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 25% 부과’에 신중론만 펴는 ‘권한대행 정부’
발효 이전 추가 협상은 사실상 물 건너가
거듭 대책회의 열고도 구체대응 안내놔
EU·일본·중국 ‘역관세 맞대응’ 강력반발
3일 미국이 한국에 25%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등 ‘관세전쟁’을 본격화했지만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정부는 이날 오전부터 관련 대책회의를 수차례 열고 오후 회의도 예고했지만 구체적 대책은 보이지 않았다. 예상 피해를 검토하고 민관이 함께 대응책을 논의하겠다는 원론 수준의 대책발표에 그쳤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권한대행에 복귀하면서 낸 첫 메시지가 “미국의 관세정책에 대한 통상대응에 전력을 쏟겠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24일 직무에 복귀했던 한 대행은 복귀 이튿날 그동안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던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자신이 주재하는 경제안보전략TF로 격상한 바 있다.
하지만 열흘 뒤 미국의 관세전쟁이 현실화됐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검토’ 수준에 머물렀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하루 종일 대책회의만 예고한 정부 = 이날 새벽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뒤 정부는 하루 종일 관련대책회의를 이어갔다.
한 권한대행이 주재하는 ‘긴급 경제안보전략 TF(태스크포스) 회의’가 이날 오전 7시 가장 먼저 열렸다.
이날 회의는 미국이 상호관세를 발표된 직후 우리 정부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회의에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박성택 산업부 1차관, 김홍균 외교부 1차관, 남형기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이 참석했다. 한 대행의 이날 회의 메시지는 ‘엄중’과 ‘전력대응’이었다. 한 대행은 미국이 발표한 상호관세의 주요 내용을 보고 받고 “글로벌 관세전쟁이 현실로 다가온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며 “통상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산업통상부장관에게 “기업과 함께 오늘 발표된 상호관세의 상세 내용과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지금부터 본격적인 협상의 장이 열리는 만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미 협상에 적극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역량을 쏟아 부을지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정부 대응이 이미 늦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선(先) 관세 부과, 후(後) 협상’ 기조를 명확히 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관세부터 적용하고, 협상은 그 다음”이라며 선제적 압박 전략을 분명히 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 오후 4시(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 뿐 아니라 중국 34%, EU(유럽연합) 20%, 베트남 46%, 대만 32%, 일본 24%, 인도 26% 등 다른 주요 국가에 대한 관세율도 공개했다.
◆“글로벌시장 변동성 불가피” = 이어진 회의에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의 높은 상호관세 부과가 현실로 다가온 이상, 이제는 본격적인 대응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우리 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대미협상에 범정부적 노력을 집중하고 민관이 함께 최선의 대응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경제안보전략TF회의 직후 서울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개최하며 이같이 밝혔다.
최 부총리는 “오늘 새벽 미국 정부는 관세율 10%를 기본으로 한국 25%, 일본 24%, 유럽연합 20%, 중국 34%, 대만 32% 등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 조치를 발표했다”며 “글로벌 금융시장은 발표 직후 달러가치가 상승하고 미국 국채금리 및 증시 선물지수가 하락하는 등 위험회피 심리가 높아진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조치로 당분간 글로벌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국내 금융·외환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정부는 그동안 F4(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 회의를 중심으로,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상황별 대응계획(컨틴전시 플랜)을 철저히 준비해 왔다”며 “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에는 상황별 대응계획에 따라 가용한 모든 시장안정조치를 즉각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선 미국 관세정책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대미협상에 범정부적 노력을 집중하고, 경제안보전략 TF 등을 통해 민관이 함께 최선의 대응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자동차 등 피해 예상 업종별 지원, 조선 RG 공급 확대 등 상호관세 대응을 위한 세부 지원방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오후에는 주요 기업이 참여하는 제3차 경제안보 TF 회의도 소집해 민관 통합 대응체계를 점검할 계획이다.
◆강대강 대치, 어디까지 = 한편 미국과의 개별 협상과는 별개로 미국-EU, 미국-중국 등 강대국 간 통상협상이 ‘강대강’ 대치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경기 침체 등 세계경제에 미치는 충격파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유럽연합(EU)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를 앞두고 강력한 보복조치를 예고한 바 있다. 올로프 질 EU 무역담당 대변인은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대한 대응이 첫 조치이며,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 등에 대한 추가 대응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EU는 미국과의 철강 협상이 무산될 경우, 4월 중순부터 총 260억 유로(약 42조원) 규모의 미국산 상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프랑스 정부 대변인도 “EU는 분야별로 구체적 대응책을 마련 중이며, 4월 말 전 단결된 방식으로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EU는 상품뿐 아니라 서비스 부문까지 보복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은 기술, 시장, 통상 등 협상 카드가 많다”며, 미국의 서비스 무역에도 비례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EU는 최근 새롭게 도입한 통상위협대응조치(ACI)의 활용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캐나다도 “목적과 힘을 가지고 행동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맞대응 방침을 밝혔다.
중국은 자국을 타깃으로 한 기존 관세에 대응해 미국산 석탄, 액화천연가스(LNG)에 더해 농산물에 보복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이 자국 기업의 대(對)미국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보도도 나오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다만 멕시코의 경우 즉각적인 보복 관세 부과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일부 국가는 향후 협상을 염두에 두고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