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 종언’ 트럼프관세, ‘중국 중심 무역망’ 재편할까
전문가들 “바이든은 ‘중국고립’ 노력 … 트럼프는 ‘미국고립’ 결과 낼 것” 경고
“트럼프정부 고율관세가 글로벌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장막을 드리웠다.” 월스트리트저널의 2일(현지시각) 기사 제목이다. 그만큼 전면적이고 파괴적인 관세정책이라는 것. 블룸버그통신은 우리 시각 4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로 전세계에 타격을 입혔고, 시진핑 주석은 전세계를 구할 기회를 얻게 됐다”고 전했다.

물론 중국도 트럼프의 고율 관세로 치명타를 입을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이 아시아와 유럽 등 전세계 각국과 신뢰관계를 증진시키는 소중한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는 분석이다.
중국정부는 3일 “미국은 가까운 나라나 먼 나라나, 동맹이나 적국이나 가릴 것 없이 약탈하고 짓밟았다”고 논평했다. 트럼프정부가 1세기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직후다.
중국 재무부 부부장 랴오민은 3일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에서 중국의 첫번째 녹색국채 출시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녹색국채 발행은 글로벌 시장에 더 깊이 통합되려는 중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보호주의는 효과를 내지 못한다. 해결책이 아니다. 중국과 영국은 글로벌 자유무역의 혜택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전례없는 관세는 전세계 증시 매도세를 촉발한 것을 넘어, 미국을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서 스스로 소외시킬 위험성을 갖고 있다”며 “특히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미국이 아닌 중국을, 최대 교역국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관세는 중국에 대한 각 나라의 의존도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이엠리옹경영대 상하이캠퍼스 부교수인 프랭크 차이는 블룸버그에 “‘해방의 날’은 미국을 전세계로부터 고립시킨다. 다른 모든 나라들은 미국을 배제하고 무역하려는 의지를 갖게 됐다”며 “중국은 이제 자체적으로 미국을 이길 황금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수년 동안의 상황이 급작스레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전임 바이든행정부는 덴마크부터 일본에 이르기까지 각 나라들에게 ‘미국의 수출통제정책은 중국을 고립시키는 목적’이라며 안심시켰다. 게다가 중국정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외교적으로 지원하면서, 유럽 많은 나라들은 시진핑정부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트럼프정부는 유럽 등의 미국 동맹국들이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근거를 사실상 없애버렸다. 유럽 동맹국들보다 오히려 러시아에 더 친밀한 자세를 보이고, 동맹과 적국 가릴 것 없이 고율관세를 부과하면서다.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3일 트럼프 관세에 대해 “대단히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유럽연합(EU)은 보복관세를 예고했고, 프랑스는 미국 기술기업들을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스팀슨센터’ 중국정책 디렉터인 쑨윈은 “트럼프관세는 ‘미국은 더 이상 자애로운 패권국이 아니다. 그 결과 글로벌 질서는 변화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증폭시킨다”며 “중국은 미국의 추가적인 관세에 직면한 유일한 나라로 지목되지 않았다는 점을 다행으로 느끼고 있다. 중국은 미국 동맹·교역국들과 관계를 심화시키고 자체적인 대안적 국제질서를 구축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현재 트럼프 1기 첫번째 무역전쟁보다 더 전략적인 접근법을 취하면서 미국 관세정책에 조심스럽게 대응하고 있다. 중국경제 역시 부동산 위기, 디플레이션 압력 등에 직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정부가 미국의 관세정책에 맞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중국 선택지에는 애플 등 주요 미국기업을 겨냥하거나 주요 광물에 대한 미국 수출을 통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난징대 국제연구센터 학장인 펑쥐는 “다른 국가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기 위해 중국정부는 일단 관망모드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최근 관세로 중국경제가 첫번째 무역전쟁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하지만, 중국본토 벤치마크인 CSI300지수는 3일 0.6% 하락하는 데 그쳤다. 중국 국채도 상승했다. 중국정부가 통화정책을 완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커지면서다. 펑쥐 학장은 “중국정부의 관심은 전세계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다. 중국은 대미 보복조치를 꺼내드는 데 있어 급할 게 없다”고 말했다.
시진핑 주석은 이달 말 트럼프의 복귀 이래 첫번째 해외순방에 나선다. 전세계 각국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 주석은 캄보디아와 베트남, 말레이시아를 순방한다. 트럼프 관세로 치명타를 입게 될 국가들이다.
블룸버그는 “시 주석은 미중 사이에서 조심스런 균형을 취해 왔던 이들 국가에게 ‘경제적 안정성’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물론 미국 대신 중국을 믿을 만한 파트너로 부상시키려는 노력이 효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게이브칼 드래고노믹스 중국리서치 부대표인 크리스토퍼 베더는 “유럽 일부 국가들은 여전히 중국을 회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중국의 경제정책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며 “중국의 이미지 개선 노력이 효과를 낼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베이징 소재 ‘중국글로벌센터’ 창업자인 헨리 왕 휘야오는 “트럼프 관세는 전세계 무역국들이 한데 뭉치도록 만들 것이다. 전세계 인구 80%에 해당하는 나라들은 자기들끼리 보다 많은 무역을 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이는 미국을 소외시키고, 미국에 큰 피해가 돌아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