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국보급 문화재 23곳 삼키다

2025-03-28 12:59:59 게재

돌이킬 수 없는 문화유산 손실 … 750명 긴급 투입에도 막지 못해

전국을 뒤덮은 산불이 소중한 문화유산마저 집어삼키고 있다. 국가유산청이 27일 밝힌 자료에 따르면 21일부터 27일 오후 5시까지 발생한 70건의 산불로 총 23건의 국가유산이 피해를 입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재산 피해를 넘어 되돌릴 수 없는 역사와 문화의 소실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 방염포 작업 사진 국가유산청 제공

◆갑작스런 피해 확산, 불과 하루만에 8건 추가 = 산불 피해는 급속도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6일 오후 5시 기준 15건이었던 피해 유산은 27일 같은 시각 23건으로 불과 하루 만에 8건이 추가됐다. 특히 경북 안동 지역에서 지산서당 구암정사 국탄댁 송석재사 지촌종택 등 5건의 국가유산이 하루 사이에 추가로 피해를 입었다.

피해 양상을 살펴보면 국가지정국가유산 11건, 시도지정국가유산 12건으로 그 중 10곳은 완전히 전소됐다. 보물급인 의성 고운사 연수전과 가운루는 완전히 소실됐으며,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청송 사남고택도 전소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 산불 피해는 지역적으로 경북에 집중되어 나타났다. 총 23건의 피해 유산 중 경북 안동 10건, 청송 4건, 의성 3건 등 경북 지역에서만 18건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는 경북 지역이 전통 건축물과 자연유산이 밀집된 지역적 특성에 기인한다.

유형별로는 건축물 피해가 두드러진다. 전통 목조건축물인 고택과 사찰 등이 대부분 산지나 구릉에 위치해 산불에 취약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천연기념물인 안동 구리 측백나무숲, 영양 답곡리 만지송 등 자연유산도 산불에 직접 노출돼 피해를 입었다. 전통 목조건축물은 한번 불에 타면 원형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가유산 보호를 위한 비상 대응체계 = 국가유산청은 위기 상황에 대응해 총력 체제로 전환했다. 현장에 750여명을 투입해 예방 및 긴급조치를 실시 중이며 국가유산청장 이하 본청 간부 및 담당자,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돌봄센터, 안전경비원 등 가용 인원을 적극 동원하고 있다.

특히 주요 사찰과 종가의 소장유물 1566점을 안전하게 옮기고 44건의 유산에는 방염포를 설치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또한 산불 인근 예천 문경 군위 등 주요 국가유산 현장을 살피며 2차 피해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 산불 피해는 재난 상황에서 문화유산 보호의 현실적 한계를 드러냈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에 대응해 모든 문화유산을 보호하기에는 인력과 장비가 부족한 실정이다.

전통 건축물은 대부분 목조로 화재에 매우 취약하며 산간 지역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평상시 문화재 주변 방화선 구축과 소방 설비 강화,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 등 예방 대책이 시급하다.

◆국가유산 보호체계 재점검 필요 = 이번 산불로 인한 문화유산 피해는 단순한 물리적 손실을 넘어 우리 역사와 문화의 단절을 의미한다.

전소된 보물급 국가유산과 민속문화유산은 수백년의 역사와 예술적 가치를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손실이 크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산불이 잦아든 후 정밀 피해조사를 실시하고 복원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며 “피해 유산의 원형 기록과 도면,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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