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확산 … 미 금융지배 치명타

2016-08-26 11:14:01 게재

글로벌 은행들 속속 채택

환거래용 수조달러 썰물 가능성

브라질 상인이 한국 물건을 구입할 때 양자를 매개하는 건 달러다. 석유와 커피, 철강, 비행기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원자재와 제품들은 달러를 거쳐 주인이 바뀐다.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상업은행과 중앙은행, 다국적기업, 각국정부들은 미 달러를 결제수단으로 사용한다. 이는 1944년 전 세계 금융인들이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모여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브레턴우즈 시스템상 각 경제주체들은 미국 은행 시스템에 달러 표시 자산을 보관하거나 미 국채를 보유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국제적 거래와 결제, 청산을 위해서다.

온라인 투자블로그 '소버린맨'에 따르면 그 방식은 다음과 같다.

각국 은행들은 대개 JP모간이나 씨티뱅크 등 미국 대형은행에 '환거래계좌'(correspondent acount)를 개설해야 한다. 환거래계좌란 은행을 위한 계좌다.

싱가포르의 한 은행에 펀드계좌를 갖고 있다면 이에 상응하는 달러계좌는 뉴욕멜론은행에 개설되는 식이다. 호주에서 은행을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달러를 송금할 경우, 미국 은행에 개설된 호주은행의 환거래계좌에서 미국 은행에 개설된 남아공은행의 환거래계좌로 달러가 이동하게 된다. 즉 거래 자체는 미국 금융시스템 내에서 움직인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투자대상이 미 국채인 이유이며, 이에 따라 미 국채는 가장 유동성이 큰 현금대용물로 인식된다.

이 때문에 외국은행들은 미국 정부의 횡포적 조치에 꼼짝할 수 없게 된다. 미 정부의 조치를 따르지 않는 외국계은행들은 미 금융시스템에서 축출되기 때문이다.

미 금융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면 외국 은행은 미 달러를 거래할 수 없다. 글로벌 업무를 아예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해당은행에겐 사형선고다. 미 정부는 이같은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랜 기간 지배적 지위를 향유할 수 있었다.

미국 행정부의 대표적 횡포는 2014년 BNP파리바 사건이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프랑스 은행 BNP파리바에 90억달러 벌금을 매겼다. 쿠바와 이란 등 미국이 싫어하는 나라와 금융거래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정작 BNP파리바가 자국 프랑스법을 위반한 건 없었다. 프랑스 정부가 강력 항의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영국계 HSBC은행도 2012년 이란과 리비아 수단 등 미국의 적성국가 내 기업과 거래했다는 혐의로 19억20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지난주엔 뉴욕주 금융당국이 한 대만계은행에 미국법을 따르지 않았다며 1억80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고무줄잣대라 하더라도 미국 정부의 말을 들어야 한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축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적 진보가 이같은 상황을 뒤집고 있다. 바로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가상화폐인 비트코인(bitcoin) 등에 채택된 해킹 방지 기술이다. 거래 원장(전체 거래 장부)을 중앙서버에 보관하지 않고 네트워크에 연결된 다수 컴퓨터에 분산시켜 '분산원장'으로도 불린다. 또 특정 컴퓨터 서버에 거래 장부를 저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실시간으로 국제 자금거래를 할 수 있다.

두 달 전 캐나다 금융회사가 기관으로선 처음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독일의 한 은행과 거래하는 데 성공했다. 또 24일엔 일본 15개 은행 연합이 미국 블록체인 스타트업 '리플(Ripple)'의 디지털 화폐 'XRP'를 사용해 상호 거래하겠다고 합의했다. 또 다른 10여개 일본 은행들이 올해 내로 블록체인에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이튿날엔 대박이 터졌다. 글로벌 대형은행 4곳이 블록체인 기술에 합류했다. 독일 도이체방크와 스위스 UBS, 스페인 산탄데르, 미국 뉴욕멜론 은행이다.

이들 은행은 '유틸리티 세틀먼트 코인'(USC)을 개발키로 했다. '리플'이나 '셀트' '모네타스' 등의 기술처럼 USC 역시 나라간 거래와 청산결제를 위해 미 금융시스템에 의존하던 기존 관행을 깨는 데 일조하게 될 전망이다.

국제적 컨설팅회사인 '올리버 와이먼'에 따르면 한해 국제금융거래의 청산결제비용이 약 800억달러에 이른다.

소버린맨은 "미 금융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할 수 있다면 외국은행들이 미국 내 은행에 환거래계좌를 개설해 수조달러의 자금을 묶어 둘 이유가 없다"며 "블록체인 기술이 확산되면 미국 금융시스템을 빠져나오는 막대한 자금들로 거대한 공백상태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버린맨은 또 "미국 은행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미국 정부도 찍어내는 대로 팔리던 국채를 살 투자자들을 찾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블록체인은 게임의 법칙을 바꾸게 될 것이며 현행 국제금융시스템에 막대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 변화는 매우 빠르게 일어나고 있으며, 은행들이 블록체인을 적용한 뒤 수지타산을 맞추는 데엔 18개월이면 충분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미국이 지배하던 국제금융시스템은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고 전망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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