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추천하는 오늘의 책 │잔혹함에 대하여
'평범한 사람'도 잔인하다
50여년 전, 미국의 한 교수는 실험을 했다. 실험대상자들을 교사와 학생 역할로 나누어 그룹을 지어 교사는 문제를 내고 학생은 그 문제의 답을 맞히게 했다. 학생 역할의 피험자는 전기충격 장치와 연결되어 있었고, 문제를 틀리면 교사 역할의 피험자가 전기충격을 직접 가해야 했다.
선뜻 전압스위치를 누르지 못하던 교사 역할 피험자들 가운데 반 이상이 스위치를 누르기 시작했다. 의사 복장을 한 남자의 지시에 따라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정도의 충격을 가한 것이다. 이 실험은 권위자의 명령과 강요가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잔혹한 악을 행할 수 있다는, 어쩌면 절대 알고 싶지 않던 인간의 민낯을 드러냈다.
사람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가? 또한 잔혹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과는 다른 것이 많은 특이한 유형인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철학적 사유를 전개해 나간다. 인간의 역사, 철학과 심리학, 문학과 영화 등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까지 풍부한 사례도 함께 덧붙인다.
먼저 악에 대해 주의 깊게 살피는 것으로 책은 시작된다. 악의 개념과 성격, 이미지 등 대상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논의하며,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이 책의 주제를 풀어나간다.
이어서 저자는 폭력 억제에 관한 '악의 장벽 이론'을 설정하여 악한 행동에 대해 정의 내리기를 시도하지만 그 시도에 틈이 많음을 고백한다. 바로 그 틈이 이 책이 말하고 싶어 하는 내용이다. 비폭력적이거나 무관심으로 일어나는 악한 행동, 잘못된 사회규범 등으로 양심의 선한 유혹을 거절하여 일어나는 악한 행동들이 이 틈 안에 있는 것이다.
그 틈 안에는 국가가 개인의 양심을 구속했던 사례들 또한 자리한다. '전체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때로는 온건한 제도를 통해 국가가 국민들에게 잔혹한 행동을 주문했던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그 최악의 사례로 대규모의 학살이 자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학살 그 자체보다 훨씬 더 무서운 사실은 그러한 잔혹행위의 수행자가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회 구성원이었다는 점이다.
최종적으로 저자는 잔혹한 악에 대비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약간의 변화가 사람의 행동을 악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아주 낮은 악의 가능성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는 과거의 잔혹함을 되돌아보고 미래에 나타날 악의 여러 모양들에 대해 철저하게 대비할 것을 요구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평범한' 사람도 잔혹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 그래서 이 책의 부제로 대상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한다는 의미의 '고찰'이라는 단어를 쓰는 대신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핀다는 의미의 '성찰'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는 추측을 해 본다. 선과 악, 그 사이에 생겨나는 딜레마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게 될까? '나'와는 무관해 보여 깊이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던 악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장지영 국회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