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혁명, 5분충전으로 400㎞ 주행

2025-04-07 13:00:01 게재

중국 비야디, 초고속 충전 기술로 세계시장 공략 … 폐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로 재탄생

리튬은 주기율표에 있는 118개 원소 가운데 3번이다. 양성자가 3개밖에 없는 아주 단순한 원소인 리튬이 인간문명의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있다. 원유 80% 가까이가 자동차와 비행기, 선박용 연료로 쓰이는데 요즘 전기자동차는 1회 충전으로 500㎞ 이상 주행한다. 현대 아이오닉6 2WD는 544㎞를, 테슬라 모델3는 527.9㎞를 달린다.

비야디의 블레이드 배터리. 저항을 줄여 더 빠른 속도로 이온이 이동하도록 설계됐다. 사진 비야디 홈페이지

최근 중국 비야디(BYD)는 5분 충전으로 400㎞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 2종을 내놓았다. 초고속 직류(DC) 충전기를 탑재한 ‘BYD 한(漢) L’과 ‘BYD 탕(唐) L’이다. 비야디는 이 차들이 쇼케이스나 컨셉이 아니라 대량생산될 수 있는 기술임을 분명히 했다. 이 전기차는 1㎿ 초고속 DC 충전기와 연결하면 초당 2㎞의 주행거리를 충전한다. 5분 만에 주행거리 400㎞를 충전하니 휘발유 주유 시간과 비슷하다. 비야디의 블레이드 배터리는 저항을 줄여 더 빠른 속도로 이온이 이동하도록 설계됐다.

비야디는 이 배터리가 셀 발열을 최대 50%까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빠른 충전과 방전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배터리 팩에 냉매가 흐르도록 만들었다. 동력부엔 3만RPM 이상으로 회전하는 1000V 전기모터가 장착됐다. 이 모터는 580㎾(778마력)으로 성능은 V12 가솔린엔진과 같지만 부피는 1/4에 불과하다. 세단형인 ‘BYD 한 L’은 0~100㎞/h 가속시간이 2.7초이며 305.5㎞/h까지 달릴 수 있다. SUV인 ‘BYD 탕 L’은 0~100㎞/h 3.6초, 287.41㎞/h의 최고속도를 낼 수 있다.

핵심은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1799년 알렉산드로 볼타는 구리판과 아연판 사이에 소금물에 적신 판지를 끼워 최초의 전지를 만들었다. 전지에 감동한 나폴레옹은 그에게 백작 작위를 내렸다. 볼타 전지의 원리는 현대의 배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배터리의 핵심은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3가지다.

1986년 3월 3일 중국의 물리학자 4명이 덩샤오핑에게 편지를 보냈다. 왕다헝 왕간창 양자츠 천팡윈은 인공위성을 포함한 민군 겸용 기술 연구에서 이름난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독립하려면 몇가지 핵심 분야에서 첨단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국가고기술연구발전계획’(863계획)을 제안했다. 덩샤오핑은 이 계획을 이틀 만에 승인하고 공산당 동료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체없이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863계획에서 제시한 7개 핵심 분야에 포함된 ‘신소재’와 ‘에너지’는 배터리 개발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전기자동차는 2001년에 핵심 분야에 포함됐다. 이 결정은 시장의 필요나 개별 기업의 비전이 아니라 ‘화석연료에 덜 의존하는 친환경적인 중국’이라는 공산당 지도부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2000년대 초까지 중국은 일본에서 수입한 배터리에 의존했다. 일본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최초로 상용화했고 로봇 생산라인을 이용해 세계 배터리 산업을 이끌고 있었다. 당시 중국 기업들은 배터리 산업에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기술력도 부족했고 1억달러 이상 투자비용도 문제였다.

비야디 창업자 왕촨푸는 상황을 다르게 보았다. 그는 안후이성 출신으로 화학과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회사명 BYD는 영어 문장 ‘Build Your Dreams’의 첫글자를 딴 것이다. 그는 동료들과 작은 주택에서 일본산 배터리를 분해하고 모방하면서 배터리의 원리를 터득했다. 로봇 생산라인은 사람으로 대신했다. 일본산 휴대전화 배터리 하나가 8달러였을 때 비야디는 3달러짜리 배터리를 만들어 팔아 돈을 모았다.

비야디는 휴대전화 업체에 다른 부품까지 만들어 납품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휴대전화도 생산했다. 창립 10년 만에 비야디는 국제 배터리 시장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회사가 됐다. 2024년 말 기준 중국의 CATL이 EV(자동차용)와 ESS(저장장치) 배터리 시장에서 38% 점유율로 1위를 유지했고 비야디는 2위를 기록했다.

