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동맹 약화, 각자도생 흐름 속 HMM 주인없이 항해
산은·해진공 지분매각 공염불 계속 … 점유율 2.9%, 독자서비스 기반 약해
세계 10대 선사 상위 5위 중심으로 양극화 추세 … HMM 대응 방향 모호
26일 국내 최대 해운기업 HMM이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새로운 임원진을 선임한 날, 해양수산부는 인근 해운빌딩에서 해운 시황악화 우려에 대비하기 위한 긴급상황 점검회의를 열었다.
HMM은 이날 주총에서 선임된 최원혁 대표이사에 대해 "CJ대한통운 LX판토스 등 글로벌 물류업계에서 40년 이상 근무한 물류전문가"라며 "LX판토스에서 8년동안 최고경영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역임하면서 글로벌 물류에 대한 전문성과 경영역량, 조직관리능력 등을 인정받았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시장은 최 사장 선임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KOBC, 해진공)가 1, 2대 주주로서 67% 지분을 가진 HMM 지배구조에서 전문경영인 사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돼 있다는 것이 그동안 경험을 통해 드러났고, 변화를 기대할 새로운 요소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코로나 거치며 선사들 동맹 제약하는 시장 흐름 = 글로벌 해운전문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HMM은 올해 3월 기준 선복량 91만3867TEU로 세계 8위(점유율 2.9%) 규모다. 6m 길이 컨테이너 91만여개를 실을 수 있는 선대를 갖추고 일본 선사 ONE(세계 6위), 대만 선사 양밍(10위)과 함께 프리미어얼라인스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독일 하팍로이드(5위)도 포함된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에 속해 있었지만 하팍로이드가 덴마크 선사 머스크(2위)와 손잡고 새로운 동맹 제미나이를 구성하면서 동맹은 축소됐다.
대신 프리미어얼라이언스는 머스크와 함께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을 구성하고 있던 스위스 선사 MSC(1위)와 새로운 협력관계를 맺었다. 2M은 해체됐다.
세계 3위인 프랑스 선사 CMA CGM은 중국의 코스코(COSCO, 4위), 대만의 에버그린(7위)과 함께 오션얼라이언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지난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향후 4년간 미국에 200억달러를 투자해 해운 인프라를 강화하고, 현재 10척의 미국 국적 선박을 운영하고 있지만 앞으로 30척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견제하자 프랑스와 중국이 맺고 있던 해운동맹에도 틈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에버그린도 지난 17일 한화오션에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6척을 발주했다. 에버그린이 중국 조선소가 아닌 한국의 한화오션에 발주한 것은 처음이다.
해운동맹은 지난해 4월 유럽연합이 ‘컨소시엄 블록면제규정’(CBER)을 연장하지 않고 폐지하면서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 코로나 대유행 기간 해운선사들의 대규모 이익과 화주들의 운임부담도 선사들의 동맹을 허용하지 말자는 여론을 일으킨 것으로 분석됐다.
CBER 제도는 130년간 이어오던 운임동맹(shipping conference)이 2008년 폐지된 후 2010년 4월부터 시행됐다. ‘가격 담합을 하거나 시장점유율 30%를 초과해선 안 된다’는 단서를 달고 컨테이너선사의 컨소시엄 구성을 허용된 것이다. 이에 따라 △선박 운항 일정, 항만 입항 결정 △선복 교환 또는 판매 △선박과 항만시설 공동 운영 △컨테이너박스 등의 장비 지원 △수요공급 변동에 대응한 수송능력 조절 등에 대한 선사들의 협력을 독점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면제했다.
CBER 폐지 이후 이를 바탕으로 운영되던 2M, 오션얼라이언스, 디얼라이언스 등의 변화는 빨라졌다. 2M이 올해 1월까지 운영한 후 해체한다고 선언한 이후 해운동맹의 합종연횡이 다시 시작됐다.
