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한국경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③
연초부터 장바구니 물가 들썩…경기침체에 내수부진까지 예고
내 월급 빼곤 다 오른다 … 소비심리 더 얼어붙을 조짐
고환율에 통상 불확실성까지 … 수입물가 인상 부채질
연초부터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등 품목을 가리지 않고 먹거리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상 기후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내란사태까지 겹쳐서다. 정국불안으로 환율이 고공행진, 당분간 수입단가는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트럼프 관세장벽이 현실화하면서 통상 불확실성까지 높아졌다. 이래저래 물가인상 요인만 남았다.
내란사태로 소비심리까지 얼어붙은 한국으로선 최악의 경기여건을 만난 셈이다. 경기침체에 물가까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먹거리 물가 큰 폭 상승 = 물가인상 기류는 먹거리에서 이미 불붙었다. 13일 관세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신선 냉장 갈치 수입가격은 1kg당 1만3692원으로 전년 동월(7983원) 대비 71.5% 상승했다. 닭고기 수입가격은 1kg당 3674원으로 전년 동월(2940원)보다 25% 올랐다.
농축수산물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폭염과 한파 등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 현상으로 수급이 불안해진 영향이 크다. 여기에 지난해 말 비상계엄 충격까지 겹치며 치솟은 환율이 수입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내란사태가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경제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먹거리 가격은 특히 서민경제와 직결된다.
대표적인 수입 식재료인 커피 원두와 코코아 가격은 좀처럼 안정세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기후 위기와 고환율, 고유가 등 악재가 겹친 코코아 가격은 이미 고공행진 중이다. 코코아 선물가격은 지난해 12월18일 1만2565달러까지 오르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최근에서야 9000달러대 후반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간 톤당 2000달러대였던 가격이 5~6배 수준으로 오른 상태다. 아라비카 커피 원두 가격은 지난 6일 톤당 8905달러(약 1288만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주일 만에 8%, 한 달 전보다 27% 오른 수치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환율 변동과 미중 무역 갈등이 신선식품 시장에 영향을 미치며 국내시장의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수입품목의 가격 조정이 불가피해지면서 소비자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가공식품 가격도 줄줄이 인상 = 원자재에 이어 가공식품 가격도 줄줄이 인상되고 있다. 통계청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 지수 상승률은 각각 2.7%, 2.9%로 나타났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2.2%를 웃돈다.
문제는 식품업계의 무더기 가격인상이 이제 시작됐다는 점이다. 당분간 소비자 체감 먹거리 물가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SPC삼립은 이날부터 포켓몬빵과 보름달 등 빵 제품 가격을 100원씩 인상한다. SPC 파리바게뜨는 최근 빵 96종과 케이크 25종 가격을 평균 5.9% 올렸다.
동아오츠카는 지난달 1일부터 포카리스웨트, 데미소다 등 주요 제품 가격을 100원씩, 대상은 지난달 16일 마요네즈, 후추, 드레싱 등 소스류 제품 가격을 평균 19.1% 인상했다.
롯데웰푸드는 17일부터 건빙과 제품 26종 가격을 평균 9.5% 인상하기로 했다. 빙그레와 해태아이스의 커피·과채음료 및 아이스크림 일부 제품 가격도 오는 3월부터 200~300원씩 오른다. 커피 전문점들도 가격 인상에 나섰다. 폴바셋은 지난달 23일부터 아이스크림 등 일부 메뉴 28종 가격을 200~400원 인상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달 24일부터 톨 사이즈 음료 22종 가격을 200~300원 올렸고, 같은 날 할리스도 일부 제품 가격을 200~300원 상향 조정했다.
외식·프랜차이즈 업계의 가격 인상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버거킹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대표 메뉴인 와퍼를 비롯한 일부 제품 가격을 100원씩 올렸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패밀리 레스토랑 빕스도 지난 3일 샐러드바 성인 이용료를 1800원 인상했다.
◆환율 하락 조짐 안보여 = 수입물가의 관건인 원달러 환율은 최근에도 1450원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급등한 뒤 고환율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통상 불확실성까지 가중되면서 물가부담을 더 키우고 있다.
원재료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식품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단체 등도 정부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기의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혼란한 정국 상황을 틈타 이뤄지는 현재의 가격 인상이 기업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라면 엄중한 질책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합리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식품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해결방안을 모색할 방침이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내란정국으로 정부의 국정장악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기업들이 원가부담을 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