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에 빠져 자기 아이 방치·학대
원영이 사건을 통해 본 게임중독
아이템 구입 위해 사기에 살인까지 저질러
"게임중독 질병관리 … 성인도 치료받아야"
최근 연이어 터진 젊은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사건을 살펴보면 게임중독으로 가상현실에 빠져 아이들을 방치하고 학대를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게임중독도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게임아이템 구입에 4천만원 써 = 16일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경기도 평택 신원영(7)군을 학대해 숨지게 한 계모 김씨는 최근 7~8개월간 모바일 게임 아이템 구입에 4000여만원을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유우경 한국온라인게임중독연구소 소장은 "김씨가 즐겨하던 게임은 온라인 롤플레잉인데 이 게임은 특성상 한번 시작하면 장시간 즐기게 된다"며 "육아를 담당해야 할 부모가 많은 시간을 게임에 쏟아부으면서 아이를 방치한 상황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아이템구매까지 적극적으로 한 것은 게임세계로 푹 빠진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온라인 롤플레잉(Role Playing)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 속의 주인공이 되어서 가상의 세계에서 게임 내에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디아블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등이 있다. 최근에는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아이온 등 다중접속 롤플레잉게임(MMORPG)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게임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캐릭터를 골라 공격력이나 방어력을 업그레이드하고 무기나 방패 등 보호 장비 아이템을 획득해 적을 쳐부수는 게임이다. 이 때 사용자들은 게임 경험을 쌓으며 아이템을 얻기도 하지만 일부 사용자들은 돈을 내고 고가의 아이템을 구입해 캐릭터를 치장하기도 한다.
아이템에 따라 그 성능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자기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고 힘을 갖추기 위해 아이템을 구입하는데 능력치에 따라 아이템 금액은 천차만별이다. 몇 만원에서 수백, 수천만원이 넘는 인기아이템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소장은 "게임개발업체에서 강하고 희귀한 아이템을 자꾸 만들어 내는 것도 문제"라며 "희귀 아이템이 있으면 게임을 수월하게 이길 수 있어 아이템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간다"고 설명했다.
롤플레잉게임을 즐겨한다는 한 사용자는 "게임 속 캐릭터는 가상세계 속에 존재하는 분신처럼 여겨지며 플레이어들은 자기 분신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무기나 방패, 옷과 액세서리를 구입하는데 돈을 마구 쓰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모은 아이템을 더 높은 가격에 팔아먹으면서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게임산업발전 미명하에 부작용 방치 = 문제는 이런 게임들이 사용자들을 중독시켜 사회문제를 낳는 것이다. 최근 벌어진 잇따른 아동학대사건은 젊은 부모들의 게임중독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원영이 계모뿐만 아니라, 지난 9일 부천에서 생후 3개월 미만의 영아를 폭행 치사한 20대 부부도 롤플레잉 게임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게임하는데 운다며 3개월도 안된 딸을 방바닥에 떨어뜨린 뒤 방치했다.
부천 초등생 시신훼손 사건의 아버지 또한 일정한 직업 없이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게임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벌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는 인천에서 게임중독 아버지가 11살짜리 어린 딸을 집안에 장기간 감금했다가 아이가 맨발로 집을 탈출한 사건이 있었다. 게임중독에 빠져 자녀를 돌보지 않은 전형적 사례이다.
뿐만 아니라, 2014년 3월 경북 구미에서는 22살의 아버지가 PC방에 가야 하는데 잠을 안 잔다는 이유로 생후 28개월 된 아들의 명치를 때리고 코와 입을 막아 살해하기도 했다.
많은 범죄의 원인으로 게임중독문제가 지목돼 왔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없다.
게임회사들은 국내 A급 배우들을 게임광고에 잇따라 등장시키고 할리우드 스타까지 모델로 기용하며 게임을 홍보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아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 게임의 TV 광고 집행금액은 2000억원대에 달한다. 1년 전보다 4배 증가한 액수다.
정부는 부작용은 눈감은 채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게임산업 육성 정책만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게임시장 규모는 매년 커져 10조원에 육박할 정도다. 특히 아이템 거래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난 2010년 대법원이 아이템의 현금 환전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후로는 각종 거래사이트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젊은 부모 게임중독 예방 필요 = 게임중독 분야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이번 평택 원영이 사건 등으로 게임중독 문제를 다시 공론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상생활이 무너질 정도의 중독성을 갖고 있는 게임중독은 질병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 소장은 "게임 중독자들의 경우 충동조절장애를 가진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쉽게 폭력을 가하게 된다"며 "요즘 일어나는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경우 그 부모들은 이미 이전부터 게임에 친숙, 중독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젊은 부모에 대한 게임중독 예방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학원 사단법인 한국인터넷게임중독 예방치료협회 대표는 "게임 산업을 장려만 할 것이 아니라 게임중독으로 인한 개인, 사회적 피해 회복에도 국가와 게임업체들의 책임있는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적으로 게임중독을 예방, 치료해야 한다는 주장과 게임업계의 자발적인 자정노력도 요구된다.
유 소장은 "이용시간 제한 도입 등 규제를 얘기하면 어른들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며 "게임업체가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자세로 먼저 게임중독자들을 관리하는 방법을 고민하는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게임업체가 장시간 게임을 하거나 아이템구매를 과하게 할 경우 일정정도 제한을 두는 등 자정노력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