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윤석열 탄핵과 민주공화정 안정성 위협하는 극우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12.3 비상계엄 이후 넉달여만에 헌법재판소의 탄핵판결로 극단의 분열을 해소할 단초는 마련됐지만 앞으로의 과제는 만만치 않다.
비상계엄 직후 탄핵소추 의결로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후 전개된 양상은 극단적 세력의 준동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했다. 반탄세력은 ‘자유우파’라는 단어를 그들의 상징구호로 신봉하면서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듯했다.
극우의 준동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해방과 분단, 미 군정과 전쟁,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극우는 보수의 우산 속에 독버섯처럼 기생했다. 보수 또한 ‘보수’란 이름으로 자신을 가린 채 극우와 이념적 지향을 공유했다. 이러한 극우와 보수의 동거가 윤석열 탄핵 정국에서 현출되었다.
이승만 우상화와 건국절 논란, 반공과 반중의 구태한 색깔론으로 상대를 압살하려는 음모적 퇴행 등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계엄 이후의 아스팔트의 준동 세력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단순히 기득권 세력이라는 잣대로 볼 수도 없다. 특히 극우적 사고는 구시대에서 오염된 반공 이데올로기와 냉전사고가 아직도 인식의 저변에 침윤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윤석열 탄핵반대 시위에는 찬탄세력을 친북 친중의 내란세력으로 보는 퇴행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탄핵정국에서 드러난 극우와 보수의 동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보완적일 때도 있지만 근대의 역사를 보면 양자는 기본적으로 갈등 관계다.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자유(liberty)’와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평등(equality)’은 정치철학적으로도 동행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유와 평등은 서로의 존재를 강력하게 필요로 한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의 지향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인권과 기본권 보장은 자유주의의 대두와 맥을 같이 한다. 민주주의가 인민주권(people sovereignty)을 바탕으로 ‘다수의 지배’를 천명함으로써 자유주의는 항상 민주주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수의 횡포(tytanny of majority)’를 의심어린 눈초리로 경계해 왔다.
그러나 2025년 한국에서는 이러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 같은 논변도, 건설적 논쟁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뜯어봐도 이해할 수 없는 궤변이 차가운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궜다. ‘계엄’은 ‘계몽’으로 둔갑해 이들의 신조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야당의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구국의 결단으로 계엄을 했고,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자들이 내란을 획책하고 있다는 ‘내란프레임’과 ‘탄핵공작’이 반탄세력의 흔들리지 않는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다.
보수정당을 자임하는 국민의힘의 몇몇 중진들은 탄핵국면에서 진영 내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면서 정제되지 않는 발언을 쏟아냈다. 헌법재판소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판시해도 대통령 권한대행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민주주의는 항상 백척간두에 서 있었다. 그 위기가 에너지를 잔뜩 품다가 윤석열의 계엄을 계기로 결집한 것이 반탄세력의 준동이다. 야당의 그동안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계엄을 했다는 논리적 위선과 이를 추종하는 극우와 보수의 동거는 앞으로도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것이며 오염된 극우의 저변이 얼마나 넓은 것인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때와 천양지차로 달라진 외관에서 역사가 후퇴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전진하는 것이다.
'극우' 견제하지 않으면 다시 위기 올 수 있어
‘자유우파’를 얘기하는 자들의 몰역사적이며 반자유주의적 행태는 인권과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를 확인해주었다.
헌재의 판시에 명징하게 나타나 있듯이 윤석열은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 국민주권과 법치국가 원리를 부정하고 위반했다’. 그는 ‘헌법질서를 침해하고, 민주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이의 토양이 된 극우를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