2003년 비야디는 전기자동차에 진출하기로 하고 국유기업이었던 시안진촨자동차를 인수했다. 2013년에는 비야디의 전체 매출 가운데 51%가 자동차에서 나왔다. 그러나 제일 먼저 시장에서 성공한 자동차는 전기차가 아니었다. 중국에서 최초로 성공한 모델인 ‘F3’는 내연기관차였다. 비야디 전기차들은 초반에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첫번째 장애물은 불충분한 충전망, 두번째는 가격이었다. 휘발유로 움직이는 F3는 8750달러였는데 동일한 외양의 전기차 ‘F3DM’은 2만1900달러부터 시작했다.

2010년에야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제도가 시행됐다. 게다가 F3DM의 배터리 용량은 테슬라의 1/4에 불과했다. 소비자들은 한번 주유로 480㎞까지 달릴 수 있는 F3 휘발유차를 선택했다. 2016년 비야디는 전기차 ‘친’을 5만대 팔았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나라 이름을 딴 인기 모델이었다. 그러나 친도 배터리만으로는 70㎞밖에 못 가는 하이브리드 차량이었다. 주행거리 300㎞인 온전한 전기차 ‘친 EV300’은 2016년 3월에야 출시됐다.

가족들 투자로 시작한 ‘간펑리튬’

전기 자동차의 핵심은 배터리다. 리튬 이온 배터리에 쓰이는 양극재는 LFP(Lithium Iron Phosphate. 리튬인산철) NMC(니켈 망가니즈 코발트) NCA(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LCO(리튬 코발트 산화물) 등이다. 전기자동차에는 성능이 뛰어난 NMC 양극재가 주로 쓰이는데 비야디는 LFP를 고집한다. LFP에는 코발트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코발트는 거의 전량이 정국이 불안정한 아프리카 콩고에서 생산된다. 비싸고 수급이 불안정하다.

리튬은 모든 종류의 양극재에 반드시 들어가는 금속이다. 심지어 음극재에도 들어간다. 양극재 핵심은 리튬 화합물이 주입되는 결정구조다. 충전 동안 리튬 이온은 결정구조를 벗어나고 완전 방전되면 결정구조 안으로 다시 들어온다. 셀이 충전과 방전을 할 때마다 이 과정이 되풀이된다. 결정구조는 나노 수준에서 리튬 이온의 이탈과 복귀를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해야 한다.

배터리 산업이 시작되던 시기에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리튬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배터리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자국 내 리튬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장시성 출신의 리량빈은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장시리튬에서 일하며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1996년 말 그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독립했다. 2000년 조그만 리튬 제련소를 인수했다. ‘간펑리튬’은 형제 사촌 처남 장모가 투자한 가족기업으로 시작했다.

당시 중국의 다른 기업들은 자국 내에서 생산되는 리튬에 의존했다. 리량빈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세계 최대 리튬 생산업체 가운데 하나인 칠레화학광업협회(SQM)와 협력관계를 맺으려 했다. 그는 리튬 공급을 조건으로 회사 지분 15%를 제안했다. SQM은 간펑리튬에 대한 실사를 조건으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실사 후 SQM은 제안을 거절했다. 2년 후 SQM이 다시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안을 해왔지만 간펑리튬은 이미 탄탄하게 성장한 후였다. 12년 후 아르헨티나 리튬 광산 프로젝트에서 간펑리튬이 SQM의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이 계약은 성사되었다.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의무화

금 은 납 아연 등은 땅속에 묻힌 매장량보다 사람들이 사용하거나 버린 물건 속에 들어있는 금속량이 더 많다. 특히 물건 속의 금속은 광물보다 훨씬 농축된 상태다.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리튬 1톤을 얻으려면 스포듀민 250톤이나 염수 750톤을 정제해야 하지만 폐 배터리는 28톤만 있어도 리튬 1톤을 얻을 수 있다.

중국 공업화정보부는 2018년에 전기자동차 생산업체에 배터리 재활용 의무를 부과했다. 생산업체는 배터리마다 국가표준에 따른 일련번호를 붙이고 전체 생애주기를 추적하는 시스템에 등록한다. 일련번호를 붙이면 재활용 과정이 자동화되고 간단해진다. 폐 배터리를 녹이지 않고 재사용하면 비용이 더 줄어든다.

2020년 중국은 약 50만곳의 5G 기지국을 건설했는데 여기에 예비전력 저장장치로 폐 전기차 배터리를 재사용했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배터리는 잦은 충전과 방전으로 힘들었던 첫번째 삶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배터리 열화 수준을 시험하는 한 엔지니어는 “전기차 배터리가 두번째 삶에서 ‘치유’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한다. 저하되었던 배터리 성능이 다시 복구된 것이다.

남준기

기후재난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