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식민사관 학자들이 국정교과서 밀어붙여"

2015-02-09 11:14:21 게재

역사를 좌·우 개념으로 보면 위험 … 식민사관 척결이 최우선 과제

대한민국은 해방 7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역사논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역사교과서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날선 공방에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초기 "좌편향 문제가 있다"며 '균형잡힌 교과서'를 주문했다. 이어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해 8월 황우여 사회부총리는 청문회에서 "역사는 한가지로 가르쳐야 한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불씨를 지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조선후기 노론사관과 일제식민사관이 변형시킨 한국사의 원형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역사학자다. 고대사에서 현대사까지 해방되지 못한 한국사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당쟁으로 보는 역사' '정조와 철인정치 시대' 등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저서 50여권을 집필했다.

역사논쟁의 핵심인 한국고대사, 중국 동북공정, 식민사관 등에 대해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에게 들어봤다. 인터뷰라기보다 한국역사 전반에 대한 강의였다. 역사논쟁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식민사관을 척결해야만 우리역사가 바로 설 수 있다고 했다. 해방된지 7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식민사관과 그 추종자들을 걷어내지 않고는 올바른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몸은 해방이 되었지만, 정신은 아직도 식민사관에서 해방되지 못한 민족’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의 역사를 언제부터, 어떤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는가.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정확하게 재조명하지 않고는 올바른 역사를 논할 수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탄생은 독립운동가로부터 비롯됐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서부터 우리나라 정통성을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를 광복 70주년이라며 건국을 해방으로 보는데 이는 큰 오류다. 이완용 일당이 나라를 팔아먹자 전국의 수많은 유학자와 사대부들이 집단 망명을 한다.

조선 숙종 때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정치는 250여 년 이상 노론의 일당독재로 이어졌다. 인조반정과 조선 왕이 중국 황제의 신하라는 논리를 인정한 노론은 조선 후기 정치 경제 권력을 장악했다. 이 조직이 일본에 집단적으로 나라를 팔고, 막대한 돈과 권력을 대가로 받아 챙겼다.

반면 중국으로 건너간 망명자 대부분은 주자학을 유일사상으로 숭배하던 노론에 의해 이단으로 몰린 양명학자(강화학파)들이었다. 이들은 1911년 삼권분립을 지향하는 민주공화제를 선택했다. 1919년 3.1절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것도 이미 1911년에서 시작된 것으로 건국의 뿌리로 보아야 한다. 일제와 맞서 독립을 외치며 죽어간 20여만명의 피의대가로 지금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역사를 조선총독부 역사관과, 독립운동가 역사관으로 분명히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이 소장은 건국을 해방 이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에 여러 증거를 제시했다. 우선 ‘우리안의 식민사관(이덕일 지음)’이라는 책을 인용했다. “중국으로 건너건 민족사학자들은 1911년 4월 중국 삼원보 추가가 뒷산인 대고산에서 경학사(耕學社)를 탄생시킨다. 낮에 밭 갈고 밤에 공부하는 민단 자치조직이지만, 사실상 내용은 정부였다. 이상룡은 훗날 ‘정부(경학사)의 규모는 자치를 명분삼고 삼권 분립은 문명국에 준거했네’라며 시로 회상했다.

이 소장은 “이 경학사가 이듬해 독립운동가들이 삼권 분립에 의한 공화제로 발전시켜 나갔다”고 설명했다. 이후 경학사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웠고, 무장투쟁 못지않게 국사교육을 중요과목으로 가르쳤다. 교재는 이상룡이 지은 ‘대동역사’로 만주를 단군의 옛 강역으로 기술한 역사서였다.

만주 무장투쟁의 지도자이자 역사학자였던 이상룡 선생은 1911년 1월 5일 경북 안동 임청각을 떠나 망명길에 오르면서 망명 기록인 ‘서사록’을 썼다. 서사록에는 “심양 이남이 조선 땅으로 이미 삼한이라는 나라가 있었으며 한사군의 땅은 압록강 이서를 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고 적혀있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한사군 한반도설’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말한 대목이다.

∎역사문제를 왜 좌우 이념논쟁으로 끌고 가나.
식민사관론자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드러내놓고는 말하지 못한다. 반일 감정이 큰 국민 정서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등장시켜 좌-우, 진보-보수 싸움으로 부추기는 것이다. 식민사관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독립해서는 안 되는 나라 아닌가? 역사 사실에 대한 논리가 부족하니까 민족사학이나 비주류 역사학으로 몰아 부친다.