하팍로이드가 지난해 HMM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한 것도 달라진 해운시장 구조를 반영한다. 세계 해운계는 CBER 폐지 후 적용되는 ‘전문화 예외인정 규정’(Specialisation BER)에서 인정하는 ‘시장 점유율 20% 이내’ 한계에 맞춰 변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하팍로이드 행동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30%까지 허용하던 기준이 20%로 내려오면서 선사들은 동맹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글로벌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며 “20%를 기준으로 하면 상위 5개 선사가 시장을 분점할 수 있다는 구도가 나오는데, 현재 1~4위까지는 점유율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5위 자리를 두고 5~7위권인 하팍로이드 ONE 에버그린 등의 경쟁이 가열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HMM이다. 1위 MSC는 640만TEU(20.1%)로 독자적 행보를 하고 있고, 3위 CMA CGM은 발주량(132만TEU)을 포함하면 2위 머스크와 비슷한 점유율을 보인다.
중국 코스코도 코로나 때 잃은 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해 86만TEU를 발주했고, 5~7위 하팍로이드 ONE 에버그린도 각각 44만, 61만, 80만TEU를 추가 발주했다.
하지만 HMM은 8만TEU를 발주하는데 그친 상태다. 보유 선복량은 7위 에버그린(179만2468TEU)에 비해 90만TEU 가량 적다. 주인없는 취약한 지배구조가 변화하는 해운시장에 대응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투자결정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해수부, 해상운임 하락 속 긴급상황 점검회의 = HMM은 해운동맹이 약해지고 각자도생 분위기가 확산되는 해운시장 구조에서 생존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까.
해운업계 관계자는 “지금 투자하면 5년 10년 뒤 효과가 나타나는 해운시장에서 정부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과 해양수산부 산하 해진공이 1, 2대 주주로 있는 구조에서 책임을 지고 장기투자를 단행하는 게 쉽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 해운시장에 익숙하지 않은 물류업체 출신 사장이 세 번 연속 HMM에 들어왔다”고 지적했다.
HMM 민영화 일정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해수부는 그동안 해운재건 정책을 통해 워크아웃에 들어간 HMM(당시 현대상선)이 다시 살아났지만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호황기 뿐만 아니라 운임이 떨어지는 ‘저시황기를 지나면서’ 독자적 경쟁력을 갖추었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26일 송명달 해수부 차관 주재로 열린 긴급상황점검 회의에는 HMM을 포함한 9개 주요 국적선사와 한국해운협회 한국해양진흥공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 관계기관이 참석했다.
이들은 최근 계속 하락 중인 컨테이너 해상운임 동향 및 전망을 공유하고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해운업계에 미치는 영향과 이에 따른 국적선사들의 경영 상황을 점검했다.
부산항에서 출발하는 글로벌 13개 항로 컨테이너해상운임종합지수(KCCI)와 상하이항에서 출발하는 글로벌 13개 항로 컨테이너해상운임종합지수(SCFI)는 나란히 올해 1월 이후 최근까지 10주 연속 하락했다. SCFI의 경우 지난해 말 2373포인트에서 지난 21일 1293포인트까지 내렸는데, HMM은 SCFI 지수가 1000포인트 밑으로 떨어지면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진공은 지난해 말 발표한 지난달 31일 발표한 ‘KOBC 연간 해운시황보고서’에서 올해 컨테이너선박의 선복량 증가율은 5.4%, 물동량 증가율 2.8%로 예측하고 컨테이너해상운임에 하방압력이 강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최근 다시 격화되고 있는 홍해사태가 미국의 군사적 개입 등으로 마무리되면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던 선박들이 운항거리가 짧은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면서 선박공급은 더 늘어나게 된다.
미국의 중국선박에 대한 제재 방안(미국 항구 입항할 때 수수료 부과), 트럼프발 관세 영향 등이 세계 무역과 해운에 미칠 영향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송 차관은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따른 해운시황 변동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모니터링을 한층 더 강화할 예정”이라며 “앞으로 정부는 유관기관 및 업계와 긴밀히 공조하며 저시황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