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025년에 정년·연금 65세로’ 통합

2021-04-09 14:52:47 게재

국가적 과제로 다뤄진 ‘2025년 문제’ … 심각한 인구감소·연금고갈·재정적자 등 이유


일본은 2025년을 국가의 미래에 있어 중대한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전후 제1차 베이비붐 세대인 이른바 ‘단카이세대’(1947~49년 출생자) 560만명이 모두 만 75세를 넘겨 후기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때이다.

일본에서는 이른바 ‘2025년 문제’로 불리면서 국가적 과제로 다뤄진다. 의료와 요양, 연금 등 사회보장비의 폭발적인 증가로 국가 재정부담이 급증하면서 관련 제도의 개혁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2025년 부터 모든 사업장의 정년과 후생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로 맞춰 노동·복지시스템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공무원 정년도 65세로 연장

일본은 2013년 ‘고연령자고용안정법’의 개정을 통해 단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해 오다 2025년에는 모든 사업장에서 65세 정년을 의무적으로 시행한다.

기업은 이를 위해 △정년연장 △재고용제도 활용 △정년 완전한 폐지 가운데 적절한 방식을 선택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앞서 일본은 1994년 법개정을 통해 지난 100년 가까이 유지해 온 정년 55세를 60세로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이 법을 개정해 만 70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하는 근로자가 있으면 기업은 계속 고용을 위해 노력하도록 하는 규정이 올해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정년을 연장해 도입하는 데는 여러가지 제약요인이 많다. 정규직 사원의 경우 기존 임금체계와 수준을 어떻게 조정할지, 적절한 업무에 맞는 직위와 역할을 어떻게 결정할지 등이 제기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쓰비시케미칼은 2022년 4월부터 모든 사원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고, 이후 성과 등을 보면서 정년제도 자체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에 따라 개별 직원들이 각각의 포스트에서 해야 할 직무의 성격과 범위를 분명히 하고, 능력에 따라서 업무를 배치하는 이른바 ‘Job형’ 인사제도를 도입한다. 전통적인 일본식 연공체계로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도 문제지만, 고령노동자가 가진 건강과 집중력 문제를 고려할 때 생산성 향상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60세인 국가공무원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공무원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을 현재 열리고 있는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지난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고도화하는 행정과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년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면서 “조기에 법안을 제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공무원법 등 관련 법안을 올해 상반기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고 이르면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정년을 65세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공무원 정년연장을 통해 2025년부터 전면 시행하는 민간기업 정년연장도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연금 늦추고, 금액은 낮추고

일본 정부가 2025년부터 정년 65세를 의무화하는 데는 연금제도 개혁과 밀접한 상관이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직장인 국민연금과 같은 후생연금의 수급 개시연령이 60세였던 것에서 2013년부터 3년 마다 1세씩 늦춰 2025년부터 65세에 수급 자격이 생긴다.

연금 수급 개시연령이 5년 늦춰지는 만큼 정년도 5년 연장하는 셈이다. 정년퇴직과 연금수급 개시 사이의 5년간 소득이 없는 공백을 메우기 위한 조치다. 65세 이상인데도 직장에 다니며 임금을 받을 경우 ‘재직자 노령연금’을 받는데 연금수급액도 감액하도록 했다. 예컨대 65세 이후 월 연금수급액과 월평균 급여의 합계가 47만엔 (480만원)을 넘으면 초과하는 만큼의 절반은 연금지급이 정지되는 방식이다.

연금개시를 늦추고 금액은 가능하면 낮추는 이러한 일본의 연금개혁은 막대한 국가재정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무성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일본의 사회보장급부비 총액은 126조8000억엔(1293조3600 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0.5%에 이른다. 이 가운데 연금지급액만 57조7000 억엔으로 전체의 45.5%를 차지한다. 하지만 전체 지급액에서 연금이나 의료 등의 수익자가 부담하는 보험료 비중은 60% 수준에 불과하고, 나머지 40% 안팎은 국가 재정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재무성은 인구추계 등을 근거로 2025년 전체 사회보장비는 140조2000억엔에 이르고, 2040년에는 최대 190조엔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연금지급액은 각각 59조9000억엔, 73조2000억엔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사회보장비에 들어가는 현역세대가 낼 보험료와 정부 재정의 부담을 덜기 위해 계속 개선안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75세 이상의 의료비 자기부담을 현행 10%에서 20%까지 올리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앞서 일본 재무성은 2013년 ‘사회보장제도개혁의 방향’을 재정립하면서 “1961년 국민개보험과 개연금을 시작한 이후 73년 ‘복지원년’을 완성했지만, 1990년대 이후 국내외 사회경제상황의 변화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큰 변화에 직면했다”며 “일본의 사회보장제도를 1970년대 모델에서 2025년 일본 모델로 재구축해 국민생활의 안심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일본 후생노동성 등은 정년연장의 배경으로 △인구감소에 따른 노동력 확보의 어려움 △연금 재원확보 어려움 △후생연금 지급 개시연령과 퇴직에 따른 소득 공백 △수명연장에 따른 고령자의 취업 의욕 고취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일본은 정년의 단계적인 연장으로 65세 이상 고령자의 취업이 크게 늘었다. 2010년 초 573만명에 불과했던 65세 이상 근로자는 올해 2월에는 921만명으로 늘었다. 이 기간 동안 전체 취업자 수가 383만명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65세 이상 취업자수 증가는 전체의 90.9%를 차지한다. 계속 근로를 유지하려는 고령자 비중도 높다.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70세 이상이 되어서도 일을 하고 싶다는 고령자는 전체의 27.3%, 70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65.4%에 달했다.

한국도 노동·복지개혁 시급

한국도 일본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시급하게 정년 연장을 비롯한 노동과 복지시스템의 종합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우리나라도 절대 인구의 감소가 시작됐다. 행정안전부는 7일 올해 3월 말 기준 주민등록인구는 5170만6000 명으로 지난해 12월 말에 비해 12만3100명 (0.24%) 줄었다고 밝혔다. 정점을 찍었던 2019년 말에 비해 24만명 줄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행안부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는 전체 인구의 16.6%, 857만명에 달해 이미 아동 인구(765만명)와 청소년 인구(846만명)를 넘어섰다. 아직 일본(28.7%)의 고령화 인구에 비해서는 낮지만 빠른 속도로 따라 잡고 있다.

국민연금 수급연령도 매 5년마다 1세씩 연장돼 2033년이면 만 65세로 늦춰진다. 따라서 그 전까지 현행 60세인 정년이 연장되지 않으면 연금수급 개시 연령과의 공백이 발생해 소득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정년연장에 대해 본격적인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하면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행 60세 정년을 62~65세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 정년 연장에 대한 정부 차원의 논의는 아직 본격화하지 않고 있다.

양대노총과 금융노조 등이 노사정협의와 노사교섭 등을 통해 65세 정년 연장을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실현가능성은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도 연금제도 개혁과 맞물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정년연장에 대한 검토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이 2013년부터 12년간에 걸쳐 65세 정년을 단계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듯이 우리도 기업의 단계적인 준비를 위해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주장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백만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