식민사관은 프랑스 역사로 치면 나치가 옳았다는 식인데, 프랑스 국민들이 나치 편을 드는 사람을 어떻게 하겠는가. 해방 후 친일 청산을 못한 결과가 오늘 한국역사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식민사학자들은 ‘신채호는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고, 세자로 말하면 또라이’라고 매도했다. 지난 정권 공개 학술 세미나에서 한국사 관련 사업단 학자가 한 말이다. 이 단체는 한국사 관련 예산을 년 250억원씩 쓰는 곳이다. 신채호선생에 대한 평가가 이정도니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제대로 조명하겠는가. 식민사관론자들이 돈과 권력을 쥐고 활개 칠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역사에서 바로잡아야 할 주요 대목은 무엇인가.

우선 ‘한사군의 위치는 어디인가?’와 ‘임나일본부는 실제로 있었는가?’에서 식민사관 문제를 짚어볼 수 있다. 조선총독부가 이 두 문제를 집요하게 왜곡했기 때문이다.

한사군은 고대판 한나라 조선총독부다. 핵심은 한나라가 한사군을 어디에 설치했는가 하는 것인데,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한사군이 평양이나 대동강 유역에 존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동북공정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부터 조선총독부 역사관과 독립운동가 역사관이 부딪히는 것이다.

국사시험에 ‘다음 중 한사군이 아닌 것은?’ 해놓고 ‘낙랑 임둔 진번 현도’ 중 하나를 빼고 부여나 동예 등을 넣었다. 학생들은 한사군에 대해 낙랑 임둔 진번 현도를 달달 외웠고, 낙랑의 위치는 평양이나 대동강 유역이라고 답해야 했다. 이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가르치는 내용 그대로였다. 해방 후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자가 조선통독부의 사랑을 받은 이병도 아닌가. 또 하나는 고대 일본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쪽에 임나일본부라는 식민통치기구를 설치하고 식민 지배를 했다는 주장인데 이것 역시 고대판 일본 총독부인 셈이다.

이는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망한 후부터 110여 년간 지속된 싸움으로, 조선총독부에서 식민사관학자들에게 전승됐다. 식민사학자들은 일제식민통치에 대한 반감 때문에 임나일본부를 학교에서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앞세워 삼국 초기 역사를 지웠다. 대신 그 자리에 삼한이 있었다고 가르쳤다. 결국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초기 역사는 사라진 것이다.

식민사학자들은 팩트를 조작하거나 꾸준히 왜곡시켰다. 이런 현상은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국어학계서도 나타났다. 이인직의 ‘혈의누’가 대표적인 사례다. 1910년 이완용의 비서로 나라를 팔아넘기는데 비밀협상을 주도한 이인직을 선각자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혈의 누’는 청일전쟁으로 곤경에 처한 조선처녀를 일본군이 구해줬다는 내용으로, 자주독립과 신교육 사상을 담은 정치소설이다. 여기에서 ‘자주’ 조선이 청나라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일본 극우파의 시각이다.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 청소년들한테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거의 0에 달하자 식민사관 학자들이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는냐, 검인정으로 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역사 교과서를 누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나가느냐 하는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 주문대로 ‘균형 잡힌 교과서’ ‘믿을 수 있는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나. 정통성과 객관성을 담보한 역사책이라면 국정화로 하다가 검인정으로 가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만 우리역사의 관점의 차이를 얼마나 좁히고 팩트에 근거해 정확하게 기술해 내느냐의 문제다.

권불 5년이다. 정권이 바뀌면 폐기처분될 정책을 만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국민정서를 배제하고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 수는 없다. 학생 교사 등 역사 서술학자 등을 외면하고 특정 한쪽 관점만 담겠다는 것은 엄청난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역사문제를 좌-우 싸움으로 몰고 가는 것은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것이고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다. 독립운동과 3.1운동을 계승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결국 식민사관은 헌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교육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역사교육 방향을 어떻게 잡아가야 하나.

우선 정치권력 간섭에서 벗어나는 2012년 6월 19일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일선 역사 교사들이 만든 ‘동북아 평화를 꿈꾸다’라는 자료집에 대해 동북아역사재단이 발목을 잡았다. 언론과 동북아역사재단은 경기도교육청 자료집이 단군신화를 정사로 묘사하거나 만주의 간도를 조선 땅이라고 기술하는 등 기초적 사실관계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며 교육부가 나서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동북아역사재단 공문에 대해 ‘우리부 불수용’으로 처리해 관심을 끌었다. 교육부가 동북아재단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은 것인데 식민사관에 대해 나름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교육 시스템의 뿌리는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것으로 비인간적인 경쟁구도다. 이 식민지배 교육시스템을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인간교육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했다. 영국 처칠 총리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최근 미국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는 집단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일본 정부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성 착취의 야만적 시스템 하에서 고통을 겪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일본과 다른 국가의 역사교과서 기술을 억압하려는 최근의 시도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한국 식민사학자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내가 전국교장연수 초청강연에서 질문을 했다. 주변국이 한국을 다시 침략한다면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고. 총을 들고 싸우라 할 것인가, 이완용처럼 나라를 팔아먹으라고 할 것인가 판단해야 한다. 이게 진정한 역사교육이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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