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인공지능의 만남…새로운 녹색혁명

2025-03-31 13:00:03 게재

한번도 못 지킨 탄소감축 목표, 무의미한 상향 반복 그만

“신기후거버넌스 구축으로 기술·사회 혁신, 실질적 저감”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립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은 2025년 2월까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제출을 요구했지만 190여개 당사국 중 10여개국만이 이를 준수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9월 중 유엔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파리협정에 따라 당사국들은 5년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해야 한다. 새롭게 수립하는 감축목표는 이전보다 더 높은 ‘진전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27일 김영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환경수석전문위원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도 중요하지만 당장 2030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라며 “예비타당성 효과 분석 시에 탄소 저감 효과를 반영하거나 탄소 배출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2030년 감축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제도들이 제대로 조성되고 나면 2035년 우리가 과연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밑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실제로 의욕만 앞선 채 지키지도 못하는 약속을 국제사회에 남발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지킨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더욱이 이번에도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감축 목표를 느슨하게 잡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만큼 책임감 있게 실질적인 감축을 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플랜 1.5에 따르면, 한국의 탄소예산을 최대 87억4000만톤(2020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윤석열정부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탄소중립기본계획에서 수립한 연도별 감축목표를 모두 달성해도 2030년까지 탄소예산의 70%를 소진하게 된다. 탄소예산이란 지구 온도 상승을 특정 수준으로 제한하기 위해 앞으로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최대 총량을 뜻한다.

◆인공지능으로 재생에너지 경제성 향상 =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 온 우리나라는 탄소집약도(매출액 대비 탄소 배출량)가 높은 국가로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탄소집약도(2016~2020년 평균)는 0.14로 일본(0.12) 영국(0.09)보다 높다. 개선 속도 역시 한국은 2.4%로 영국(5.9%) 독일(5.5%) 등에 비해 뒤처진다.

또한 한국은행의 ‘국가별 패널자료를 통한 경제성장과 탄소배출의 탈동조화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탈동조화(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탄소배출은 감소) 속도는 느린 편이다. 59개국을 분석한 결과, 평균적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3000달러 안팎에서 탈동조화가 시작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 3만달러 안팎에서 탈동조화가 나타났다. 이는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보다 탈동조화 현상이 늦어져 덩달아 탄소배출이 줄어드는 속도도 지연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도 이미 도전적인 과제라는 평이 많다. 이 상황에서 진전의 원칙에 따라 2035년 목표를 상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담이 상당한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기존의 방법 외에도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28일 국회에서 열린 ‘인공지능은 탄소중립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토론회에서 김승완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교수는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면 재생에너지 경제성이 향상될 수 있다”며 “굳이 인공지능을 안 써도 될 부분과 활용해야 할 영역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계통안정도 확보를 위한 의사결정 지원이나 도매전력시장 최적 입찰전략 수립이나 가격 예측 등 다양한 에너지 영역에서 인공지능은 활용될 수 있다”면서도 “물리적 인공지능과 생성형 인공지능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지난한 시행착오가 필요한 것도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할 때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한 예로 ‘전기 먹는 괴물’로도 불리는 데이터센터를 들 수 있다. 인공지능 연산을 위한 전력 소모는 일반 데이터 전력 소모량의 40~60배에 달한다.

“인공지능 산업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굉장히 크다는 우려 섞인 얘기들을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녹색전환에 미칠 영향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다면,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기후위기와 친환경적인 요소를 어떻게 잘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27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가 경제다’ 토론회에서 황준호 BS그룹 솔라시도사업단 전무가 한 말이다. 솔라시도는 전남 해남군 산이면, 영암군 삼호읍 일대에 조성되는 기업도시다. BS그룹은 이곳에 친환경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로 인공지능 슈퍼클러스터 허브를 구축 중이다.

황 전무는 “수도권에 데이터센터가 몰리는 이유는 사업자에게 필요한 전력 기반시설이 많기 때문”이라며 “국가 주도로 재생에너지 전력망에 투자하도록 하는 ‘에너지고속도로’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그것과 함께 지역 분산형 전력망 투자가 우선 시 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IMG03]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기술 개발 =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탄소중립 달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나치게 기술개발만을 추구하다가 기본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 기술은 탄소중립으로 가는 여정에서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얘기다.

28일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은 ‘인공지능은 탄소중립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토론회에서 “빅테크가 알아서 인공지능 개발 방향을 그린 인공지능으로 잡지 않는다“며 “대한민국의 디지털전환 속도는 빠르지만 상대적으로 생태전환은 중하위권에 속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디지털 편향에 치우친 한국은 생태전환이나 기후대응에 좀 더 많은 자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유럽 인공지능법 조차도 기후나 생태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상황에서 쉽지 않겠지만 이 부분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인공지능도 기후위기 대응도 모두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때문에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나아가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누가’라는 부분에도 비중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기후정책 결정 과정이 더 이상 소수의 전문가나 정책 결정자만의 영역은 아니라는 의미다.

28일 국회에서 열린 ‘누가 어떻게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결정해야 하는가’ 토론회에서 오용석 녹색전환연구소 팀장은 “자료 기반의 기후 정책 전문성 강화와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포용적인 거버넌스 구축은 함께 가져가야 할 과제”라며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복합적 위기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반영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은 필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논의를 위해 젠더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반영한 기후시민의회 설립이 필요하다”며 “국회 기후특위를 중심으로 새로운 기후거버넌스 구축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이행하지 못한 탄소감축 약속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현실적인 목표 설정과 함께 그 이행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의 하향식 접근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후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인공지능을 통한 정밀한 자료 기반 의사결정이 결합된다면 진정한 녹색혁명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 설명

■물리적·생성형 인공지능 = 물리적 인공지능은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과 같이 실제 세계에서 행동하고 물리적 환경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계다. 반면 생성형 인공지능은 텍스트 이미지 음악 코드 등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 체계다. 물리적 인공지능이 센서와 액추에이터를 통해 물리 세계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반면, 생성형 인공지능은 데이터 유형을 학습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두 유형의 인공지능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통합 체제가 등장할 걸로 예상된다.

■파리협정 = 2016년 제21차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채택된 신기후체제(post-2020) 합의문이다.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운 ‘교토의정서’와 달리 190여개 당사국 모두에게 감축의무를 규정했다.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 상승 이내 억제 △온실가스 감축 이행 점검 등의 내용을 담았다.

김아영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