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관세폭탄’ 국제통상질서 휘청
FTA도 예외 없는 전면 부과 … 리더십 부재 한국, 외교·경제 전방위 위기

이번 상호관세는 기본관세 10%에 국가별로 추가 관세를 더하는 방식이다. 백악관은 “미국 기업이 오랜 기간 외국의 관세·비관세 장벽에 시달려왔다”고 설명하며 관세 조치가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에 따른 것임을 강조했다. 미국이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한국은 50%의 무역장벽을 미국에 적용한 것으로 간주해 절반인 25%의 관세가 부과됐다.
하지만 계산 기준은 모호하다. 미국은 관세 외에도 환율, 소비세, 기술 규제, 환경기준, 노동 조건까지 종합적으로 반영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산정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일본의 평균 비농산품 관세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2.4%임에도 이번에 24%의 관세가 부과된 점, FTA 체결국인 한국이 일본보다 높은 관세를 맞은 점에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한국의 피해는 상징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2007년 한미FTA 체결 이후 관세를 대부분 폐지한 한국은 이번 조치로 사실상 협정의 효력을 잃게 됐다. 미국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쌓아온 무역 기반이 흔들리고 있으며, 협정의 예측 가능성과 지속성 또한 훼손됐다.
더 큰 문제는 대응 여력이다. 정치적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외교적 해법 마련이 어려운 데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대미 수출 감소의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국제사회도 충격에 빠졌다. 호주는 미국과의 긴밀한 안보 동맹에도 불구하고 10%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이것은 우방의 행동이 아니다”라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캐나다는 공식적으로 상호관세 대상국에서는 빠졌지만 기존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등에 부과된 관세는 유지된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수백만 캐나다인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보복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도 공동 대응을 예고하며 무역 전선의 재편을 준비하고 있다.
시장 반응도 즉각적이다. 발표 직후 S&P500 지수 선물은 3% 이상 급락했고, 나스닥 기술주는 연이어 하락세를 보였다. 비트코인도 8만5000달러 아래로 밀렸다. 전문가들은 “관세율 자체보다 그 불확실성과 자의성이 시장을 위협한다”고 분석했다. 기술기업 의존도가 높은 미국 증시는 특히 취약하다. 웨드부시(Wedbush)의 애널리스트 댄 아이브스는 “이번 발표는 월스트리트가 우려한 최악의 시나리오보다도 더 나쁜 조치”라고 평가했다.
데이터 분석업체 이그지어(Exiger)는 이번 관세 조치로 인해 연간 6000억달러 규모의 신규 세금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국, 베트남, 대만, 일본 등 10개국에 집중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세수 확대가 아닌, 글로벌 공급망과 무역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파급력을 지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를 ‘미국 해방의 날’로 명명하며 제조업 기반 재건과 일자리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비판도 거세다. 투자자들은 물론, 국제 통상 전문가들은 “무역정책이 정치 도구로 전락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이번 관세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상대국이 미국산 제품의 수입 확대나 규제 완화를 제시하면 관세 일부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여지는 있다”고 밝혀 향후 각국과의 양자협상 가능성도 열어뒀다.
결국 이번 상호관세는 단기충격을 넘어, 글로벌 통상 구조와 외교 전략, 산업 생태계 전반에 지각변동을 예고한 동시에 동맹, 협정 등 그간의 국제 규범도 시험대에 올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