해 온 레반트 해방기구(Hyatt Tahrir al Sham, HTS)가 튀르키예의 도움을 받아 남진, 다마스쿠스를 장악하면서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과 가족들은 모스크바로 피신했고 HTS는 과도정부 수립을 선언하며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드디어 내전이 끝난 것이다.
물론 바로 전쟁의 시대가 종식되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도래하리라 보긴 어렵다. 아사드 가문에 반세기동안 눌려오던 아픔에 내전 내내 켜켜이 쌓인 분노의 상흔은 단기간 내 극복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아사드 가문이 속한 지배세력 알라위파에 대한 피의 보복극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자칫 대량학살이 일어날 수 있다.
정부군에 저항해 온 다양한 반군 세력의 통합도 쉽지 않다. 특히 시리아 민주군(SDF)의 주축인 쿠르드족과의 타협은 난제다. 과도정부의 주축인 HTS를 후원한 튀르키예가 시리아에서 쿠르드족만큼은 용인할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을 견지하는 중이다. 시리아에서 쿠르드족이 일정정도 정치 지분을 확보하며 활동할 경우 국경을 마주한 튀르키예의 쿠르드족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모태 알카에다 노선과 결별 선언
따라서 향후 과도정부가 통합정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보복을 방지하고, 각 세력간 화합을 이루어내려면 결국 주도세력인 HTS의 행보가 관건이다. 문제는 HTS가 본래 폭력적 극단주의의 모태인 알카에다로부터 파생한 조직이라는 점이다. HTS의 전신은 ‘누스라 전선(al Nusra Front)’으로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l Qaeda Iraq, AQI)가 시리아 내전 초기인 2012년, 분리 파병 형태로 시리아에 설치한 단체다.
초기에는 이슬람 테러리즘의 투쟁 노선에 앞장섰다. 그러나 2014년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를 이끌던 아부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이슬람 국가(IS)’로 전환하자 변화가 나타났다. IS와 거리를 둔 채 시리아에서 별도의 투쟁을 이끌던 누스라 전선은 2016년 7월 알카에다와 결별을 선언했다.
이후 시리아 북부 4개 반군 조직을 통합하며 HTS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들리브를 중심으로 새로운 통치체제를 선언하며 지금까지 존속해왔다. 이 과정에서 HTS는 기존의 폭력적 극단주의 노선을 버렸음을 천명했다. 한마디로 개과천선을 밝힌 것이다. 극단주의를 탈피하고 이슬람 전통 보수의 통치이념을 내세운 새로운 정치집단을 만든 것이다. 그후 지난 8년여간 시리아 구국정부(National Salvation Government, NSG)라는 이름으로 나름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통치 역량을 보여주었다. 치안 교육 복지 등 여느 행정부에 가까운 모습으로 현지 주민의 인정을 받았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이전 아사드 독재정부를 지켜주던 러시아와 이란이 극적으로 약화되면서 기회를 포착한 HTS가 다마스쿠스 진공(進攻)에 성공한 후 과도정부를 세우고 국제사회와 연대할 것임을 밝혔다. 지난 8년간 이들리브에서 보여준 온건한 통치를 계속할 것임을 천명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실제로 지도자 HTS의 지도자 아흐메드 알샤라(Ahmed al Sharaa)는 전방위적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튀르키예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물론, 카타르의 통치자 타밈 국왕, 사우디의 권력자인 빈살만 왕세자와의 회담도 연쇄적으로 갖고 있다. 알샤라는 군복을 벗고 늘 양복과 넥타이를 착장하고 외교활동을 하는 중이다. 이는 전통적 세속국가인 시리아가 자칫 중세적 신정주의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제스처로, 그만큼 변화 의지를 드러내려는 의지로 읽힌다.
폭력적 극단주의를 연원으로 하는 HTS가 과연 본질적으로 바뀌었는지 아니면 외양만 바꾸고 속성은 여전히 폭력적인지를 현시점에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은 아직 HTS를 테러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8년간 이들리브에서 보여준 HTS의 온건한 행적은 적어도 일시적 눈속임으로 보긴 힘들다. 빠르게 시리아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현지 주민의 입소문 때문이기도 하다.
과도정부가 반군 조직을 빠르게 해체, 정비해 국가 상비군으로 재편하려 하고 있고, 각 종파와 부족을 대표하는 국민대화회의를 추진하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점도 고무적이다. 주변 주요국인 사우디 튀르키예 카타르 등도 적극적으로 나서 시리아 신정부의 안착을 희구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가들 사이에서도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급적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중이다. 모호한 상황이라면 차라리 시리아 신정부가 국제사회 규범에 걸맞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전략적 낙관주의(strategic optimism)다.
마지막 남은 미수교국 수교 가능성 커져
이 맥락 속에 한국은 시리아와의 수교를 타진하게 된 것이다. 아사드정부가 북한과의 오랜 군사협력관계를 맺어왔기에 그간 우리의 수교노력이 허사였던 터다. 이제 아사드를 물리치고 새롭게 등장한 시리아 신정부는 대한민국과의 수교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러시아 이란 북한 등 전통적 우방과 단절하고 새로운 세계와 손잡겠다는 방향 전환의 상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단순히 미수교국 하나 줄인다는 의미를 뛰어넘는 의미를 갖는다. 14년 내전이 남긴 폐허를 딛고 국가 재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정서와 경험을 공유하는 의미가 크다. 아랍을 대표하는 시리아의 문화적 깊이 측면에서 우리가 갖는 역동적 문화 역량과 공유되는 지점도 적지 않다.
물론 한국의 중동외교가 산유국과의 에너지협력, 안보위기국가와의 방산협력 등으로 대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국가의 사활적 이익이 달려있다는 점에서 경제외교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전의 상흔, 난민의 고통, 이산의 트라우마 등을 70여 년 전 경험하고 이를 딛고 일어난 우리의 경험을 시리아와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 외교의 지평이 그만큼 넓어짐을 의미한다.
일단 우리 정부와 시리아 과도정부 모두 수교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제 필요한 조치들을 하나하나 점검해가며 의미있는 관계 설정을 위해 노력할 때다. 3월 1일로 예정된 시리아의 통합 신정부가 약속대로 정파와 부족을 초월하는 포용성을 보여준다면 본격적으로 수교 협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다마스커스 대한민국 대사관에 태극기가 게양될 날을 기대한다. 그 모습은 시리아의 안정화가 한발 더 나아갔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