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기업의 비밀 │ ⑤ 크루셜텍
적자 때도 R&D, 퍼스트무버(기술시장개척 선도기업)로 부활
초소형 지문인식 모듈·집적회로(IC) 생산 … 구글 MS 등 15개 모바일제조사에 공급
천당과 지옥을 맛봤다. 창업 7년 만에 매출 3000억원 달성과 코스닥 상장을 이뤄냈다. 벤처업계의 신화로 불렸다. 그러나 최대 매출을 올려주던 글로벌 기업이 추락하자 매출이 10분의 1로 급락했다. 회사 창업 이후 최대 위기가 닥쳤다.
회사에 1000억원의 여윳돈이 있었다. 1000억원은 회사의 마지막 보루였다. 고심 끝에 연구개발과 공장 확장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회사 흥망을 건 마지막 승부수였다.
2014년 734억원까지 떨어졌던 매출은 지난해 2625억원으로 급성장했다. 200억원대까지 추락했던 영업적자도 144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올해 1분기에만 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고집스런 연구개발(R&D) 투자가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이다. 벤처업계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널리 알려진 모바일 생체인식 솔루션기업 크루셜텍의 성장 이야기다.
회사는 2001년 광통신모듈 전문기업으로 출발했다. 회사 설립 8개월 만에 14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따내 업계를 놀라게 했다. 급성장하던 회사는 정보기술(IT)산업 거품이 꺼지면서 1차 위기에 봉착했다.
크루셜텍은 광통신모듈 사업부문을 포기하고 모바일 분야로 눈을 돌렸다. 수년간 노력 끝에 세계 최초로 모바일 입력장치 '옵티컬트랙패드(OTP)'를 상용화했다. OTP는 일종의 모바일용 광마우스다. 2006년 삼성전자에 첫 납품을 시작으로 2008년 오바마 폰으로 알려진 스마트폰 '블랙베리'에 독점 공급하면서 매출이 순식간에 3000억원대로 올랐다. 블랙베리는 물론 HTC 샤프 등 글로벌 모바일 기업들이 모두 크루셜텍의 OTP를 찾았다. 부품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영업이익률도 10% 이상을 기록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대화면과 터치입력 중심으로 진화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크루셜텍 OTP 매출의 80%를 차지하던 블랙베리와 HTC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려났다. 블랙베리와 HTC 부진은 크루셜텍에 직격탄이 됐다. 100억원이 넘던 영업이익이 2012년 적자로 돌아섰다. 이후 손실 규모는 점점 커져 200억원대로 확대됐다. 2차 위기였다.
"1·2등이 같이 무너지니 감당이 안됐다. 블랙베리의 입지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매출이 줄어드는 속도는 계산하지 못했다."
안건준 대표는 남아 있던 자금 1000억원 활용 방안을 고민했다. 안 대표는 돈은 물과 같아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 전에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 투자를 선택했다.
베트남 공장과 판교 연구개발(R&D)센터를 짓는 데 600억원을 쓰고, 나머지 400억원은 모바일 칩셋개발에 투자했다. 연구인력도 300여명 수준으로 늘렸다.
5년간 1000억원을 투자한 결과 OTP에 지문인식 기술을 더한 바이오매트릭 트랙패드(BTP)를 애플보다 앞서 개발했다. BTP는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된 초소형 지문인식 모듈이다.
크루셜텍은 2013년 말 후지쯔에 지문인식 모듈을 첫 공급하기 시작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전 세계 15개 스마트폰 제조사 42개 모델에 납품했다.
BTP 시장은 점차 커지면서 현재 회사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2014년 730억원 수준이었던 크루셜텍의 매출은 지난해 2600억원대로 급성장했다.
BTP를 만드는 3가지 핵심 기술 가운데 외부에서 조달했던 집적회로(IC)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면서 BTP를 활용한 다양한 시장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코나아이와 모바일 생체인식 솔루션 전문기업 크루셜텍과 전자 지문인식 스마트카드를 공동으로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지문인식기가 탑재된 컴퓨터 마우스도 개발했다.
안 대표는 "크루셜텍은 앞선 지문인식 솔루션 기술을 기반으로 다중 생체인식, 헬스케어 디바이스 등 통합 생체솔루션 분야의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