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자를 찾아서-‘그루터기(stump)’ 소품제작소 김동훈 대표

사진 한 장이면 뚝딱! 캐릭터 소품 실감나게 만들어요

2016-07-21 00:00:01 게재

서울에서 박 서방 찾기보다 더 어려울지 모른다. 도안도 견본도 없이 사진 한 장만 보고 캐릭터 소품을 만드는 일이 그렇다. 모양이 똑같은 건 기본. 의뢰인들 대부분 어지간한 ‘덕후’라서 조금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내구성을 갖춰야 코스프레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부품의 디테일이 살아있다면 금상첨화다. 이 모든 걸 충족시켜주는 사람이 있다. ‘덕후들을 위한 덕후’, 캐릭터 소품 제작소 ‘그루터기’의 김동훈(43) 대표다.

소품 만들기 경험이 심어놓은 싹
소품제작소 ‘그루터기’는 코스프레 현장에서 쓰이는 소품을 만드는 곳이다. 코스프레(コスプレ)라는 말은 복장 놀이를 뜻하는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에서 변형된 일본식 단어다. 죽은 영웅들을 추모하며 그대로 분장하는 영국의 예식이 미국으로 건너가 캐릭터 의상을 입는 축제로 변형됐고, 일본에서 만화영화나 컴퓨터 게임 캐릭터의 흉내를 내는 퍼포먼스로 정착했다.
한국에서는 1995년부터 시작됐고 매달 서울과 부산에서 대규모 코스프레 행사가 열리고 있다. 게임과 만화영화를 즐기는 청소년들이 주 수요층이다. 애니메이션 문화의 혜택을 받고 자라 성인이 된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소품제작소 ‘그루터기’도 코스프레 행사에서 싹을 틔운 곳이다. 만화가 지망생이었던 김동훈 대표는 이야기보다는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만들기를 좋아했다. 손재주 있는 그에게 15년 전 후배들이 코스프레용 소품 제작을 의뢰했다. 함께 소품을 만들고 직접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남자 주인공으로 참여도 해보면서 그는 ‘훗날에라도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 본업으로
그 후 유아교육용품점을 운영하던 김동훈 대표는 취미삼아 캐릭터 소품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다. 5년 전 일이었다. 재료를 구하기 쉬운데다 타고난 손재주 덕분에 그가 올리는 소품 사진들은 인기를 끌었다. 만드는 소품 수가 늘어나면서 인터넷 카페를 열었고 하나둘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본업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돼 유아교육용품점은 아내 이지영(43)씨에게 맡겼다. 잠시 방송국 소품 제작팀에 합류했다가 본격적으로 소품 제작실을 열었다.
영국에서 의상학을 공부하고 무대의상을 제작하던 김은조(33)씨와 애니메이션 학과를 나와 3D업무를 담당하는 이영재(27)씨, 그리고 아내도 합류했다. 이제 ‘그루터기’는 일본과 러시아 페이스북을 운영하며 해외에서도 주문을 받을 만큼 알려진 업체가 됐다. ‘그루터기’의 출발은 코스프레 소품이었지만 최근에는 업체에서 의뢰하는 소품이 늘어나고 있다. 한 모바일게임 광고에서 배우 하지원씨가 입고 출연한 갑옷이 대표적이다.
한두 해 사이에 게임 캐릭터 주문이 급격히 늘었지만 만화 캐릭터 주문도 여전히 많다. 의상과 신발, 부츠는 직접 준비하더라도 브로치나 목걸이, 갑옷 쪽은 의상 재료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손에서 연습장 놓지 않는 노력파
좋아하는 게임이나 만화 속 캐릭터를 그대로 재현하는 건 ‘덕후’들 삶의 큰 기쁨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김동훈씨는 주문의 수준을 뛰어 넘는 고품질의 소품을 제작하기 위해 노력한다. 단순히 겉모양이 같은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 때문에 디자인부터 소재까지 연구하고 실험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어딜 가든 연습장을 들고 다니며 구상한다. 타고난 눈썰미와 손재주도 있지만 이처럼 끊임없는 노력이 있기에 까다로운 ‘덕후’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완성된 작품들은 대부분 반응이 좋지만 정작 김동훈씨 스스로는 흡족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신기한 건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며 노력하는 일이 괴롭기보다 즐겁다는 점이다.
국경의 제한 없이 세계 어디로든 뻗어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김동훈씨. 아침 6시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식사를 한 후 다시 새벽까지 일에 매달리는 그에게 소품 만들기는 일이자 휴식, 삶의 활력소란다. 주문이 많아서 다 받지 못할 만큼 일거리가 밀려들지만 좋아서 즐겁게 하는 일이라서 행복하다.

능력자!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김동훈씨의 남다른 능력은 만화와 게임 속 캐릭터의 소품을 실물로 재현하는 능력이다. 주문한 것보다 높은 퀄리티의 소품을 제작하기 위해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1. 신기검: 일본에서 제작 의뢰가 들어온 움직이는 검이다. 검인데 총이 됐다 방패가 되는 것이라 튼튼해야 했다. 접혔다 펴지는 일체형 총, 검, 방패를 만들기가 까다로웠다. 

 
2. 입는 탱크: 코스프레 현장에서 직접 입는 것이라서 가벼운 것에 중점을 뒀다. 실제 느낌을 살리기 위해 탱크의 궤도나 부속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일본에서 제작 의뢰 들어온 소품이다.

 
3. 갑옷: 에바폼으로 제작해 가벼우면서도 앤티크한 금속 느낌이 나도록 도색을 하는 것이 김동훈씨의 노하우다. 실제 입어야 하니 튼튼한 건 기본이다. 


4. LED 조명 총: ‘간츠’라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총이다. 파란 불빛이 나오는 LED를 넣어 사실감을 더했다. USB로 충전할 수 있게 제작하는 등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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