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부실대응 “경찰관 징계 사유”

2025-02-17 13:00:30 게재

1심 “직무 태만 아냐” … 2심 “징계 적법”

대법 “성실의무 위반 … 징계 사유 존재”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단순 시비로 종결한 이후 신고자가 사망한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경찰관이 불복했으나 정당한 처분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A씨가 경기도북부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불문경고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21년 8월 ‘동거남과 시비가 있다’는 신고를 접수받고 현장에 총 세 차례 출동했지만, 가정 폭력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고 파출소로 복귀했다.

A씨는 신고를 접수한 이후 같이 출동한 동료 경찰관이 112시스템에 사건 종별코드를 ‘가정폭력’이 아닌 ‘시비’로 입력했는데도 이를 정정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A씨의 조치 이후 신고자는 방범 철조망을 뜯어내고 주거지에 들어간 동거남에게 여러 차례 폭행당한 뒤 사망했다. 동거남은 상해치사죄로 징역 5년이 확정됐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A씨는 직무를 태만히 했다는 이유로 견책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A씨는 이에 불복해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했고, 소청심사위는 2022년 4월 징계 처분을 견책에서 불문경고로 변경했다. 불문경고는 법률상 징계는 아니지만 일부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행정처분으로 징계 처분에 해당한다.

하지만 A씨는 불문경고 처분마저도 취소를 요구하며 경기도북부경찰청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재판에서 현장에 출동했을 당시 신고자와 동거남이 가정구성원 사이인지 여부를 알 수 없었고, 가정폭력이 발생했다고 판단할 만한 특별한 정황이 없어 위험성 조사표를 작성하지 않고 112시스템 신고 종별코드를 변경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1심에서는 이겼지만 2심과 대법원에서는 패소했다.

1심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징계 처분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는 신고자의 주거지에서 당시 상황에서 고려될 수 있는 가정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을 강구했다”며 “단지 원고가 위험성 조사표를 작성해 가정폭력의 위험성을 판단하지 않았다거나 112시스템 신고 종별코드를 변경하지 않았다는 사유만으로 직무를 태만하게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단을 뒤집고 직무를 소홀히 한 잘못이 있다고 보고 징계 사유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원고는 관계지침에 따라 현장출동 당시 가정구성원 간의 다툼, 언쟁이 있었음을 인지한 이상 언제든지 가정폭력범죄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음을 예상해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한 잘못이 있다”며 “이 사건 처분의 징계사유는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고(A씨)는 신고내용의 실질이 가정폭력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관한 지령을 받고 수차례 현장에 출동했음에도 현장출동 경찰관이 취해야 할 조치를 충실히 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며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서 정한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강구하는 데 소홀했고 112시스템 상의 사건 종별 코드를 ‘가정폭력’으로 변경하지 않아 원고가 속한 순찰1팀과 근무 교대를 한 순찰2팀이 이 사건에 대해 가정폭력 사건임을 전제로 적절한 후속 조치를 취할 기회를 놓치게 했다”고 지적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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