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은 형사재판 아닌 헌법재판”
윤석열 대통령측 제기 ‘절차적 흠결’ 관련 헌법재판소 판단은
정형식 ‘조서 증거채택’ 불만에 명확히 밝혀
‘직접신문 요구’엔 문형배 “소송 지휘권 행사”
‘내란죄 제외’ 반발에도 소추사유 쟁점 정리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되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탄핵심판 변론을 종결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 선고기일을 지정하지 않고 있어서다.
윤 대통령측이 탄핵심판 과정에서 제기한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만큼 또다른 논쟁을 불러오지 않기 위해 ‘흠결 없는 결정문’을 내놓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측이 제기한 주요한 절차적 흠결과 이에 대한 헌법재판관들이 심판과정에서 내놓은 판단을 되짚어본다.
◆헌재, 소추 사유에서 형법상 내란죄 제외 결정 =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측이 탄핵심판 변론 과정에서 제기한 주요한 절차적 흠결은 △국회측의 내란죄 철회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피신조서) 증거채택 △변론시간 제한 등이다.
먼저 국회측이 탄핵소추 사유 중 형법상 내란죄 혐의에 대해 철회한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문제제기다.
윤 대통령측은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하는 것은 전체 탄핵소추 내용의 80%를 철회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탄핵소추 변경사항으로 국회 재의결 사항이며, 탄핵심판은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측은 7일 탄핵 심판을 심리하는 헌재에 헌법학자들의 의견서를 참고 자료로 제출했다. 의견서에서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소추의 동일성이 상실됐고 소추 사유 철회에 국회 결의도 없었으므로 부적법하다”고 했다. 국회측이 형법상 내란죄의 성립 여부를 탄핵소추 사유로 다투지 않겠다고 한 것을 재차 문제 삼은 것이다. 허 교수는 ‘한국헌법론’을 개척한 헌법학계 권위자로 헌재 산하 초대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지냈다.
하지만 헌재는 탄핵소추 사유에서 형법상 내란죄 혐의를 뺀 나머지 소추 사유를 정리한 바 있다. 이 사건의 수명재판관인 정형식·이미선 재판관은 변론준비절차 때부터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이 아닌 헌법재판”이라고 여러차례 규정했다. 헌법 65조1항은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를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규정한다.
앞서 헌재는 국회가 제시한 탄핵사유를 비상계엄 선포 행위, 계엄포고령 1호 발표 행위, 군·경찰 동원 국회 방해 행위, 영장 없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법조인 체포지시 행위 등 5가지로 재정리했다. 윤 대통령측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헌법학자회의는 “헌재에서는 형사법상 내란죄로서의 법적 평가 대신에, 피청구인의 행위가 탄핵심판의 인용기각여부 판단에 필요한 수준에 이르는 것인지만 판단하면 되므로, 내란죄 평가만을 뺀 것이지 피청구인이 저지른 행위 자체가 소추사실로서 그대로 동일하게 남아 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 임명한 정형식 재판관도 조서 증거 ‘찬성’ = 다음은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피신조서) 증거 채택에 대한 문제제기다.
윤 대통령측은 2020년 개정된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피고인이 그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공범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형사재판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측은 ‘피신조서는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정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조항(312조)을 근거로 “조서의 증거 능력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윤 대통령에 불리한 진술을 내놓았던 이진우·여인형·곽종근 전 사령관 등의 피의자 신문 조서를 증거로 채택해서는 안 되고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체포 명단 메모도 신빙성이 의심되므로 “마찬가지로 채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헌재는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은 ‘형사재판’이 아닌 ‘헌법재판’이라며 피신조서의 증거채택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심재판관인 정형식 재판관은 “헌재는 탄핵심판이 헌법재판이라는 사정을 고려해 형사소송법의 전문법칙을 완화해 적용해 왔다”고 밝혔다. 정 재판관은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 내에서 형사소송법을 준용한다”며 형사소송법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조항은 개정된 바도 없고 선례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윤 대통령, 직접 신문 요구에 … 문형배 대행, 법적 근거 제시해 제한 = 피청구인인 윤 대통령이 직접 증인신문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이는 헌재가 지난달 13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기일에서 윤 대통령측이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을 증인신문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됐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체포조 메모’ 관련 진실공방이 벌어지자 윤 대통령측 이동찬 변호사는 “이 부분은 피청구인(윤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아는 부분이라 한두 가지만 직접 여쭙게 해달라” 요청했고 문 대행은 “(윤 대통령이) 적어서 (대리인단에) 줘라”고 말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적어서 할 문제가 아니라, 규정상 제가 직접 물을 수는 없게 돼 있나”라고 말했다. 옆자리에 앉은 윤 대통령 측 김계리 변호사 역시 흥분한 모습으로 “규정의 근거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윤 대통령이 “됐다”며 만류했지만, 김 변호사는 재차 “법적 근거를 보여달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이에 문 대행은 ‘재판장은 심판정의 질서와 변론의 지휘 및 평의의 정리(整理)를 담당한다’(헌재법 35조 1항)는 규정을 강조하며 길게 답했다. 그는 “법에 보면 피청구인이 퇴정한 상태에서 증인신문할 수 있고 청구인(국회) 측에서 (지난달 21일) 그것을 요청했다. 평의를 종합해본 결과 그것은 불공정한 재판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피청구인은 재석하되, 피청구인의 지위가 국정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산하에 있는 증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서 직접 신문보다는 대리인을 통해서 하는 게 좋겠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한 것이다. 그것을 바꾸길 원한다면 저희가 나가서 다시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잘 알겠다. 감사하다, 재판관님”이라고 수긍했고 이후 대리인단 증인신문이 이어진 바 있다.
이외에도 윤 대통령측의 문제제기가 많아 이에 대한 헌재의 입장을 결정문에 담을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애초 예상했던 선고시점이 변론 종결 후 2주가 지나는 이번주 금요일(14일)이 유력했으나 늦어질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