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 ③경영시스템 바꾸자

"글로벌 경쟁력 있는 전문대기업으로 혁신해야"

2017-01-24 00:00:01 게재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에게 기회 제공

오너리스크 없애고 참다운 시장경제로

재벌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경제ㆍ경영전문가의 목소리가 높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민심의 함성이 '재벌 책임론'을 요구하는 것과 맥이 통한다.

내일신문이 전국 50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재벌개혁 설문조사 결과, 72%가 재벌 책임론에 동의했다. 재벌 책임론은 정경유착의 후과이며 정경유착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절반 이상의 전문가들의 답변이다.

위기에 놓인 재벌체제 = 그동안 재벌대기업을 옹호하는 논리인 '낙수효과론'에 대해 응답자의 78%가 '효과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개발시대 경제성장에 효과가 있었던 논리를 이제 버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낙수효과론은 재벌대기업을 우선 지원해 성장토록 하고 그 성장과실이 흘러 넘쳐 중소기업과 서민층의 소득 증가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가계살림은 나아지지 않았고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신화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재벌대기업들이 시장과 경제를 지배하는 기업생태계의 극심한 불균형과 불공정한 시장구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벌구조는 계획경제시대 한국경제를 발전시킨 정책적 선택이었다. 단기간 고도성장을 이룬 전략이었다.

하지만 장기저성장 시대에 재벌구조는 한국경제의 혁신적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다.

재벌대기업은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에서 거액을 정권에 제공하고 반대급부로 각종 현안을 해결하거나 이권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벌과 총수가 수사를 받는 등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있다. 재벌구조가 긍정적 낙수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너리스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장하성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재벌이 잘되면 중소기업도 잘 되고 국민들도 잘 살게 된다는 믿음은 허구"라며 "경제가 성장해도 재벌기업만 부자가 되고 국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벌 내부에서도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소수 재벌을 제외하고는 다수 재벌은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또한 혁신은 실종되고 오너일가에만 충성하며 기존 업무에 빠진 관료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업가정신과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총수일가 3·4세 경영승계는 갖가지 불법ㆍ편법 사례를 쏟아내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동양이나 현대그룹에서 볼 수 있듯이 소유에 집착한 비합리적 경영판단으로 그룹이 해체되거나 규모가 크게 줄었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에 대해 시장원리에 따른 유연화를 주장하면서 기업들은 시장원리에 따른 기업구조조정을 막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이것도 재벌기업체제에서 나온 문제"라고 지적한다.

개혁 핵심대상은 '총수일가의 제왕적 경영' =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전문가들의 42%는 재벌개혁의 핵심 대상으로 '총수일가의 제왕적 경영'을 선택했다.

한국의 총수일가경영의 문제점은 재벌 2·3세(또는 3·4세) 경영권 승계와 연결된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재벌 지배구조의 문제점으로 총수의 제왕적 경영에 대한 기업 안팎 견제장치가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기업 내부 견제장치는 이사회와 경영자 보상을 들 수 있다. 현 경영구조에서는 △이사 독립성 결여 △최고경영자에 대한 성과평가와 보상기능 부재 △기존 CEO 교체와 새 CEO 선임 기능 부재 △가족임원에게 터무니 없이 높은 보수 지급 △수감 중에도 경영개입, 사면 뒤 경영복귀 등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 외부 견제장치로는 적대적 인수합병과 주주 행동주의, 주주대표소송, 행정규율 등이 있다. 하지만 재벌 지배구조에서는 △적대적 인수합병 전무 △애국 프레임에 호소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불가능 △주주대표소송 제기 힘들고, 이중대표소송 불인정 △법원의 보수적 판결, 특별사면 남발 △일감몰아주기 과징금 약화 등이 나타나고 있다. 총수일가들은 이같은 환경을 십분 활용해 낮은 지분율에도 순환출자나 부분인수 등을 통해 경제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한국형 소유지배구조의 모색'에서 "총수일가들이 경영권과 경영참여에 집착하는 이유는 과도한 경영권의 사적편익 때문"이라며 "국제 비교연구 결과 한국의 사적편익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지적했다.

경영권을 가짐으로써 얻게 되는 사적 이익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크다는 의미다. 재벌그룹 경영권을 통해 일감몰아주기와 회사기회 유용 등 기업가치를 침해하는 사적 편익 추구를 벌여온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모두 264억원을 투자해 삼성에버랜드 삼성SDS 등의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취득·상장 등을 통해 2015년말 현재 배당금과 주식평가액을 더하면 7조34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최태원 SK 회장도 SK C&C 주식을 60억원에 사들여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4조원 이상의 이익을 얻어 6만800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에 29억원을 투자, 2015년말 현재 배당금과 주식평가액을 계산하면 2조6500억원의 부의 증가를 얻었다. 수익률이 8만8600%에 달했다. 현대글로비스는 그룹 내부거래를 통해 급성장했다. 정 부회장은 이노션과 현대엠코 등을 통해 현대차그룹에서 전체 부의 증가액이 3조6300억원에 달했다.

강력한 법집행 요구 높아 =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강력한 법집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전문가의 44%가 정경유착 근절을 위한 우선 과제로 재벌개혁을 선택했다.

대다수 산업국가는 반독점법을 운용하고 있다. 미국이 반독점법에 근거해 기업분할이라는 반기업적 조치도 불사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미국은 20세기초 경제권력과 민주주의ㆍ시장경제의 조화를 위한 개혁을 추진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셔먼법을 이용해 1902년 JP모건의 노던 시큐리티 컴퍼니를 분할했다. 1912년 석유독점기업 스탠다드 오일을 34개사로 나눴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근절과 경제적 약자들의 법적 권리 강화,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은 사실 참다운 친시장 정책들이다. 규제당국은 이런 정책을 강력히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재벌과 총수일가를 분리해서 총수일가에 대해 현행법이라도 제대로 집행한다면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불법 또는 부당한 행위를 한 총수일가가 경영에서 손떼고 능력과 책임있는 전문경영인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전문대기업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벌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연재기사]
① 전문가 50명 조사| 52% "정경유착 근절하려면 재벌개혁이 우선" 2017-01-17
②부당한 경영권 승계| "총수일가 경영독점, 경제민주화 역행" 2017-01-20
③경영시스템 바꾸자| "글로벌 경쟁력 있는 전문대기업으로 혁신해야" 2017-01-24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범현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