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중대재해법 시행 2년차 산업안전보건
며칠 전 사망사고 원인 조사차 현장을 방문한 고용노동부 감독관을 만났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 적용에 앞서 사고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감독관의 고민과 질문은 공인으로서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해당 공학을 전공하고 관련 사고들을 평생 봐온 본인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처음 겪는 형태의 사고였다. 안전규칙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중대재해 수사의 시작이 사고원인에 해당하는 법규를 찾아 위반을 적용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경우에 담당 감독관의 실무적 어려움은 적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상황 때문에 사고예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는 대책들을 사고발생의 원인과 혼동하는 경우들이 상당수 발생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사단계에서의 혼동이 공소와 재판 과정에서조차 제대로 걸러지지 않아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미래의 사고예방을 위한 사고조사
작업계획서는 작업의 전개과정을 고려해서 구체적인 작업방법과 예상할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계획을 사전에 수립하라는 취지의 규칙이다. 사고예방 대책으로 충분히 일리 있다. 그러나 대책은 될 수 있으나 이행하지 않은 것이 사고의 원인은 아니다.
사고예방과 작업계획은 과학적인 상관관계가 입증된 바 없다. 명칭은 같아도 규모·조건·환경과 요구수준에 따라 큰 차이가 있고, 의견이 다르기도 해 불필요한 경우도 많다. 게다가 잘못된 계획은 사고의 기여요인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건의 원인이란 말은 그 원인 조건이 제공되면 그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업계획서 미작성을 작업 중에 일어난 사고원인으로 볼 수 있는 객관적 근거는 없다.
감전사고 방지를 위한 누전차단기 설치와 같이 그 예방효과가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기준과는 다르다. 교육, 관리 감독, 위험성 평가 등 반복적인 시행과 환류를 통해 효과를 높여가도록 해야 할 규칙들의 이행 여부를 사고원인으로 고려해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사고예방 자원을 불필요한 형식에 소진시킴으로써 사고발생의 배경요인이 될 일이다.
작업자 실수라고 말하는 것을 사고조사에서는 불안전한 행동이라는 사고의 직접원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실수로 보이는 그 행동의 배경에는 작업시간 부족을 야기하는 작업관리, 그 뒤에 기업의 생산목표, 그 뒤에는 정부의 정책과 제도까지 사고의 배경원인들이 있다.
즉 사고의 직접원인으로 지목되는 불안전한 상태와 불안전한 행동은 고의가 아닐 경우, 피라미드 구조와 유사한 상위의 배경요인들에 의해 발생 압박을 받고 있다. 그 배경 요인들은 미래의 다양한 사고발생에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그 배경요인들을 드러내 현장, 기업, 관계 시장, 정부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강구할 사고조사 분석이 절실하다.
중대재해법에 담긴 변화의 씨앗
건축공사장의 가로 방향 철골 위에 설치된 구명줄은 흔히 볼 수 있는 안전시설이다. 철골 위를 통행하는 작업자의 안전대 걸이용 시설이다. 그러나 폭이 좁은 철골 위는 구명줄로 인해 더욱 좁아져 통행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정 때문에 구명줄은 통상 철골이 조립된 후에 설치되고 철골해체 작업 전에 철거된다. 사고예방이 아닌 외부 점검용 시설이다. 또 그 상황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그와 같은 불합리한 조치들이 기업 자체의 안전에까지 번져 있다.
감독관이나 기업 실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불합리한 현상 배경에는 생산에 관한 당국의 몰이해, 학습기회 부재로 인한 법규와 증빙 위주의 규제, 그 규제를 그대로 수용하는 사회적 규범이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일부 대기업 현장에서 안전 명목이 아닌, 생산 또는 시공관리에 사고예방을 위한 실질적 행위가 이식되고 있는 상황을 목격했다. 또 위험이 발현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고도화된 생산관리 시스템의 등장과 작동도 확인된다. 현재의 산업안전 수준의 정체를 타개하기에 매우 바람직한 변화다.
중대재해법의 핵심인 법 제4조에 명시된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및 규모 등을 고려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을 그 변화의 씨앗으로 기대한다. 법 시행 2년이 됐는데 '효과가 있네' '없네'를 말하기 전에 고장난 시계 같은 시행령을 고치고 합리적인 법 집행으로 현장 특성에 최적화된 시스템 구축을 견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