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신뢰받는 군(軍)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
‘12.3 내란사태’ 중요임무종사 혐의 군 장성 재판이 시작되면서 그들의 ‘동조’ ‘방관’ 행위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군사법원에서 “TV로 생중계되는 짧은 순간에 내란 행위를 판단할 수 없었다”며 “군인으로 지휘관의 명령을 따랐다”고 말했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도 “명령이 위헌·위법한지 판단할 여유가 없었다”고 했고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항명죄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별 셋 장군의 입에서 나오리라 생각하기 어려운 말들이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식사자리에서 ‘비상조치’ 관련한 발언을 들은 사람들이다.
우리 군형법에는 군인이 정당하지 않은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권리인 ‘항명권’ 규정이 없다.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처벌된다는 규정만 있다.(군형법 44조) 이를 통해 정당한 명령이 아니면 거부할 수 있다고 해석할 뿐이다. 어떤 명령이 정당한지에 대한 규정도 없다.
그렇다고 명령에 따른 행위가 죄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2.12 군사반란 판결에서 대법원은 당시 전두환과 함께 반란을 모의한 일선 부대 지휘관들의 반란혐의를 인정했다. 이들 지휘관이 ‘지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위법한 명령임을 알았고 지시를 이행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공간적 환경이 충분히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대법원 96도3376 판결)
이번 계엄 장성 재판에서 군검찰은 이들이 계엄선포 이전부터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선포와 그에 기초한 명령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위법성을 판단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장군들이 왜 위헌·위법한 명령에 따랐는지는 알 수 없다. 계엄이 성공했을 때의 이익을 생각했을 수 있다. 자신의 안위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군인이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법과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주체임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명백하다. 계엄 당시 출동한 현장에서 일반 병사들은 이들 엘리트 장성들보다 훨씬 현명하게 처신했다.
탄핵국면이 정리되면 문민권력이 군을 어떤 방식으로 통제해야 하는지, ‘제복 입은 시민’으로 군인은 어떻게 민주주의 원칙과 질서를 지킬지 논의될 것이다. 이때 정당한 명령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항명권 행사 절차도 제대로 규정해야 한다. 불법적 명령에 항명한 군인에 대한 불이익 처분도 금지해야 한다. 계급을 막론하고 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군으로 거듭날 수 있다.
물론 이에 앞서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군 통수권자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묻고, 처분을 마무리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