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많은 동네 ‘이웃 생각’은 으뜸

2025-03-24 13:00:24 게재

강서구 ‘겨울나기’ 48억, 서울 1위

쌈지·저금통 턴 기부 2952건 달해

“어려운 주민 먼저” 수급자 잇달아

유난히 겨울바람이 매서웠던 지난해 12월. 서울 강서구 발산1동주민센터에 박양세(88)씨가 전동휠체어를 몰고 방문했다. 수십년전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국가 지원을 받아 생활하는 그는 지난 2018년부터 매년 이즈음 동주민센터를 찾는다. 매달 나오는 수급비를 차곡차곡 모았다가 목돈으로 만들어 전달하기 위해서다. 한해 전보다 100만원 많은 800만원을 맞추려 급여 지급일이 되자마자 은행을 들른 참이다.

24일 강서구에 따르면 박씨같은 주민들 덕분에 구가 3개월간 진행한 ‘2025 희망온돌 따뜻한 겨울나기’에서 48억원 가량 모금하는 성과를 거뒀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다. 서울시 자치구를 통틀어 역대 최대다. 강서구는 임대주택이 많아 경제적으로 힘든 주민이 많은데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낸 결실이라고 반색한다. ‘곳간’이 아니라 ‘쌈지’와 ‘돼지저금통’에서 인심이 난 셈이다.

서울 강서구가 2025 희망온돌 따뜻한 겨울나기 결과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은 금액인 48억원을 모금했다. 역대 서울시 자치구 기록으로도 으뜸이다. 진교훈 구청장이 돼지저금통을 기부한 어린이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사진 강서구 제공

강서구는 지난해 11월 모금을 시작하며 경기둔화 등으로 후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모금 목표액을 20억원으로 정했다. 그만큼 민·관 협력을 강화해 작은 정성을 모을 방침이었다. 입소문을 통한 기부 활성화 방안도 마련했다. 어린이들이 모은 성금은 소아암과 희귀난치성 환아, 장애가 심한 아동 가정에 지정 기탁하고 구청 별관 1층에 인증사진을 내거는 방식이다. 연쇄 기부에 동참하면 구 누리집에 사진을 게재하기로 했다.

작은 정성을 모은 주민들이 줄을 이었다. 발산1동만 해도 눈에 띄는 사연이 많았다. 8㎏이나 나가는 노란 돼지저금통이 그 중 하나다. 저금통에 든 돈이 너무 적을까봐 현금을 따로 봉투에 담아왔다는 익명의 주민 정성은 56만원에 달했다. 한 아파트단지 경로당 회장 내외도 동전 가득한 돼지저금통을 즉석에서 열어 20만원 가량을 기탁했다.

비슷한 사례는 넘칠 정도로 많다. 염창동에서는 40여년간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무연고로 한국생활을 하고 있는 수급자가 30만원을 내놨고 택시를 모는 등촌2동 수급 주민은 운전 중 받은 동전 9만9030원이 든 비닐봉투를 들고 동주민센터를 찾았다. 등촌2동주민센터에서 검정 비닐봉투에 든 기탁금을 받은 건 벌써 4년째다. 화곡2동에서는 기초수급자가 생활비 일부를 모아 20만원을 기부했고 인근 화곡3동에서는 84세 홀몸노인이 1년 내내 파지를 주워 모았던 1000원권 지폐 50만원을 보태기도 했다.

등촌3동주민센터는 검은 비닐봉투에 담긴 ‘고인의 뜻’을 전달받기도 했다. 10원부터 100원까지 오랜 세월 모은 듯한 동전이 가득한 봉투는 등촌3동에서 거주하다 작고한 주민의 남동생이 현금봉투와 함께 전했다. 녹슬고 엉겨붙은 동전 분류에만 꽤 시간이 걸렸다.

이밖에도 주민들은 하루에 1만원씩 모아 매년 자녀 이름으로 기부하고 텃밭 농작물을 지인들에게 판매한 수익금을 내놓기도 했다. 태권도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각자 집에서 라면과 봉지라면을 가져와 주민센터에 기부했고 어린이집에서는 중고물품 판매 수익을 전달하기도 했다. 수천만원을 현금과 현물을 기탁한 기업까지 더한 정성은 총 47억8000만원 어치다. 목표액을 2.4배 초과 달성한 금액이다. 모금 건수로 따지면 2952건에 달한다. 구는 성금과 성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하고 기부자 뜻에 따라 사용할 계획이다.

진교훈 서울 강서구청장은 “유례없는 한파와 경기침체로 어느 때보다 힘들었을 지난 겨울 주민들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기적을 일궜다”며 “주민들처럼 항상 주변에 어려운 이웃이 없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행정으로 다같이 살기 좋은 강서구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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