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극한대결에 ‘아스팔트 극우’ 비대화

2025-04-04 13:00:09 게재

음모론·헌재위협 8년 전 닮은꼴, ‘법원 난동’ 충격

윤 대통령 ‘총력 여론전’에 지지자들 전의 불태워

헌정사 세 번째 탄핵정국이 휩쓴 대한민국의 광장은 ‘전쟁터’였다. 윤석열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여당과 거대야당의 극한대결 속에서 상대진영에 대한 혐오를 상식보다 우선시하는 이른바 ‘아스팔트 극렬 우익’이 급격히 부상했다. 집회·시위 양상도 한층 살벌해졌다.

◆부정선거 음모론, 혐중 동력 삼았다 = 이번 탄핵정국에서 아스팔트 극우 세력은 가짜뉴스와 음모론으로 지지자를 결집시키고 거친 말로 헌법재판소를 위협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 닮은 행태지만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2017년 당시에는 헌재 선고를 앞두고 ‘이정미(헌법재판소장 대행)의 남편이 통진당원’이라거나 ‘평양에서 군사정변이 발생했다’는 등의 가짜뉴스가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통해 퍼졌다.

이들 가짜뉴스가 일회성이 강했던 반면 이번 정국에서는 부정선거에 대한 의심과 중국혐오를 자극하는 가짜뉴스들이 꾸준히 양산됐다. 특히 ‘부정선거’ 음모론은 윤 대통령이 직접 계엄의 이유로 공식 언급함으로써 지지자들 사이에서 ‘정론’이 돼 버렸다.

‘중국인 99명 체포설’은 한 보수 유튜버의 황당한 허위주장으로 판명났지만 이후에도 극렬 지지자들은 재판관의 이름이 특이하거나 경찰관의 머리가 길다는 등의 이유로 ‘중국인’ 혐오 딱지 붙이기를 계속했다.

헌재에 대한 위협도 유사했다.

8년 전에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에서 헌법재판관들을 향해 “당신들 안위를 누구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했고, 선고일 당시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정광용 회장 등은 헌재를 향해 “돌격”을 선동해 사망자가 나기도 했다. 올해도 살인예고를 비롯해 “국민들이 헌재를 휩쓸 것” “한 칼에 날릴 것” 등의 험한 말들이 줄을 이으면서 폭력사태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난 1월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후문에서 흥분한 지지자들이 경찰 저지를 뚫고 경내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2030세대 유입 현상도 = 아스팔트 극우의 폭력성은 7년 전보다 현격히 심각해졌다.

올해 1월 19일 새벽에 벌어진 서울서부지방법원 난동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문민정부 들어 처음으로 벌어진 사법부 침탈이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이에 반발한 100여명의 시위자들이 법원 건물 안에 침입, 건물 외벽과 내부 시설물을 대대적으로 부쉈다. 민간인은 물론 경찰까지 집단폭행하는가 하면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색출하겠다며 판사들 사무실이 있는 상층부까지 침입했다.

이후에도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야당 의원들이 계란투척 및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탄핵 촉구 집회 참가자가 폭행을 당하는 일이 빈발했다.

한편 이 과정에서 아스팔트 극우는 청년층 남성 일부를 흡수, 이른바 ‘세대확장’을 시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서부지법 난동 사건에서 체포된 현행범 90명 중 2030세대가 5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일부 청년층이 ‘백골단’을 자칭하며 탄핵 반대 집회 동참을 선언하는 웃지 못 할 촌극도 있었다. 각 대학 캠퍼스에서 시국선언을 주도하며 학내 구성원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도 나타났다.

◆“대결정치 골몰 민주당, 극우 키워” = 아스팔트 극우의 존재감이 8년 전보다 두드러지게 된 것은 상대진영 혐오에 편승한 정치권의 극한대결이 토양을 제공한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들의 투쟁을 이끈 ‘선봉장’은 다름 아닌 윤 대통령이었다.

지난 탄핵정국에서 박 전 대통령은 극도로 말을 아끼며 사실상 ‘은둔’했고, 이는 지지자들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계엄사태 후 두 차례 대국민담화를 내놨고,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영상담화·친필편지·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 헌재 발언 등을 총동원했다. 그의 적극적인 대국민 여론전은 지지자들의 전의를 계속 불지폈다.

야당 역시 공범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여론조사 업계 관계자는 “탄핵소추 후 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상승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은 야당 책임”이라며 “탄핵을 남발하는 등 대결정치에 골몰한 민주당의 행태도 극우를 키웠다”고 꼬집었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탄핵정국은 오늘로 사실상 마무리가 됐지만 갈라진 민심은 8년 전보다 더 골이 깊어졌다”며 “혐오를 조장한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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