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소화기외과 이준호 교수
전신 화상 입었던 소년, 의사의 길을 걷다
여섯 살 때 전신 화상을 입고 3개월 간 병원 신세를 졌던 소년이 있었다. 고통스럽고 힘겨운 치료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어르고 달래며 극진히 치료해주는 의료진들을 보며 소년은 의사가 되겠노라 다짐했다. 그 옛날 의사들이 그랬듯 환한 미소로 환자들을 대하는 그 사람. 위암 수술의 명의로 손꼽히는 삼성서울병원 소화기외과 이준호 교수의 이야기다.
냉철한 외과의사? 인간미 넘치는 의사
부드러운 인상에 선한 미소, 다정다감한 말투. 삼성서울병원 암 병원 위암센터에서 만난 소화기외과 이준호 교수는 의학 드라마 속에 등장하던 외과의사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푸른 가운을 입었으니 더욱 차가운 이미지가 강할 것이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깨지는 첫 느낌이었다. 그 마음을 간파한 걸까. 이 교수가 분위기를 전환하듯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는 인간다운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수술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들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의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훌륭한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릴 적 겪었던 아픔 때문이다.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중증 전신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3개월 동안 고통스러운 화상치료를 받았지만 의사의 손을 거쳐 차츰차츰 몸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며 막연하게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그때의 기억이 워낙 깊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픈 환자들을 보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화상의 아픔은 컸지만 저를 세심하게 치료해주는 의사 선생님 덕분에 잘 견뎌낼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환자들의 입장에서 아픔을 먼저 헤아리는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환자 중심, 그것이 곧 나의 의료철학
힘겹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암 환자들에게는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암을 극복하는 긍정의 요인이 된다. 이렇듯 환자의 불안감과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대화를 많이 나누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이 교수는 더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위암 환자들은 암을 진단받는 순간부터 공포감과 스트레스에 휩싸입니다. 이럴 때 의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환자에게 믿음을 주는 일입니다. 진행이 많이 된 위암으로 치료가 어렵더라도 언제든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돕고 있습니다.”
‘환자는 내 인생의 절대적인 부분’이라며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이 교수의 의료철학을 다시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환자를 생각하는 각별한 마음은 환자 가족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 교수에게 위암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던 환자의 초등학생 딸이 해마다 정초가 되면 보내오는 감사의 편지는 의사로서의 소명을 다시금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위암 치료 위해 새로운 치료방법 모색
삼성서울병원은 ‘위암 수술 후 사망률 제로’라는 성과를 자랑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위암 명의 이준호 교수가 있다. 하지만 암 환자에게 또 다른 암이 다시 생길 확률은 15%나 되므로 이런 환자들 위해 2차 원발 암 확률을 낮춰 삶의 질을 높이고, 2차 원발 암이 발생됐다 해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수 있는 암 관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 새로운 치료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하는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다.
“저는 환자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비용 대비 효과가 큰 치료방법을 개발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과나 이득보다는 의사에게 좋은 시스템이면서 환자에게도 효과가 큰,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효율적인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이 교수는 암에 대한 1차, 3차 예방 측면에서의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인간다운 의사를 육성하는 것’을 가장 원대한 목표로 삼고 있다. “의과대학 교육이 공부를 잘하는 것만 강조하면 자칫 전인적 인성교육에 소홀할 수 있다”며 인성교육을 의과대학 커리큘럼에도 반영할 뜻을 내비친 그의 마지막 말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돈다.
20년간 오직 환자를 위해 걸어온 길. 인간미 넘치는 의사, 친절한 의사, 희망의 불씨가 되어준 의사… 그리고 여전히 환자를 위하는 의사. 인간 이준호의 이름에 따라붙었던 수많은 수식어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