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합병' 외압에 좌우된 국민연금

2017-08-31 10:28:28 게재

합병비율 불리하게 결정

제대로 손실 못따져

법원 "문형표 압력행사"

국민연금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성사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연금의 이익을 우선하는 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외압에 의해 합병비율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등 손실을 입혔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직권남용혐의 등)과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업무상 배임혐의 등)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인정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2015년 5월 합병비율을 1(제일모직):0.35(삼성물산)로 하는 내용의 합병계약을 체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는 제일모직의 주식 42.19%, 삼성물산 주식 1.41%를 보유하고 있었다. 합병에서 삼성물산 주식의 합병가액 비율이 낮게 산정될수록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의 합병 후 법인에 대한 주식 소유비율은 높아지는 구조였다.

특히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주식 4.06%를 보유한 반면, 제일모직은 삼성전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합병과 동시에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도 높아지는 것이다.

기금운용본부 리서치팀은 합병비율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면서 자체적으로 3차례에 걸쳐 합병비율을 계산했다. 2015년 6월 30일 1차 보고서는 합병비율 구간을 0.46~0.89로 보고 그 중간을 0.64로 판단했다. 삼성측이 내세운 0.35와는 큰 차이가 났다. 하지만 2차 보고서에서 합병비율은 0.39로 조정됐고 3차 보고서는 다시 0.46으로 바뀌었다.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가치를 1차 보고서때는 4조8000억원으로 추정했다가 2차 보고서때는 11조6000억원 정도로 추정하면서 제일모직의 가치가 크게 올라갔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 산출을 담당한 직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가치를 너무 낮게 산출한 것 아니냐고 하면서 지분가치를 확 키워보라는 지시를 받고 9조원으로 보고했는데 너무 낙관적인 수치"라고 수사과정에서 진술했다. 이후 담당 직원이 바뀌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가치는 11조6000억원으로 변경됐다. 당시 리서치팀 직원들은 "적정 합병비율과 관련한 보고를 할 때마다 홍 본부장이 '잘 좀 해보지'라는 말로 분석의 방향에 대한 무언의 압력을 주었다. 합병에 유리한 방향으로 가져가고 싶은 의중이라 느꼈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2015년 6월 당시 문 장관이 연금정책국장에게 합병이 성사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등 사실상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

문 장관 지시 이후 합병에 대한 의사결정은 국민연금 전문위원회가 아닌 투자위원회가 결정하도록 방향이 바뀌었다. 통상 이처럼 의결권을 행사하는 사안은 외부인사들이 참여하는 전문위원회에서 결정하지만 삼성물산 합병건은 기금운용본부장이 위원장을 맡고 내부 인사들로만 구성된 투자위원회가 결정했다.

이와함께 홍 당시 본부장은 리서치팀 직원에게 합병시너지 수치를 조작해 투자위원회 회의에서 설명하도록 하고 회의 개최 전과 정회 시간에 일부 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권유하는 등 합병찬성을 의결하도록 유도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삼성물산 합병과 유사한 사안인 SK C&C와 SK간 합병 안건은 투자위원회가 전문위원회에 부의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전문위원회는 합병에 반대하는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국민연금이 3차 보고서에 따라 합병비율을 1(제일모직):0.46(삼성물산)으로 계산했는데 실제 합병비율이 1:0.35으로 결정되면서 국민연금이 보유한 합병 후 법인에 대한 지분이 0.44%로 감소, 약 1388억원 상당의 손실을 본 것으로 봤다. 홍 전 본부장에 대해 이같은 손실액을 고려해 가중처벌인 특경가법상 배임혐의를 적용했지만 법원은 손실액을 산정하기가 곤란하다며 업무상 배임혐의만 인정했다.

법원은 "배임행위가 없었다면 투자위원회가 전문위원회 부의나 합병 반대, 기권, 중립 중 하나로 의결을 했을 것"이라며 "그럴 경우 국민연금은 여전히 합병에 관한 캐스팅보터의 지위에서 중간배당이나 합병비율 조정 등을 더욱 강력하게 요구하거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등으로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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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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