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기술 승계해 전문기업으로 탈바꿈

2017-01-20 10:37:28 게재

폐수처리장 청소부터 시작

기술개발로 부가가치 창출

중소기업계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가업승계'다. 창업 1, 2세대 경영자들의 고령화로 후계자 승계 문제가 중소기업에게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중소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제조업 CEO 평균연령은 1993년 48.2세에서 2015년 52.4세로 높아졌다. 60세 이상 고령자 CEO 비율도 1993년 10.6%에서 28.7%로 증가했다. 현재 세대교체에 놓여있는 중소기업만도 약 1만5000여개에 이른다.

하지만 승계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상속세 등 세금 문제부터 후계자 검증과 리더십 확보 등 숱한 장애물을 헤쳐나가야 한다. 특히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시각을 극복하고, 임직원들로부터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일부 2세 경영인의 일탈도 있지만 대부분 경영을 승계한 2세들은 '부모 잘 만난 덕에 무임승차 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소 제조기업을 꺼려하는 사회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업을 승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섬유업계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이창석 이주 대표는 2세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다. 건축학의 길을 걷던 이 대표는 호주 유학 중 부친의 부름을 받고 귀국했다. 염색업 회사를 경영하던 부친은 귀국한 아들에게 폐수처리장 청소를 맡겼다.

부친이 원망스러웠다. 호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부친의 뜻을 거부할 수 없어 이를 악물고 수년간 폐수처리장 청소만 했다. 이후 공장 근무, 구매담당 등을 거쳐 1996년 가업을 이어받았다.

이 대표는 기능성 소재를 염색하고 가공하는 염색가공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기술연구소도 설립했다. 이 대표의 노력으로 회사는 단순 염색공장에서 대구경북지역에서 대표적인 기능성 염색가공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2월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공동으로 슈퍼박테리아의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항균 섬유 개발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사양산업으로 불리던 섬유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바꾸고 있다.

신봉철 뉴지로 대표가 개발한 '고강도 초미세 발열사'로 만든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형수 기자


발열소재 전문기업인 뉴지로 신봉철 대표도 미국 유학 중 창업주인 부친 권유로 1992년 입사했다. 10년간 구매, 생산 등 경영수업을 마친 후 2002년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신 대표는 연구개발(R&D)을 진두지휘했다. 미래 성장은 기술력에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최근 2년간 사재 14억원을 투자할 정도로 기술개발에 혼신을 다했다.

그 결과 기존 열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고강도 초미세 발열사'를 개발했다. 기존 열선 두께는 2∼2.5㎜ 인데 반해 뉴지로 열선은 0.5∼0.8㎜로 실처럼 가늘다.

열을 내는 동선을 용수철처럼 꼬고 그 안에 실을 집어넣는 '도체 권선 방식'의 코일을 적용해 수백번 접었다 폈다를 반복해도 끊어지지 않는다. 교류(AC)가 아닌 직류(DC)를 썼고 안전전압이라 할 수 있는 24V를 적용해 소비전력이 낮은 것도 특징이다.

뉴지로는 신 대표의 열정으로 단순 열선제조업체에서 '초미세 발열사' 전문기업으로 발돋음 했다.

초미세 열선을 적용할 수 있는 범위는 국방 의류 의료 자동차 건설자재 등으로 매우 광범위해 회사 미래가 밝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편 우리나라 기업들의 승계에 대한 준비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지난해 통계청이 297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78.2%가 '가업승계 계획없음' 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가업승계 예정' 이라고 대답한 기업은 전체의 9.7%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청이 2014년말 기준 중견기업 1152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지난해 국내 중견기업 63.7%가 가업승계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상속·증여세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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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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