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허니문 기간과 관세전쟁
트럼프행정부 집권 2기 핵심정책 … 소비자 부담 줄인다면 정치적으론 성공
'해방의 날(Liberation Day)', '경제적 독립(economic independence)' 그리고 '미국의 황금기(golden age of America)'.

그저께인 4월 2일(미국 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상호 관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힘주어 강조했던 말들이다. 관세부과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반드시 이룩하겠다고 미국 국민들에게 약속한 상징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손에는 25개 국가의 이름과 개별 관세율이 적힌 패널이 들려 있었고, 한국은 7번째로 불공정한 대미 고관세를 부과하는 나라로 제시됐다. 지난 1월 20일 취임식을 기준으로 정확히 71일째 되는 날 트럼프행정부 집권 2기의 핵심 정책이 발표된 것이다.
1932년 11월 8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는 다음해인 1933년 3월 4일 공식 취임하기까지 약 4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뉴딜정책을 통해 대공황의 늪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1937년 11월 3일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한 루즈벨트는 1938년 1월 20일 취임식을 가졌다. 재임 중에 법을 고쳐 당선과 취임 사이의 공백을 줄여 시간 낭비를 없앴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은 이때부터 대통령 집권 초기 밀월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해서 ‘허니문 시기’가 신임 행정부 초기 정책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등장했다. 통상 허니문 기간을 4개월 정도 잡는다면 이번 관세정책은 트럼프행정부 밀월기간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초강대국 간 파워게임이 핵심 작동 기제
사실 작년도 선거 기간 내내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적자를 유발하는 국가를 상대로 한 상호관세 부과를 지속적으로 강조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그저께 미국 대통령의 손에 들린 패널의 첫번째 리스트에 오른 중국의 경우 미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가 67%이기에 상호관세 차원에서 미국이 앞으로 34%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기억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최대 60% 관세부과를 공공연하게 언급하곤 했다.
미국의 관세부과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상품에 대한 세금이라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 미국의 관세부과는 첫째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오랫동안 유지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를 위한 공공재 제공의 포기를 의미하며, 둘째 미중 갈등이라는 초강대국 간 파워게임의 핵심 작동 기제이며, 마지막으로 미국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源)인 동맹국들과의 관계 설정을 의미한다.
국제적 역할을 국내적 게임으로 전환
먼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경우 이미 많은 사람들의 지적처럼 2010년을 전후로 국제사회를 위한 미국의 버팀목 역할은 많이 줄어들었다. 국가들 간 왕성한 자유무역은 국제질서 유지의 핵심축인데 이 과정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경제의 출혈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소비자층의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경제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공급하는 능력으로 이러한 출혈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미국만의 역량이 또한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 그 출혈을 미국의 소비자 몫으로 규정하고 그 문제를 적극 해결하겠다고 천명하면서 국제질서 안정성과 미국 역할 사이의 연동 문제를 일종의 국내적 게임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자유무역의 근간을 흔들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세계 최고 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지위를 대신할 국가가 아직은 없고 무엇보다 트럼피즘이라는 독특한 세계관의 차원에서 그의 리더십에 도움이 되는 정치적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두번째로, 관세부과는 미중갈등의 상징이라는 부분이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된 이후 지금까지 20여년의 시간 동안 중국은 세계 공산품 생산의 허브를 자처했다. 요즘은 상황이 다소 바뀌었지만 오랫동안 미국 대형마켓에서 무엇을 집어들더라도 대부분은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저가의 중국산 제품을 미국 제조업 붕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러스트벨트(과거 산업의 중심지였던 오대호 주변의 주요 지역)의 백인 노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주장에 환호했지만 사실 미국의 제조업 붕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
특히 도전을 즐기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미국의 창업자 정신이 과도하게 정보통신(IT) 중심의 첨단산업과 월가 중심의 금융산업에 집중되면서 전통산업의 붕괴가 더욱 빛에 가려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현재로서는 가격이 올라간 중국 상품을 대신해 미국 내 제조업 부문이 다시 살아날지 아직은 의문이다. 수입 상품에 대한 관세부과가 미국의 제조업 활성화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그와 관련한 미국 행정부의 정교한 정책 집행 능력은 물론 이민자 문제 등 통제하기 어려운 여러 변수들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쨌든 이는 미국 대통령의 선택이고 그러한 선택이 예견되는 지도자를 선택한 미국 국민들의 몫이 아닐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트럼프행정부 2기의 공격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중국은 미국과의 공존 번영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 경제 불황에 발이 묶인 중국의 입장에서 안정적인 국제정치환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트럼프행정부의 초강수가 중국과 확실한 격차를 벌려놓을지 아니면 두 초강대국의 경제 실패로 세계경제가 거대한 불황으로 이어질지 너무도 중요한 시점이다.
관세 부과해도 미국 영향력 지속 예상
마지막으로, 유럽연합(EU)과 베트남 대만 일본 인도 한국은 그저께 트럼프 대통령이 들고 있던 패널에 중국 다음으로 리스트에 오른 국가들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세계 전략에 매우 중요한 동맹 파트너들이다.
베트남과 대만을 동맹(alliance) 관계로 규정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이 두 국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우리 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존중해 중국과 유일한 외교 관계를 맺고 있지만 논의의 편의를 위해 이 글에서는 대만을 국가로 지칭했다) 미국은 이들 국가를 상대로 최고 46%에서 최저 25%의 관세 부과를 예고했는데 조금만 더 리스트를 따라 내려가면 싱가포르 필리핀 호주 등의 이름이 보인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EU의 도움 없이 미국의 대유럽 정책 실행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인도 일본 호주 필리핀 싱가포르 한국 등의 도움 없이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은 오히려 단순해 보인다. 이들 국가들에게 상호 관계를 새롭게 부과하더라도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거나 혹은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조금 벗어나더라도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국가들마다의 복잡한 사정은 다르겠지만 한국만을 예로 보면 일단 현재로서는 전자의 가능성이 확실해 보인다.
미국의 황금시대 열지는 미지수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처럼 높은 상호관세 부과가 과연 미국의 황금시대를 열 것인가? 이와 관련한 핵심은 관세부과가 불가피하게 공산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만약 트럼프행정부가 정교한 역량을 발휘해 대략 상품가격 인상의 30% 수준에서 소비자의 부담을 막아준다면 황금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트럼프행정부의 관세정책은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성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 행정부의 밀월 기간은 다른 나라와 달리 국제 정치적으로도 매우 복잡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제 한국을 포함한 각 국가는 미국발 관세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전략 짜기에 돌입하게 됐다.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