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간독성 논란, 공적 검증 필요
"양약이 한약보다 간손상 더 유발"
중국 일본 대만 의학계 인정 … 식약처 "간독성만 부각하면 치료 도움안돼"
한약의 간독성 문제를 제기하는 의사들은 세계의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약물유발 간독성 평가법'(RUCAM)을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국내에서 변형한 '수정평가법'(modified RUCAM)을 이용한 연구결과를 인용한다. 이 수정평가법을 사용하면 간손상 원인의 상당 부분이 한약으로 인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아직 이 평가방법의 신뢰도가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나라와 같이 한약을 사용하는 중국 대만 일본에서도 한약의 간독성 논란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심각한 간독성 의약품'은 의료시장에서 퇴출시킬 정도로 각국 의학계에서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한약의 간독성 문제만 부각돼 논란으로 번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최근 연구들은 화학약품 병원약이 '간독성이 더 심하다'고 보고하고 있다.
◆약물로 인한 간독성은 20% 불과 = 의사와 한의사 복수면허를 가지고 있는 임채선 삼대국민한의원의원 원장은 "최근 연구동향에 따르면 약물이 원인인 간 손상은 한약보다는 병원에서 사용되는 약이 더 높은 비율로 발생된다고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체에서 간손상을 발생시키는 요인 중 유전적 환자 특성이나 복용 당시의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경우는 80%, 약물자체로 인한 경우는 2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약물에는 병원약, 한약, 건강기능식품, 식물제제 등이 포함된다. 그럼 이들 약물 중 국내 일부 의료계의 주장처럼 한약이 간독성을 일으키는 약물의 다수를 차지할까.
아니다. 국내 일부 의료계를 제외하고 국내외 대다수 연구결과에는 한약의 간독성 유발은 전체 약물 중 적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 간질환학회지에 2010년 발표된 연구 '약인성 급성 간손상 : 미국에서의 다기관, 전향적 연구'에서는 "미국 내 1198명의 약물성 간 손상 환자를 대상으로 검토한 결과, 항생제 항결핵제 항진균제 등 서양의약으로 인해 간 손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영국의학회지(BMJ)에 2015년 발표된 연구 논문 '파라세타몰의 척추 통증 및 무릎 골관절염에 대한 효과성과 안전성'에서는 "통증질환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아세트아미노펜이나 파라세타몰 등의 진통제를 복용한 그룹이 가짜약을 먹은 그룹에 비해 간 기능 검사에서 비정상 수치가 나올 가능성이 무려 4배 가까이 높았다"고 적시하고 있다.
한약을 많이 사용하는 일본 대만 중국의 연구 흐름도 다르지 않았다.
일본의사협회지 53권 4호에 실린 하지메 타키카와 테이코의과대 교수의 '일본에서의 현재 약인성 간 손상의 현실과 그 문제점' 논문에서 "일본에서 10년간 보고된 879건의 약인성 간 손상 보고를 확인한 결과 14.3%가 항생제, 10.1%가 정신·신경계약물로 인해 간 손상이 발생하는 등 간 손상의 60% 이상이 양약에 의한 경우였다. 반면 한약이 간 손상의 원인이 된 경우는 단 7.1%였다"고 밝혔다.
대만의 경우 빅데이터 를 분석한 결과, 약물에 의한 간 손상의 경우 약 40%가 항결핵제에 의한 것이었다. 그 외에 스타틴과 같은 항지질제, 항암제 등도 간손상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조필휘 등, 대만 약물부작용 감시 보고체계에 기반한 약인성 간손상, 대만의학회지 2013년)
중국의 경우 '2015년 국가약품불량반응검측년도 보고'에서 화학약으로 인한 불량반응 보고가 82.1%, 중약 17.3%, 바이오제품(백신제외) 1.5%로 나타났다. 또 중의약북경연구소에 따르면, 중국 13개 성 16개 대형병원을 대상으로 2000~2005년 기간 동안 급성약물성 간손상 1142건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화학약으로 인한 간손상 사례가 600건(항결핵약 245건, 항생제 99건, 항갑상선약 98건, 항종류약 82건, 면역조절약 76건), 기타약물로 인한 사례가 300건, 중성약(한약) 혹은 중초약으로 인한 간손상이 242건으로 나타났다.
◆간독성 가능성 있어도 약으로 처방 = 그러면 간독성 가능성이 있으면 모두 사용하지 않아야 하나.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해 허가된 약물 중 간독성을 일으키는 병원 약은 부지기수다. 성분으로 보면, 디클로페낙, 스타틴계, 케토코나졸, 아세트아미노펜, 에리스로마이신, 페노바르비탈, 에스트로겐, 메토트렉세이트, 아미오다론, 타목시펜 등이 속한다.
이들 중 소염진통제로 사용되는 디클로페낙은 간 장애를 악화 또는 재발시킬 수 있다. 드물게는 황달, 치명적 전격성 간염, 간괴사, 간부전의 경우도 보고 되고 있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든 진통제를 장기 복용하면, 만성간괴사, 급성췌장염, 만성간염, 신장독성을 주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약들이 병원에서 처방되는 것은 해당 질환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약물 중 간독성을 일으키는 경우라도 과다복용 주의 등을 지키면서 병을 고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약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2008년 시행된 하나의 연구에 의하면, 12개월 동안 동일한 재단의 한방병원과 양방병원 입원환자 각각 300명씩 양약, 한약 복용 후 간기능 검사를 한 결과, 양약이 4~8배 정도 간기능 수치가 나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약과 한약 중 어느 것이 간독성 위험성이 높으냐는 논란은 비논리적이고 소모적일 수 있지만, 한약에 대한 간독성 시비가 지속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손창규 대전대부속한방병원 교수는 "한약에 의해 간독성이 생길 수 있는데, 특히 민간약의 형태의 단일 한약제를 한의사 처방없이 인터넷 등으로 구입해 간독성이 발생하는 경우들이 많으므로 주의해야한다"라며 "그렇지만 일부 한약이 간독성을 유발한다고 해서 한약 전체가 간독성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일반화시키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의사제도를 반대하고 있는 의사협회 회원인 모 대학병원 교수는 "한약 전체에 간독성 문제가 있겠느냐"며 "일부 한약이 간독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주의를 준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