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②부당한 경영권 승계

"총수일가 경영독점, 경제민주화 역행"

2017-01-20 12:15:29 게재

전문가 74%, 재벌 2·3세 승계 '부정적' … 차명주식·일감몰아주기 등 불법 난무

경제·경영전문가 4명 중 3명은 재벌 2·3세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냈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역행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내일신문이 1월 9~16일 7일간 경제·경영전문가 50인을 대상으로 전화 또는 이메일로 조사한 결과다.


재벌 2·3세(또는 3·4세)들이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이 38%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36%였다.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라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자는 한명도 없었다. 재벌 2ㆍ3세 경영권 승계에 '부정적'이라고 보는 전문가가 74%에 달한 셈이다.

이는 경제개혁연구소가 2015년 11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온 '부정적' 의견 비율보다 20% 가까이 높은 결과다. 당시 '부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이 54.8%였다.

전문가, 일반 국민보다 경영권 승계에 더 '부정적' = 전문가들 가운데 재벌 2·3세 경영권 승계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답한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이유를 물어본 결과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응답이 35%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독단과 특권의식 등 기본 자질이 부족하다고 본다'는 응답이 27%였다. '경영권 승계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응답은 24%로 뒤를 이었다. '회사에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전문가는 14%였다.


재벌 2ㆍ3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은 총수일가가 경영을 사실상 독점하는 모양이다. 총수일가가 경영권을 쉽게 차지하게 되면 전문경영인 등 CEO시장의 위축을 가져오고,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의 취업기회를 박탈하는 꼴이다.

이계안 전 국회의원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재벌 총수는 지분도 많지 않은데 전횡을 일삼는다"며 "2세, 3세들의 경우 아버지가 훌륭한 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으며 다른 전문경영인과 공정한 경쟁이 아니어서 경영능력을 입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영권 승계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답한 전문가들 가운데 64%는 '전문경영인보다 주인이 있는 기업이 보다 성장가능성이 높으므로'라는 이유를 선택했다. 다음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경영능력을 갖추었을 것이므로'를 선택한 전문가는 18%였다.

'재벌 총수일가의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것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므로'를 응답한 전문가는 9%에 그쳤다.

'창업주 일가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를 답한 전문가는 한명도 없었다.

보수성향의 전문가들이 경영권 승계를 긍정적으로 본 이유로 '성장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선택했다. 한국이동통신(SKT)이나 대한항공공사(대한항공)의 사례처럼 공기업이 사기업에 비해 대체로 경영성과가 낮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경영권 승계를 통해 '신속·과감한 의사결정'과 '장기적 시각의 통큰 투자' 등 오너경영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 조사 1위도 '경제민주화 역행' =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재벌 2·3세 경영권 승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에 대해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므로'(39.6%)를 선택한 응답자가 가장 많아 전문가 조사결과와 유사했다.

다음으로 '경영권 승계과정의 불공정성'(25.2%), '독단 특권의식 등 기본 자질 부족'(19.2%), '회사에 손해 끼칠 가능성'(12.4%) 순이었다.

경영권 승계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답한 응답자들 중에서는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경영능력을 갖추었을 것이므로'라는 이유를 꼽은 사람이 35.5%로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이 '주인있는 기업이 성장가능성 높음'을 가장 많이 선택한 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

국민들은 다음으로 '성장가능성'(24.4%), '경영권 행사 당연'(17.9%), '국가경제에 도움'(14.5%) 순으로 응답했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 드러나 = 재벌 관련 사안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이 총수일가 경영권 유지와 승계 문제다. 지금까지 불거진 경영권 승계 방법과 사례는 다양하다. 재벌이 규제를 받지 않는 승계 방식을 개발(?)하면 사후에 규제당국이 이를 막는 식이 반복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보수-진보 토론회에서 발표한 '경영권 승계에 대한 사회적 규범의 모색'에 따르면 창업 세대에서 2세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서는 주로 공익재단과 차명주식을 이용했다. 삼성과 신세계 CJ 등이 이에 해당하고 상속증여세법 개정을 불러왔다.

2세에서 3세로 넘어가는 과정의 초창기에는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체 등 주식관련 사채를 활용했다. 삼성이 대표적이었다. 최근에는 일감몰아주기와 회사기회유용 사례가 경영권 승계 방법으로 등장했다. 현대차와 SK 삼성 등이다.

가장 최근에는 일감몰아주기 등으로 성장한 회사를 그룹 지배구조상 핵심 위치에 있는 계열사와 합병하면서 최종적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전환이 예상되는 사례도 있다. SK와 삼성의 경우다.

예전 지주회사 금지가 외환위기 이후 합법화로 바뀌면서 지주회사 규제가 완화됐다. 이에 따라 LG SK 두산 등이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경영권 승계 과정을 밟았다. 범LG가는 LG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구씨와 허씨, 또 구씨 집안간 계열분리를 위해 지주회사를 분할하고 지배주주 간 주식교환을 통해 계열분리와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졌다.

공익재단과 차명주식, 주식관련 사채, 비상장사 물타기 증자 등 초창기 단순한 승계수법에 대해서는 실효성 있는 규제장치들이 마련됐다.

신광식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는 "유럽의 가족기업들에 비해 한국 재벌들은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가 심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지배의 사적 이익'을 누리고 있다"며 "전문경영자에게 경영권을 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총수일가가 기업을 지배하면서 얻는 사적 이익이 다른 나라에 비해 커서 경영권을 쉽게 내놓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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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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